난민을 인재로 만든 보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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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을 인재로 만든 보험사
  • 류근옥 서울과기대 명예교수 klew@seoultech.ac.kr
  • 승인 2021.09.13 09:00
  • 댓글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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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신문=류근옥 교수] 2021년 8월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매우 잔인한 달이었다. 20여 년간 주둔했던 미군이 철수하면서 정부는 더 많은 병력을 가지고도 반군들에게 힘없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가니(Ashraf Ghani) 대통령은 돈다발을 챙겨 혼자 도주했다고 한다. 반군 탈레반이 그 나라를 장악하자 그들의 잔인한 학살과 탄압을 피해 많은 아프가니스탄 난민(難民)들이 목숨을 걸고 다른 나라로 지금 피난하고 있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16세기 말 조선에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 초반에는 명나라가 왜적에 대항하여 조선을 잘 도와주었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벽제전투에서 패면서 적당히 조선에서 손을 떼고 싶어 했다. 이순신을 제외하면 왜적과 싸울 힘이 없던 당시 국왕 선조는 재물을 은으로 바꾸고 중전과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갈 궁리부터 하였다. 류성룡의 징비록에 의하면 이때 명나라 장수 오유충은 “나는 7년간 남의 나라에 와서 싸우며 고생하는데 조선 국왕이 스스로 나라를 버리고 먼저 도피할 생각만 한다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돈을 허비하며 조선을 지킬까?”라고 한탄했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생하고 이어 적군과 백군이 나뉘어 1922년까지 긴 내전이 벌어지면서 러시아의 젊은 엘리트들이 공산주의를 피해 중국으로 피난을 많이 왔다. 이 난민들은 중국에서 막 사업을 시작한 미국인 스타(Cornelius V. Starr, 1892~1968)의 눈에 띄어 보험사업에 적합한 좋은 인력으로 등장한다.

그러면 스타는 누구일까? 그는 오늘날 세계 최대 보험사 중의 하나인 AIG(American International Group)의 설립자이다. 스타는 1년 정도 캘리포니아(버클리) 주립대학을 다녔지만, 경제적 어려움도 있고 해서 중간에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19살부터 아이스크림 장사를 했다. 그 후 넬슨 부동산(James Nelson Realty Co.)이라는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보험사업에 처음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래서 1914년 그는 샌프란시스코로 이사하여 ‘태평양 해안 보험사(Pacific Coast Casualty Company)’에 들어가 낮에는 자동차 보험을 판매하고 밤에는 법률 공부를 했다. 마침내 1917년 스타는 사법 시험에도 합격하여 변호사 자격증을 얻으면서 전문 보험인의 길을 가게 된다.

스타는 좀 더 넓은 바깥세상을 보고 싶었다. 그는 다른 나라에 대한 많은 호기심과 세계 여행을 좋아하여 1919년 ‘일본을 거쳐 중국으로 건너간다. 스타는 상하이에 머물면서 중요한 사업 아이디어를 포착한다. 중국 현지인들의 생활을 보면서 그들에게 보험을 판매하는 것이 좋은 사업 기회라고 여겼다. 스타는 중국인 중에 장수하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보았고 게다가 앞으로 생활 수준이 나아지면 중국인들의 평균 수명도 늘어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명보험이야말로 현지 중국인들에게 판매하기에 적합한 효자 상품으로 생각했다.

마침내 스타는 1919년 중국에서 AAU(American Asiatic Underwriters)라는 보험대리점을 설립했다. AAU는 미국 보험회사들의 상품을 중국인들에게 판매하는 대리점이었다. 스타는 인종이나 피부 색깔을 구분하지 않고 두루 사람을 사귀는 호방형의 사람이었다. 보험 판매인력으로 중국의 재능있는 젊은이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스타는 중국인들에게 아주 멋진 미국인 친구가 되었다. 당시 중국인들 눈에 비친 스타는 “매우 조용하고, 겸손하지만, 투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때 러시아에서는 오랜 내전으로 젊은 엘리트들이 공산주의를 피해 해외로 도피하거나 이주하였다. 스타는 특히 중국으로 도피한 러시아 엘리트들을 눈여겨보면서 그들을 보험사업의 좋은 인력으로 판단했다. 난민은 국경을 넘어 자유의 세계로 탈출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부지런한 것이 특성이었다. 스타는 이러한 난민의 특성이 보험영업에 매우 적합하다고 본 것이었다.

쉘프(Ron Shelp)가 쓴 ‘AIG의 역사(2006)’를 보면 여러 사례가 나온다. 스타는 러시아의 해군 간부 후보생이었던 난민 드보르드스키(Basil deBordesky)를 고용하여 AAU의 베트남 지사에 배정하고 보험사업을 책임지도록 했다. 폴란드의 기마군 장교였던 모스코스키(George Moszkowski)는 남미로 파견하여 AAU의 보험사업을 개척했다. 러시아 외교관이었던 쥬코스키(Artemis Joukowsky)는 상하이에서 보험영업을 하면서 중동지역 사업을 개척하는 책임자가 되었고 나중에는 AAU의 재무 분야 최고경영자(CFO)까지 승진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가면 우주박물관이 있다. 1층 로비에는 최초의 우주인이었던 유리 가가린의 동상이 있고 그 옆에 박제된 개들이 몇 마리 있다. 이 개들은 인간보다 먼저 인공위성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면서 실험용으로 사용되었던 개들이다. 그런데 이 개들은 비싼 명견이 아니다. 주인으로부터 버림받고 모스크바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알아서 먹이를 찾아 먹고 살아야 하는 유기견이었다. 사람으로 치면 일종의 난민이다. 이 유기견들이 러시아의 우주 개발 초창기에 악조건에서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해냈다. 난민들도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며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인재일 가능성이 크다.

2차 대전 후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스타는 중국을 떠나 본사를 미국 뉴욕으로 옮겼다. 이때 회사 이름을 AIU(American International Underwriters)라고 개명하여 중간에 ‘국제(international)’라는 단어를 집어넣었다. 1967년에는 각국에 설립한 스타의 여러 보험회사를 한 그룹으로 묶어서 AIG로 재탄생시켰다. 이때 스타의 머릿속에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나 다문화주의가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

스타는 보험사업이 번창해가자 개인적 나눔의 정신을 확산하고자 그의 회사도 사회적 책임과 관용을 베풀기를 희망했다. 그는 이것을 ‘기업의 시민 정신(corporate citizenship)’이라고 불렀다. 세계화와 다문화주의를 통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한 AIG의 설립자 스타처럼 우리도 이번에 한국에 들어온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소중한 잠재 인력으로 배려하고 돌봐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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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인 2021-09-24 19:02:02
난민이 되고 싶어서 되는 사람은 없다. 한국도 휴전국이기에 이번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은 순전히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수용에 앞서 문화적 차이에 대해 신중히 고려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무슬림에선 개, 돼지를 먹는 인간을 쿠파로 칭하며 여성보다 더 취급 안하거나, 쾌락을 죄악시 하여 음악을 듣는 사람을 길거리에서 참수하는 등 독보적인 종교적 성향을 보인다. 또한, 샤리아존을 생성해 현지법은 무시한채 본국민 상관없이 이슬람 율법으로 해결하고 강요하여 문화적인 위협을 가하기까지 한다. 오로지 동정의 마음으로 수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국민의 안전과 생활이 보장되고 수용국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는 문화적 차이가 인정된다면 위 칼럼 내용의 근사한 사례처럼 난민 수용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팜티흐엉 2021-09-24 16:09:16
살고 번성할 안전한 환경 없이 스스로 난민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회피가 아르헨티나 사람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손을 잡는다면 매우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세현 2021-09-24 15:24:04
난민에 대한 기사를 접하면서 부정적으로만 바라봤었지만, 이 칼럼을 통해 난민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난민을 통해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지고 오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좋은 해결책을 마련하여 난민을 도와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희영 2021-09-24 10:40:22
난민수용은 몇몇 유럽국가들에서도 반기지 않으며, 수용된 난민들과 국민들의 문화적,종교적 차이로 인한 갈등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위 기사에 실린 AIG 보험 사례와 우주여행 사례와 같이, 우리나라의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

김연정 2021-09-24 00:34:07
아프가니스탄 난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보았다. 위에 aig 사례를 보아 기업적인 측면에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 보다 나은 인재를 발굴하는 면에선 긍정적으로 생각하나, 국가적 차원에서는 경제적 문제, 사회문제 등의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다.

영화 ‘모가디슈’를 보면 소말리아 내전으로 인해 많은 국민들과 파견된 많은 외교관들이 모가디슈를 탈출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영화 모가디슈를 볼 때나 이번 아프가니스탄 내전을 볼때 드는 생각은 수용가능한 범위에서 난민을 어느정도 수용하고, 그들이 더 나은 삶의 환경에서 살 수 있을 때 까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수용하였으면 한다. 더불어 수용국가에서 난민을 책임지는 것이 아닌, 모든 국가가 이러한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갖고 법을 제정하여 체계적으로 해결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