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납과 돈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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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납과 돈 공부
  • 이루나 sublunar@naver.com
  • 승인 2024.02.2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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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보험라이프]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루나] 가정의 묵은 숙제였던 아내의 국민연금 추납(추후 납부)을 완료했다. 아이가 생기고, 집을 구하고, 목돈 들어갈 일이 많아지자, 전업주부였던 아내의 국민연금 납부를 잠시 중단하고 납부예외 처리해 두었다. 형편이 나아지면 다시 낼 생각이었는데, 아내의 국민연금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작년부터 다시 연금 납부를 재개했고, 이번 달 성과급이 들어온 김에 추후납부까지 완료했다. 속이 후련하다.

추납은 사업, 실직 등으로 소득이 없어 연금을 내지 못한 기간에 대한 보험료를 추후 납부할 수 있는 제도다. 최대 10년(119개월)까지 납부가 가능한데, 아내도 119개월을 모두 채워 납부했다. 10년의 세월을 한 번에 돈으로 메꾼 것이다. 덩달아 미래 연금 예상 수령액도 껑충 뛰었다. 개인적으로 혜택이 큰 제도이지만, 국가적인 관점에서 보면 큰 손해다. 10년을 성실히 낸 사람의 노력을 10년 후에 그대로 메꿔준다는 건 반칙성 치트키에 가깝다. 매월 월급에서 국민연금이 자동 차감되는 직장인들은 실직이나 휴직하지 않는다면 사용하기도 힘든 제도다.

이런 추납제도는 보험, 공제에서는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10년 후에 동일한 비용을 내도 실적을 인정해 준다는데, 지금 돈을 내려 하는 가입자가 어디 있을까? 기금의 운용 변동성이 커지면 손쉽게 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에, 시중의 보험사나 공제조합에서 추납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되려 열심히 돈을 내던 고객이 중간에 해지하는 것이, 보험사 입장에서는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22년 보험계약 유지율은 1년 경과 시 86%, 3년 경과 시 58% 수준이다. 바꿔 말하면 3년 내 42%의 가입자는 보험을 해지한다는 말이다. 해지 시 보험사의 사업비용을 제외하고 나면 환급금도 많지 않다. 장기적인 관점이나 본인의 재무 환경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가입한 소비자만 피해를 보는 구조다. 보험료 납입이 어려우면 유예제도를 통해서 보험 계약의 해지를 막을 수 있다지만, 적용 기간도 1년 내외로 짧고, 보장 혜택도 축소될 수 있어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되짚어보면 추납제도의 존재와 3년 내 높은 보험 해약률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보장제도와 금융 경쟁력이 미흡하다는 지표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실직자가, 미래 빈곤 계층으로 전락할 우려가 높기에 국가가 나서서 치트키 같은 추납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높은 보험 해약률도 아직 우리 사회의 금융 문해력이 높지 않다는 말과 동일하다. 금융 문해력이 높았다면 추납제도는 많은 사람이 반대했을 것이고, 보험과 공제 상품도 신중하게 따져보고 가입했을 것이다.

결국 금융에 대한 관심이 높고, 이해도가 높은 고소득층이 더 많은 혜택을 보는 상황이다. 과거 강남 주부들 사이에 연금 추납제도를 재테크 수단으로 악용했기에, 급히 2020년에 추납 가능 기간을 10년으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미 목돈을 들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추납을 다 해 놓았다. 생명보험도 상속과 증여를 통해 절세 수단으로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소득층은 제도의 빈틈을 알뜰히 혜택으로 챙기지만, 금융 소식에 관심이 낮은 저소득층은 추납기간을 놓치거나. 목돈이 필요할 때 보험 해지를 하며 손해만 늘어간다.

우리는 여태 ’돈 공부’를 너무 천시해 왔다. 돈 공부를 투기처럼 인식했고, 지인이 보험을 추천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입했다. 공제조합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동료들이 하면 좋다고 하니 엉겁결에 가입한다. 주식, 코인 광풍에 전 국민이 올라타 버렸고, 월급을 모아봐도 치솟는 물가와 부동산 소식에 상대적 박탈감만 늘어간다. 짧은 기간에 일확천금을 거둔 파이어족이 모든 직장인의 꿈인 세상이다.

연금, 공제, 보험 모두 우리의 미래를 담보하고, 더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하는 재정적 밑거름이다. 본연의 사업을 잘 운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 국민의 금융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관련 제도가 바뀌거나 금융 환경의 변화가 예상되면 이를 국민에게 쉽게 알리고, 사전에 대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모든 국민도 추납 같은 제도가 일부 계층의 재테크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열심히 돈 공부를 하고 눈을 부릅떠야 한다. 공부는 끝이 없고, 계속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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