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보다 시급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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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개혁보다 시급한 일
  • 고라니 88three@gmail.com
  • 승인 2024.02.1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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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보험라이프]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고라니] 최근에 황당한 요청을 받았다. 월급날 국민연금을 떼지 말아 달라는 요구였다. 지금 내 담당업무는 직원들의 급여 지급인데, 어차피 나중엔 받지도 못할 거 국민연금을 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반쯤은 장난으로 한 소리였겠지만 돈 문제에 있어선 그 무엇도 장난으로 들리지 않는다. “법으로 강제하고 있어 담당자 재량으로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라고 진지하게 답했다.

국민연금 이슈는 몇 년째 식지 않는 뜨거운 감자다. 문제가 있다는 건 진작 인지했지만, 누구도 고치려고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춘 이후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저출산 고령화로 기금 고갈이 빨라질 거라는 문제 제기만 계속됐을 뿐이다.

현재 기준으로 30년 동안 9%의 보험료를 내면 소득의 약 30%를 연금으로 받는 구조다. 그러나 이 상태가 유지될 거라 믿는 사람은 없다. 올해 합계출산율이 0.7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 예상되는 가운데 연금재정 고갈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2~30대 중엔 본인이 연금을 받을 시기가 되면 못 받을 것이 뻔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 베이비부머 세대를 부양하기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건 불공평하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하지만 불공평으로 따지면 윗세대도 할 말은 많다. 연금 없는 부모를 사적으로 부양하면서, 자신의 노후를 위한 연금보험료를 내 왔기 때문이다.

세대 간 불평등은 결과에 대한 해석의 하나일 뿐 원인에 대한 진단도, 문제해결책도 되지 못한다. 문제를 심화시킨 책임은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린 정부에 있다. 2003년부터 5년마다 암울한 재정추계가 발표됐지만, 국민의 반발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연금개혁을 다음 정권으로 넘겨온 정부 말이다.

그 와중에 국민연금이 사기업의 경영권 승계에 일조하거나 의결권을 남용했다는 비판이 계속되니 연금개혁이 추진력을 얻기 어려운 건 당연하다. 국민연금 전문가집단 내에서도 “재정안정론자”와 “소득보장론자” 간의 진영논리에 몰두해 국민과의 소통은 안중에 없었던 것도 문제다.

국민연금 개혁은 불가피해 보인다. 보험료를 올리거나, 국민연금 수급시점을 늦추거나, 소득대체율을 낮추는 방식으로 진행될 거다. 그러나 방법론을 정하는 일보다 우선해야 할 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연금을 둘러싼 세대갈등론이 계속되는 이유도 결국은 연금시스템에 대한 신뢰 대신 내가 낸 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문화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연금개혁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설득하고, 형평성 있는 제도개혁을 이루겠다는 소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개인의 노후를 외면하지 않을 거라는 사회적 믿음이 형성되지 않을까. 그 전에 연금개혁은 요원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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