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이 기술까지 보호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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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이 기술까지 보호할 수 있을까?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4.02.2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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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유출, 침해 피해가 늘어나며 기술 자체를 보호할 수 있는 보험상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술 유출, 침해 피해가 늘어나며 기술 자체를 보호할 수 있는 보험상품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기술 유출 문제가 심각하다. 최근 5년간 반도체, 2차전지 등 국가 핵심기술의 해외유출 피해액은 25조원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범죄 입증, 피해액 산정의 어려움 등으로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고 있다. 검찰이 기술 유출 피해금액 산정 기준 변경 등 제도개선에 나선 가운데, 보험업계에 새로운 기회가 생길지 주목된다.

위협받는 기술

국내에서 기술이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형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도급 관계로 얽힌 대기업이나 경쟁사가 기술을 탈취하는 ‘침해’, 국가 핵심기술 등이 해외로 넘어가는 ‘유출’이 그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간 중소기업의 기술침해 피해건수는 298건, 피해액은 3024억원에 이른다. 피해 규모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제대로 된 대응조차 어렵다는 점이다. 약 75%가 증거 등 입증 자료 부족으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피해가 대기업과의 하도급 관계에서 발생한 경우 입증은 더 힘들다.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에는 생존이 달려있어 문제 제기부터 쉽지 않다. 막다른 길에서 법정 다툼을 시작해도 업무 제휴를 위해 넘겨준 기술이 강압적 탈취였단 입증은 피해자의 몫이다. 2018년 50% 수준이었던 대기업-중소기업 간 특허소송의 중소기업 패소율은 계속 증가, 80%에 육박한다.

기술 유출은 국가적 문제다. 국가정보원이 적발한 산업기술 해외 유출건은 2018년~2022년에만 93건, 추산 피해액은 25조원에 달한다. 특히 2차전지나 반도체 등 국가 핵심기술로 세계적으로도 우위에 있는 분야에서의 유출이 많다는 점에 우려가 크다.

이에 대해 가장 시급한 개선과제로 꼽히는 건 솜방망이 처벌이다. 현행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은 기술을 해외로 유출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과 15억원 이하의 벌금형(국가핵심기술),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억원 이하의 벌금형(산업기술)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하지만 이러한 처벌규정은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최종 무죄율은 30%를 상회하며,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례는 55%에 달한다. 범죄에 대한 입증, 피해액 산정의 어려움 등이 그 이유다.

부족한 보험

기술과 관련된 피해를 보장하는 보험도 존재한다. 기술이 유출된 경로가 해킹 등 사이버사고로 인한 거라면 사이버보험, 임원의 업무상 부당행위로 초래된 거라면 임원배상책임보험이 있다. 또 중소기업의 기술 보호를 위한 정책보험도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 보험이 원론적으로 기술을 보호한다고 말하기엔 다소 부족하다. 임원배상책임보험이 보장하는 건 결국 3자에 대한 배상책임이다. 기술보다 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사이버보험도 유출사고로 인한 조사비나 복구비, 운영 중단에 따른 손실, 배상책임 등을 보장할 뿐, 기술을 주된 목적물로 두진 않는다.

기술보호 정책보험은 특허권, 임치기술, 실용신안권, 디자인권을 보유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보험기간(1년 또는 3년) 내 발생한 기술 관련 법정 분쟁에서 소요된 법률비용(3000만원 또는 5000만원)을 보장하는 형태다. 기본적으로 피소에 대한 대응으로 구성되며 특약으로 소송제기 비용 보장을 추가할 수 있다.

현재로선 기술을 보호한다는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상품이지만, 한계도 명확하다. 앞서 언급한 특허권과 임치기술, 실용신안권, 디자인권을 보유한 기업체로 한정되고, 소송이 이뤄질 때 비용만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많은 중소기업이 하도급 관계나 여타 사유로 소송 자체를 꺼리고, 소송으로 가더라도 입증의 어려움으로 패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현실과 괴리가 있다.

애매모호한 피해액

특약을 통해 기술 유출 관련 피해를 보장받는 보험에 가입하는 사례도 있긴 하다. 하지만 기술의 가치를 객관적 가격으로 도출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액은 법원의 판단에 따른다. 보험가액 내에서 법원 판결 금액을 보장하는 식이다.

그런데 기술 유출 피해액을 판단하는 건 법원에도 난제다. 이를 실질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검찰도 마찬가지다. 피해기업은 수백, 수천억원의 손실을 주장해도 정작 판결문엔 ‘불상의 피해액’으로 기재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다.

기술 유출과 관련한 형사 판례에선 가해자가 기술로 인해 얻게 된 이득액(시장교환가격)을 인정하나, 여기에 피해자가 투입한 기술 개발비는 포함하지 않는다. 

민사 판례 역시 가해자가 취득한 기술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양도한 경우 그 수량과 피해자의 단위수량당 이익액을 곱해 손해액으로 추정해주곤 있지만, 직접 관련 비용인 운송비나 보관비, 보험료, 하도급비용 등을 공제한 한계이익설을 취한다.

즉, 형법과 민법 모두 기술 자체의 가치보다는 이를 부수적으로 활용해 얻은 이익만을 고려하는 셈이다. 기술 개발에 투입된 비용과 시간, 인력은 배제된다. 이렇게 나온 피해액 판결에 따라 이뤄지는 보장은, 피해기업으로선 당연히 부족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원가접근법 대두

지난해 대검찰청은 기술 유출 피해금액 산정에 관한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12월 공개된 보고서에선 ‘원가접근법’이 제시됐다. 개발인력의 급여 및 보수, 연구시설 가동에 소요된 제반비용, 개발공정에 사용된 원재료비 등 기술 개발을 위해 기투입된 비용을 기반으로 하는 방식이다. 기술 자체 가치를 평가하고 증명할 수 있는 피해액과 이득액을 산출해야 한다는 골자다.

보고서는 또 명확한 피해액 산정에는 피해기업의 미래 매출액 및 영업이익 감소분 예측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신기술이 구기술을 대체하는 속도를 예측하고 경제적 이익을 계산하는 경제학적 분석법, 기술 유출 발생 시점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률 등을 추정하는 경영학적 분석법을 소개했다. 

본래 양형을 구하는 검찰은 실무적으로, 기술 유출사건과 관련해 피해기업이 개발에 투자한 비용을 합한 금액을 최소한의 피해액으로 정해왔었다. 하지만 법원에선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검찰의 양형 논리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할 근거가 마련된 거다. 향후엔 기술 개발에 들어간 비용이 피해액으로 인정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보험은?

검찰의 연구는 형사 소송에 국한된다. 하지만 피해액 기준을 만들고 이를 양형에 반영한다면, 민사에도 영향을 미친다. 형사 판결에서 인정된 피해액을, 이후 진행될 민사 소송에선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보험적 관점에선 기술 개발에 소요된 비용을 곧 기술에 대한 가치, 최소한의 보험가액으로 산정할 수 있다. 임의의 가입금액을 두고 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려야 하던 데 비하면 훨씬 명확해지는 거다. 처벌이 강해지는 건 기술 유출 피해를 보장하는 보험의 리스크, 기술 유출 범죄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로도 작용할 수 있다. 

기술 유출을 걱정하는 기업들의 가입 니즈 확대 가능성도 있다. 소송에서 이겨도 개발 비용조차 보전받지 못하는 상황에선 그 판결을 토대로 보장하는 보험의 효용도 작다. 하지만 보험으로 일정 수준의 리스크 담보가 가능하다면, 보험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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