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카 대신 마이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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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카 대신 마이카트
  • 고라니 88three@gmail.com
  • 승인 2024.01.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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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한국공제보험신문=고라니] 우리 부부는 결혼하고 4년 가까이 차를 사지 않았다. 꼭 필요할 땐 부모님 차를 빌려 쓴다. 대중교통이 가지 않는 춘천의 산골짜기 팬션에 놀러 갈 때나, 부모님 댁에서 김장김치를 가져올 때처럼 말이다.

대신 마이카트를 애용한다. 우리 부부가 마이카트라고 이름 붙인 이것은 장을 볼 때 끌고 다니는 바퀴 두 개 달린 장바구니다. 작년에 청량리로 이사 온 뒤 큰맘 먹고 장만한 아이템이다.

일요일 아침, 우린 마이카트를 끌고 청량리청과물시장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수많은 동료를 만난다. 바퀴 끄는 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어김없이 마이카트가 다가오고 있다. 빨강, 파랑, 노랑, 어느 땐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가 그려진 격조 높은 장바구니도 보인다.

‘롯데마트’라고 써 있는 우리의 투박한 마이카트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어떠랴. 우리 카트는 사과 10개와 무 2개, 제주당근 5개, 바나나 1송이, 각종 버섯과 양상추를 한꺼번에 쑤셔 넣어도 엄살 부리지 않고 올곧게 제 갈 길을 간다.

청량리시장의 물가는 놀랍도록 저렴하다. 일반 대형마트의 3분의 2 가격, 심할 땐 반값으로 각종 과일과 야채를 살 수 있다. 운이 좋은 날엔 떨이로 바나나 10개를 2천 원에 사 올 때도 있다. 단돈 3만 원으로 소고기 샤브샤브 4인분 재료를 듬뿍 살 정도니 생활비가 저절로 절약된다.

키포인트가 하나 더 있다. 우리 부부는 모두 공공기관에 다녀 명절선물이나 포상금으로 현금이 아닌 온누리상품권을 받는다. 집 근처에 시장이 있는 덕에 온누리상품권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으니 천국이 따로 없다. 온누리상품권 5만 원을 챙겨 위풍당당하게 길을 나서면 그야말로 폭풍쇼핑의 시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 부부도 마이카를 끌고 백화점이나 코스트코에 가는 또래를 부러워할 때도 있다. 주변의 또래 부부는 하나도 빠짐없이 이미 차를 샀다. 게다가 주말에 청량리시장에서 장을 본 이야기를 하면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뭘 그렇게까지 아끼면서 사느냐는 식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즐겁게 마이카트를 끌고 집을 나설 수 있는 건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산을 늘려 돈에 덜 구애받고 살겠다는 목표다.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는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회사에 종속되기 십상이겠다는 경각심이 들었다. 우린 상사가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에너지를 쏟고 싶다.

그래서 여러모로 궁리를 해왔다. 소비만 줄인 게 아니다. 투자와 실거주를 분리해 우리 집은 월세를 주고, 와이프와 난 30년을 훌쩍 넘은 소형 아파트에 임차로 들어오기도 했다. 주말에 투잡도 뛴다. 오피스텔 청소도 하고 앱테크로 기프티콘을 받아 니콘내콘에 팔기도 한다. 회사에 걸리면 잘릴 수도 있으니 비밀이다.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아이 핑계는 대지 않기로 말이다. 엄마, 아빠가 너 낳기 전에 얼마나 아끼고 살았는데, 그 덕에 너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거야! 라는 말은 금기어다. 우린 아이에게 더 나은 삶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거니까.

그러니 우린 이번 일요일에도 마이카트를 끌고 집을 나설 거다. 오늘은 어떤 떨이를 만날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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