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해보험 딜레마 빠진 행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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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해보험 딜레마 빠진 행안부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3.12.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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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된 보험료 지원 예산에 3자 기부 가입은 진통
가입자 역차별 문제로 재난지원금 차액 지급 결단
정부 보장 높으면 임의보험 가입 수요엔 되레 ‘독’
지난 7월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발생한 집중호우 피해 복구 현장. 사진=경북소방본부
지난 7월 경상북도 예천군에서 발생한 집중호우 피해 복구 현장. 사진=경북소방본부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행정안전부가 풍수해보험 딜레마에 빠졌다. 가입률을 높이려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가시적인 효과 없이 잡음만 일고 있다.

3자 기부를 통한 가입 활성화는 행안부 예산이 발목을 잡았다. 풍수해보험료 자부담분을 지원하려는 기업이 급증하자, 급기야 정부가 지원해야 할 예산이 모자라 중단시키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가입자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보험금과 재난지원금 차액을 추가 지급하기로 한 건 최근에야 이뤄지고 있는데 실무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의 혼란을 빚었다. 여기에 정부 보장 확대가 정작 풍수해보험 가입률 제고엔 악재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3자 기부 중단

3자 기부는 기업이 가입 대상자의 자기부담금을 지원해 풍수해보험에 단체로 가입시켜주는 형태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있어도 자기부담금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영세 소상공인도 보장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마련된 장치다.

소상공인 풍수해보험 가입률을 높여야 하는 행안부와 많지 않은 비용으로 사회공헌에 이바지할 수 있는 기업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특히 기업은 본업과 관련된 분야에 대한 리스크 관리 차원의 투자로도 활용할 수 있었다. 외식업자들이 곧 고객인 배달의민족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는 큰 호응을 일으키며 여러 산업군으로 유행처럼 퍼져나갔다.

지난해 7월 경기도 지역 외식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배달의민족 풍수해보험 가입 지원. 사진=배달의민족
지난해 7월 경기도 지역 외식사업자들을 대상으로 했던 배달의민족 풍수해보험 가입 지원. 사진=배달의민족

그런데 기업의 3자 기부가 늘면서 예산 문제가 불거졌다. 보험료의 70~92%를 정부가 지원하는 시스템 탓이다. 올해 풍수해보험료 지원을 위해 책정된 예산은 351억원, 이 중 소상공인에 배정된 금액은 108억원이었다. 그런데 1~2월에만 이 예산의 절반가량인 50여억원이 소진됐다.

행안부로서는 기존 계약의 갱신과 개인의 신규 가입, 전통시장 소상공인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전통시장 소상공인의 경우 화재에 더 취약한 특성상 풍수해보험 가입이 시급했다.

행안부는 결국 전통시장 소상공인을 제외한 3자 기부 방식의 단체 가입을 잠정 중단했다. 이로 인해 중소벤처기업부, 소상공인연합회와 협약을 맺고 소상공인 10만명에게 풍수해보험 가입을 지원하려던 카카오페이의 계획도 차질을 빚었다.

재난지원금 차액 지급

지난해 4월 5일(시행, 법 개정은 1월 4일)부터 행안부는 풍수해보험금과 재난지원금 간 차액을 지급하기로 했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받는 풍수해보험금이 지자체가 지급하는 재난지원금보다 적으면 그 차액을 주는 형태다.

이는 풍수해보험의 가입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재난지원금이 거론됐던 탓이다. 풍수해보험 가입자는 재난지원금을 중복으로 받을 수 없어 형평성에 어긋나고, 이 때문에 굳이 보험료 일부를 부담하면서까지 풍수해보험에 가입하지 않는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곧 실효성에 관한 의문이 제기됐다. 최소 복구비만 정액으로 지급하는 재난지원금은 애초에 풍수해보험금보다 많기 어려운 구조다.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이어졌다.

재난지원금과 풍수해보험금 비교. 자료=제주특별자치도
재난지원금과 풍수해보험금 비교. 자료=제주특별자치도

실질적으로 재난지원금 차액 지급이 이뤄지기 시작한 건 지난달부터다. 올해는 유독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컸다. 이에 따라 7월 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본부장 행안부 장관)가 수해 피해 지원기준을 상향했고, 재난지원금이 늘어나며 비로소 풍수해보험금보다 커진 거다. 지자체들은 차액 지급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근거 없는 위로금

그런데 엄밀히 따지면 이는 법 개정에 따른 차액 지급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실에 맞춰 재난지원금을 올렸지만, 한시적 조치였고 이마저도 여러 풍수해 중 수해에만 한정됐다. 여기에 풍수해보험 가입자에 대해선 역차별 논란을 해소하려 약간의 위로금을 더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풍수해보험 가입자는 그 원인이 수해로 인한 피해일 때만 기존 보험금에 위로금을 더 받게 되는 구조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주택 전파 피해 지원기준 상향‧확대’안에 따르면 66㎡ 미만~114㎡ 이상까지 풍수해보험 가입자가 받을 수 있는 금액은 5600만~1억2800만원, 미가입자는 5100만~1억300만원이다.

풍수해보험 가입자가 미가입자에 비해 적게는 500만원, 많게는 2500만원을 더 받는 셈이나, 이 중 풍수해보험금을 제외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미가입자에겐 3100만~6700만원이 증액됐지만, 가입자에겐 1100만~2600만원이 늘었다. 이 증액분에 대한 별도의 근거도 공개되지 않았다.

주택 전파 피해 지원 기준 상향안. 자료=행정안전부
주택 전파 피해 지원 기준 상향안. 자료=행정안전부

종합하면, 미가입자에 대한 보장을 강화하면서 가입자에게 주는 위로금도 신설했다. 형평성을 언급했으나 미가입자에게 더 큰 폭으로 증액됐다. 법령에선 풍수해보험금과 재난지원금의 차액을 줄 수 있도록 했지만, 차액보다 많은 지급이 이뤄지게 됐다.

반복되는 악순환

정부의 직접적인 보상안 강화는 신속하고 합리적인 피해 구제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는 다시 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일정 수준의 보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풍수해보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으로 작용할 수 있다.

풍수해보험은 많은 보험료 지원이 있어 가입자의 자부담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낮은 가입률은 그만큼의 효용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난지원금 상향은 풍수해보험 가입으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을 더욱 감소시킬 위험을 내포한다.

지난 7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 주재한 기후위기 대응 수해방지 범정부 TF Kick-off 회의. 사진=행정안전부
지난 7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 주재한 기후위기 대응 수해방지 범정부 TF Kick-off 회의. 사진=행정안전부

실제로 한도 상향 전 풍수해보험 가입자가 받는 보험금은 주택 전파 피해 기준 4500만~1억200만, 미가입자가 받는 재난지원금은 2000만~3600만원으로 그 격차가 더 컸다. 2500만~6600만원의 차이가 나던 데서 500만~2500만원으로 갭이 줄었다. 의무가 아닌 보험에 가입할 유인은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풍수해보험료를 지원하는 예산도, 재난지원금을 구성하는 예산도 모두 행안부에서 나온다. 풍수해보험 가입률을 높이면서, 동시에 미가입자에 대한 구제방안도 고심해야 하는 행안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보험업계에선 풍수해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수의 가입을 우선해 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방식에선 실질적인 보장이 이뤄지기 어렵고 이것이 가입 대상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적은 보험료, 약간의 보장보단 적정한 보험료, 확실한 보장을 원하는 수요가 클 것”이라며 “담보 범위를 넓히고 부분보상보다 실손보상 위주로 바꾸면서 보험사들의 리스크가 커지는 부분은 국가재보험 개선을 통해 효과적으로 분산한다면 단순히 보험료만 지원하던 것보다 훨씬 나은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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