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이럴 거면 차라리 사전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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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이럴 거면 차라리 사전심사를
  • 김환범 보험설계사 kgn@kongje.or.kr
  • 승인 2023.11.0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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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김환범 보험설계사] 금융감독원이 독감 특약에 제동을 걸었다. 이제 50만~100만원까지 치솟았던 독감 플랜은 사라지게 됐다. 이를 판매해오던 보험사들은 한도를 20만원으로 낮출 예정이다.

이 특약은 가입자가 독감에 걸리면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 보험금이 50만~100만원이었다. 심하면 사망에도 이를 수 있는 병이라곤 하나, 치료는 약을 받는 게 전부인 걸 생각하면 보장이 과했다. 금감원의 우려도 이 부분이었다.

보험의 보장은 적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럴(moral hazard)을 유발하기 쉽다. 더 나아가 보험금 때문에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한다. 어디까지나 만일의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지, 사고가 오히려 행운이 돼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독감은 상해가 아닌 질병이다. 고의로 일으키거나 조작하기 어려운 문제다. 물론 100만원의 보험금을 받으려 독감에 걸린 가족과 접촉하는 경우는 가능할 수 있으나, 그렇다 해도 손해는 보험사의 몫이다. 소비자 피해를 유발할 만한 요인은 없다.

과거엔 보험상품을 만들 때 금감원에 사전신고를 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신속한 상품 개발에 저해된다는 지적이 많았다. 2015년 금융당국은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 발표를 통해 사전신고를 사후보고 형태로 개선한다고 공표했다. 이로써 의무보험, 최초로 개발하는 위험보장을 제외한 모든 상품은 금감원 신고 없이 만들 수 있게 됐다.

여러 보험사, 그들의 수많은 상품 중 소비자의 선택을 받으려면 소비자에게 좋은 상품을 내놔야 한다. 소비자에게 좋은 보험이란 결국 보험료는 싸고, 보장은 큰 상품이다. 보험사는 소비자를 잡기 위해, 그러면서도 마진은 남길 수 있는 선에서 상품을 만든다. 이렇게 만든 상품이 위험하다며 금감원이 막아섰다.

비단 이번만이 아니다. 근 몇 년을 돌아보면 많은 상품이 보험사 간 과열 경쟁, 이로 인한 소비자 피해 우려란 이유로 제한됐다. 그때마다 다음 달부터 한도가 축소된다며 막바지 절판마케팅이 벌어졌다. 조급해진 보험사와 보험설계사, 소비자 사이에 체결되는 계약은 다시 충분한 설명과 고민의 과정을 건너뛰며 불완전판매란 부작용으로 돌아왔다.

보험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다. 특히 국내 보험사 대부분은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이다. 어떤 특약을 만들었을 때 이게 자사에 손해가 될지, 아닐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다. 혹여 여기선 손해가 날 게 분명하더라도, 이를 통해 또 다른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정말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사안에는 단호하되, 보험사에 대한 걱정은 조금 접어둬도 될 것 같다. 상품 개발의 자율성을 높이겠다며 도입한 사후보고의 실효성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아니라면 예전의 사전신고제로 돌아가는 편이 낫다. 필자가 상품을 개발해본 적은 없지만,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쯤은 안다. 이렇게 나온 상품이 초기에 반짝 팔리다가 사라지는 건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다. 이젠 그만 판매하라는 식의 뒷북 행정은 오히려 가능성에 불과했던 소비자 피해를 현실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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