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가입 고지의무, 한국과 영국의 차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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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가입 고지의무, 한국과 영국의 차이점
  • 한창희 국민대학교 교수 chgm@kookmin.ac.kr
  • 승인 2023.11.02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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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씨는 보험에 가입하면서 보험사 전속설계사에게 자신의 지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런데 설계사가 청약서상의 질문에 답변을 부정확하게 기입했다. 이 경우 고지의무위반인가?

# B 의료장비제조업체는 책임보험갱신을 위해 보험중개사에게 다수 병원이 그 제품을 승인없이 사용하여 발생한 사고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런데 보험중개사가 이 병원의 책임보험을 수배할 경우, 보험자에게 사고 관련 사실을 반드시 고지하지 할까?

# C보험계약자가 창고에 임치된 콩을 부보할 때, 보험계약자는 2만 톤의 콩이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약 2배에 달했다. 그런데 현장책임자가 창고에 입출고하는 콩의 정확한 기록을 유지하기 않아서 정확한 수량을 몰랐을 경우, 이를 알지 못한 보험계약자는 고지의무위반인가, 아닌가?

이처럼 고지의무위반은 상황에 따라 어떻게 적용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보험계약자가 보험자에게 어디까지 정보를 제공해야 고지의무를 위반하지 않은 것인지 그 기준이 불명확하고, 이에 따라 보상금 갈등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우리나라 보험법과 영국보험법상의 고지의무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후자는 2015년 보험법에 따라서 크게 개정됐고, 우리나라 해상보험법에는 해상보험업계의 중심으로서의 영국의 법률과 관습이 그대로 적용되므로 개정된 내용의 고지의무자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보험법상 고지의무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중요한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한 경우 보험자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고, ‘대리인에 의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에 대리인이 안 사유는 그 본인이 안 것과 동일한 것으로 한다’고 명시돼있다.

구체적으로 보험계약자는 어느 사실의 존재와 중요성에 대해 적극적으로 보험자에게 알려야 한다.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어느 사실의 존재, 당해 사실의 중요성, 그리고 고지의 필요성을 인식할 수 있는데 이를 부주의하거나 또는 부실고지한 경우도 고지의무 위반이다.

또한 대리인에 의하여 고지할 때에는 본인이 알고 있는 사실만이 아니라 대리인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도 고지하여야 한다. 다만, 주의를 게을리하여 고지하지 않은 경우, 탐지의무는 인정되지 않는다.

반면, 영국 2015년 보험법은 고지의무자인 보험계약자의 알고 있는 사항, 즉 보험계약자의 인식 외에도 보험계약자의 인식으로 간주되는 것에 관해 새롭게 규정했다.

이와 관련 “보험계약자는 자신의 조직이나 보험중개사, 대리인을 통해 적극적인 정보조사에 의하여 합리적으로 밝혀져야 하는 정보를 인식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규정하여, 보험계약자는 고지할 정보를 서류, 기록보관소, 전자적 조사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질문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조사할 의무가 부과됐다.

그리고 기업보험에 한해 현행 우리 보험법에서는 여전히 존치되어 있지만 보험계약자의 대리인의 고지의무를 인정하던 보험중개사 등의 고지의무를 폐지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대규모주식회사의 경우 상급관리자가 인식한 것을 고지하여야 하고, 상급관리자를 ‘보험계약자의 활동이 어떻게 관리되고 조직되는가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인’라고 정의하였다. 이 상급관리자는 CEO, 재무이사 등 상급집행임원, 이사 등이 포함된다.

예컨대 보험계약자의 법률부서가 보험금청구를 다루고 있는 경우, 보험자에 대한 위험의 제공을 준비할 목적으로 보험금청구데이터의 편집에 관여하는 법률부서의 개인은 보험계약자의 인식으로 취급되고, 회사가 보험조건을 협상하기 위하여 예컨대 변호사와 같은 외부자문인을 고용하는 경우, 외부자문인은 보험을 획득하는 과정에 개입한 것이기 때문에, 그 자문인의 인식은 보험계약자의 인식으로 취급될 수 있다.

다음으로 수천명의 고객으로부터 보험금청구과정을 알고 있는 대형 보험중개사가 영업관계를 통해 알게 된 보험계약과 무관한 정보를 고지하여야 하는가, 즉 내부정보의 문제이다. 2015년 보험법은 보험계약과 무관한 자와의 영업관계를 통해 대리인 또는 대리인의 피용인에 의해 획득된 정보를 내부정보라고 하고, 개인의 내부정보는 개인이 인식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으므로 고지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한다.

셋째, 영국의 1989년 도라호사건에는 요트의 선장의 형사처벌 사실을 선주인 보험계약자가 보험자에게 고지하지 않은 경우. 선주는 선장의 특성을 점검했어야 하였기 때문에 통상적인 영업과정에서 그 사실을 인식했어야 한다고 판시하여 보험계약자의 조사의무를 인정했다.

2015년 보험법은 보험계약자는 조사가 질문 또는 다른 수단에 의해 행해지든 이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정보조사로 합리적으로 밝혀질 수 있는 사항을 고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 보험법에서는 보험계약자의 탐지의무가 인정되지만, 보험계약자가 합리적 조사의무를 진다고 하여 푸아로와 같은 탐정일 필요는 없고, 합리적인 기업인으로 행위하면 족하다.

넷째, 보험계약자의 대리인의 인식사실의 문제이다. 우리나라의 보험설계사는 대부분 보험자의 전속이거나 GA과 같은 보험대리점 소속으로 보험자의 대리인이다. 보험계약자가 보험설계사를 통해 체결할 때 보험설계사는 보험계약자의 대리인으로 고지의무를 지는가의 문제이다.

영국에서는 1929년의 뉴스홀름사건에서 보험모집인이 보험자의 대리인이어도, 청약서에 기재하는 것은 보험계약자의 대리인으로 본다는 ‘전환된 대리인’이론이 확립되었고, 이것이 우리나라 보험법에도 반영되어 있다. 2007년 영국의 법률개정위원회는 계약성립전 정보를 획득하는데 있어서 통상 보험자를 위하여 행위하는 보험모집인은 청약서에 기입하는 동안에도 보험자의 대리인으로 할 것을 제안하였고, 2015년 보험법은 보험중개사와 같은 보험계약자의 대리인의 고지의무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였다.

그렇다면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처음 언급했던 사례에 대해 살펴보자.

첫째, A씨의 사례는 보험계약자가 보험자의 전속보험설계사에게 보험계약체결시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지만 설계사가 청약서상의 질문에 답변을 부정확하게 기입한 경우다. 우리 보험법상은 보험설계사는 보험계약자의 대리인이기 때문에 고지의무위반이지만, 영국법에서는 ‘전환된 대리인’이론의 폐지논의와 관련해 다툼의 소지가 있다.

둘째, B의료장제조업체가 책임보험갱신을 위해 보험중개사에게 다수 병원이 그 제품을 승인없이 사용하여 발생한 사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였고, 이 보험중개사가 이 병원을 위해 책임보험을 수배하는 경우 이 병원과 보험계약을 갱신하는 보험자에게 사고 관련 사실을 고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우리 보험법에서는 보험계약자의 대리인의 독자적인 고지의무가 인정되므로 고지의무를 부담한다. 반면 영국 보험법에서는 보험계약과 무관한 사람과의 영업관계를 통해 획득된 ‘내부정보’에 대해서는 보험계약자가 인식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으므로 고지의무위반이 아니다.

셋째, C보험계약자가 창고에 임치된 콩을 부보할 때, 보험계약자는 2만 톤의 콩이었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약 2배였고, 현장책임자가 창고에 입출고하는 콩의 정확한 기록을 유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알지 못한 사건에서는 우리 보험법상 보험계약자는 탐지의무를 지지 아니하므로 고지의무위반이 아니다. 반면 영국 보험법상으로는 합리적인 조사의무에 따라, 보험계약자가 이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정보조사로 충분히 밝혀질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실제 콩의 양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고 이를 고지하지 않은 것은 고지의무 위반이다.

우리 보험법상 고지의무자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중요한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한 경우 보험자는 보험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고지의무자인 보험계약자가 고지해야 하는 인식사실은 IT와 근래 발전을 거듭하는 챗GPT와 같은 정보검색기술에 영향을 받고, 이는 변화의 속도가 빠른 특징이 있다. 이와 관련된 선진 외국 보험법제의 동향을 살펴 합리적인 개선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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