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환경책임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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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환경책임보험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3.11.0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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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어려울 땐 컨소시엄…안정되자 보험사 ‘pool’
손익분담 국가재보험 도입해놓고 또 리스크 분산?
안정화 펀드 발판, 부처 입지 다져 국‧공영화 시각
지난 2021년 3월 울산 에쓰오일 공장에서 발생한 송유관 원유 유출사고. 사진=울산해양경찰서
지난 2021년 3월 울산 에쓰오일 공장에서 발생한 송유관 원유 유출사고. 사진=울산해양경찰서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환경부가 환경책임보험 운영방식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 컨소시엄 경쟁입찰로 이뤄지던 사업자 선정 절차를 바꾸는 게 골자다. 유력한 방안 중 하나로 보험사 pool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

보험업계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현재 환경책임보험은 pool 운영이 적합한 경우와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앞서 보험사의 과도한 이익을 제한하겠단 논리로 손익분담 국가재보험을 강행한 상황에서, pool 형태로의 전환에 따른 기대 실익이 크지 않다는 점도 지적된다.

보험사 pool 

여기에서 보험사 pool은 경쟁입찰이 배제된 완전 공동인수를 말한다. 원론적으로 다수의 보험사가 하나의 대리인을 지정, 공동 언더라이팅을 통해 특정 위험을 인수하는 방식이다. 통상 대수의 법칙이 적용되지 않거나 소수 보험사의 담보 가능 범위 밖인 경우, 전형적인 방법으론 인수가 어려운 위험들이 이렇게 운영된다.

국내에선 원자력보험과 방위산업보험, 소형선박 및 보세창고화물보험, 자동차보험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은 각각의 특별협정에 근거한다. 원자력보험은 원자력보험 공동인수협정, 방위산업보험은 손해보험 공동인수 특별협정, 소형선박 및 보세창고화물보험은 해상 및 보세보험 공동인수협정, 자동차보험은 자동차보험 불량물건 공동인수에 관한 상호협정을 두고 있다.

보험사 pool 운영에 협정이 필요한 건, 보험사의 공동행위는 자유로운 시장 경쟁 가치와 상충할 수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pool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도 중요하다. 보험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회 역시 이러한 협정의 인가 등에 있어선, 반드시 공정거래위원회와 협의해야 한다.

환경책임보험의 경우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에 환경책임보험 pool을 구성할 수 있는 근거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사업의 효과적인 운영과 위험 분산을 위해 필요한 경우란 단서가 붙는다.

미약한 명분

논란은 환경책임보험에 이같은 시스템이 굳이 필요한가란 의문에서 시작된다. 원자력보험은 개별 보험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 특정 위험의 담보, 방산보험은 군사기밀 유출 방지, 소형선박 및 보세창고화물보험과 자동차보험은 보장 사각지대 해소를 각각의 목적으로 한다.

우선 원자력보험과 비교하면, 환경책임보험의 리스크는 일부 보험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거대 특정 위험이라기엔 무리가 있다.

환경책임보험의 배상책임한도. 자료=환경책임보험사업단
환경책임보험의 배상책임한도. 자료=환경책임보험사업단

환경책임보험의 배상책임한도는 가군 기준 2000억원(나군 1000억원, 다군 500억원)으로 원자력손해배상법에서 정한 원전사고 손해배상 책임한도 9억SDR(국제통화기금 특별인출권, 약 1조6000억원)의 8분의 1 수준이다. 더구나 원자력보험은 깊은 사고 심도에도 모수가 극히 적다. 일반적인 보험 구조로는 보장이 어려워 보험사 pool이란 방식이 불가피했다.

방산보험, 소형선박 및 보세창고화물보험, 자동차보험과의 괴리는 더 크다. 보안이 크게 요구되는 물건도 아니고, 수익성이 없거나 손해율이 높아 보험사가 꺼리는 물건도 아니다. 오히려 환경부가 앞서 손익분담 국가재보험 도입을 위한 논리로 보험사의 과도한 영업이익을 꼽았던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과거로 회귀

보험사 pool 구성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어려운’이란 전제가 붙는다. 정상적으로도 가능하다면 구태여 일반적인 시장 원리나 공정거래법령에 반하는 예외 협정을 둘 이유가 없다.

과거 국내 보험업계에선 많은 협정이 운용되고 있었다. 이들이 대거 폐지된 건 199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 계기였다. 보험업계엔 경쟁을 제한하는 각종 법령 및 관행의 폐지가 요구됐고, 점차 어쩔 수 없는 상황의 해소나 더 소비자 편익 증진 등 더 중요한 공익적 목적을 지향하기 위한 방향으로 전개됐다.

만약 보험사 pool 방식이 환경책임보험 도입(2016년)부터 논의됐었다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보험사는 환경책임보험에 회의적이었다. 리스크가 얼마나 될지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과 참여를 주저하는 보험사들, 하지만 환경책임보험은 일부 보험사만 컨소시엄 형태로 참여한 지금의 구조로 출범했다.

걱정과 달리 환경책임보험의 손해율은 양호했다. 데이터와 경험이 쌓이자 보험사들도 적극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현재 운영 중인 제3기 사업자 선정 때는 현행 간사인 DB손해보험 컨소시엄과 삼성화재 컨소시엄이 마지막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경쟁 제한

환경부는 pool 방식 검토의 배경으로 현 컨소시엄 체제에서의 경쟁 제한적 요소를 문제로 꼽았다. 원하는 보험사 모두가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완전 pool 방식이 되면 pool에 들어온 모든 보험사에 리스크를 배분하게 된다. 이를 통해 경쟁 제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사업자 선정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담긴 연구용역 보고서(2023년 4월). 자료=환경산업기술원
사업자 선정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담긴 연구용역 보고서(2023년 4월). 자료=환경산업기술원

그런데 이는 엄밀히 따지면 환경부가 고민할 사안이 아니다. 사회적 필요에 의해 법령으로 규제되고 가입이 강제된 환경책임보험의 주무부처는 의무 가입 대상자의 편익을 우선해야지, 사업에 참여하지 못한 보험사를 배려할 입장이 아니란 거다.

더구나 완전 pool 방식에선 필연적으로 또 다른 측면의 경쟁 제한이 발생한다.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한 보험사 컨소시엄 간 경쟁이 그것이다. 어차피 pool에서 배분받는 형태라면, 더 나은 서비스나 저렴한 보험료를 내놓을 이유도 없다. 결과적으로 소비자의 편익이 줄어드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손해율 안정화 펀드

환경부는 보험사의 이익이 크다며 손익분담 국가재보험을 강행했다. 그런 환경부가 많은 보험사가 참여를 주저할 때도 언급하지 않았던 보험사 pool을 현시점에 꺼내든 건, 손해율 안정화 펀드를 만들기 위한 행보라는 의견도 나온다.

손해율 안정화 펀드란 별도의 재원을 적립해뒀다가 사고 발생으로 손해율이 높아질 상황이 되면 이를 투입, 보험요율에 미치는 즉각적인 영향을 줄이자는 게 핵심이다. 올해 3월 마무리된 환경책임보험 요율 체계 검토 연구용역에서 언급됐다.

손해율 안정화 펀드 도입을 제언한 연구용역 보고서(2023년 3월). 자료=환경산업기술원
손해율 안정화 펀드 도입을 제언한 연구용역 보고서(2023년 3월). 자료=환경산업기술원

하지만 이건 현 체계에선 불가능하다. 별도의 펀드 계정을 활용해 낮춘 손해율을 토대로 보험요율을 산출하는 건 보험업법과 맞지 않는다. 현행 보험업법에선 보험요율의 조정은 원수보험사의 계약 및 사고 경험자료를 바탕으로 계리적 방법론을 이용하도록 규정한다. 안정화 펀드를 투입해 요율에 영향을 미칠 손해율을 고치는 건 감독규정에 위배된다.

환경책임보험 하나만을 위해 환경부가 금융위원회 소관의 보험업법 개정을 추진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 때문에 법 개정 없이 손해율 안정화 펀드를 만들기 위한 대안이 필요했다. 여기서 손익분담 국가재보험이 등장한다.

환경부는 3기 사업부터 손익분담으로 더 많은 수입을 환경오염피해구제계정에 적립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이 구제계정 내에선 엄격한 분리가 이뤄져 있지 않다. 계정을 구분하고 재원이 되는 국가재보험 계약을 5~10년 다년계약으로 늘리면, 현행법 체제에서도 얼마든지 손해율 안정화 펀드를 운영할 수 있다.

환경부가 보험사 pool 카드를 꺼낸 건 국가재보험 다년계약 체결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참여 보험사 확대에 있어서다. 5년 이상 재보험 담보력을 제공하는 데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보다 많은 구성원(사업 참여 보험사)이 필요하다. 모든 보험사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보험사 pool은 그런 관점에서 손해율 안정화 펀드 조성을 위한 첫 단계라고도 볼 수 있다.

국‧공영화 수순

일각에서는 처음부터 환경책임보험 사업의 간사를 도맡아온 DB손해보험과의 주도권 싸움이라는 추측도 있다. 특히 손익분담 국가재보험 도입 때 충돌했던 걸 계기로, 향후 정책 결정에 있어 주무부처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포석도 깔려 있다는 거다.

완전 pool 체계에선 환경피해구제법에 의거, 보험사 pool에 배분하는 역할을 환경책임보험사업단이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간사인 DB손해보험의 입지는 지금보다 약해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손익분담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DB손해보험으로선 그나마 재보험 출재로 기대할 수 있던 이득도 감소한다.

이 때문에 DB손해보험 입장에선, 만약 환경부가 손해율 안정화 펀드 조성을 강행하고 이를 막을 수 없다면 완전 pool보다 현재 5개사가 참여 중인 컨소시엄을 확대해 1~2개 보험사를 더 넣어주는 쪽으로 협의하는 게 손해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보험사는 수익이 줄고, 환경책임보험사업단의 입지는 커지는 상황. 이는 다시 환경부가 추진하다 무산됐던 국‧공영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원자력보험처럼 리스크가 거대하지도, 소형선박이나 보세창고, 불량물건 자동차보험처럼 보험 공급이 어렵지도 않은 환경책임보험에 던져진 보험사 pool 화두가 결국엔 국‧공영화 재추진 수순이 아니겠냐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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