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중개사업계에 떨어진 외화송금 ‘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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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중개사업계에 떨어진 외화송금 ‘폭탄’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3.10.2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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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은행권에서 15조9000억 규모 이상 외화송금 적발
송금 심사 강화…연 1만달러 이상 송금 때 한국은행 신고
재보험료 정산업무 차질, 까다로운 절차에 신고도 어려워
보험업법과 상충, 국내 보험중개사만 불리한 규제 논란도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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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은행권에서 터진 이상 외화송금 이슈가 보험중개사업계를 강타했다. 금융감독당국의 제재를 받은 일부 은행이 외화송금 심사를 강화하면서 국내에서 수령한 재보험료를 해외 재보험사로 보내는 정산업무에 제동이 걸렸다.

외국환거래법에 따라 1만달러를 초과하는 금액을 해외로 송금할 땐 한국은행에 신고하라는 게 최근 변경된 지침의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계약 시점에 따라 수시로 외화송금 이슈가 발생하는 보험중개사는 원활한 운영이 어렵다.

보험중개사협회는 관련 의견을 모아 외국환거래법의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긴급 이사회를 열고 기재부와 협의, 유권해석 및 법 개정 추진 등을 위해 김앤장법률사무소 의뢰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규정된 법령에서 업의 특수성에 따른 예외를 인정받아야 하는 경우인 만큼 낙관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이상 외화송금 ‘무더기 적발’

지난해 6월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일제 검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무려 15조9000억원대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 거래가 파악됐다. 한국은행에 신고하지 않고 외국에 돈을 보낸 사례가 너무 많아서 이에 대한 징계에 착수했다.

지난 7월 검사를 받은 13개 금융사 중 특히 규모가 크고 문제가 많았던 4개 시중은행에는 6억원 상당의 과징금과 관련 지점 외국환업무 2~3개월 정지 등의 처분이 내려졌다.

은행들은 재발방지를 위해 외화송금에 대한 검증 절차를 강화했다. 막대한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 문제가 터졌고 실질적인 제재로 이어지자,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은행들이 개선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실제로 최근 진행된 정무위원회 금감원 국감에서 이 문제에 관한 질책이 나왔다.

외국환거래법 ‘제3자 지급’

일부 은행이 지침을 바꾼 건 보험중개사의 외화송금이 제3자 지급에 해당한다는 판단에서다. 외국환거래법에선 제3자 지급의 경우 미화 5000달러를 초과하면 외국환은행에, 1만달러를 넘으면 한국은행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외화송금 누적액이 연 10만달러를 초과했을 때도 한국은행 신고 대상이다.

제3자 지급이란 계약 당사자간 직접 거래가 아닌 형태를 말한다. 국내 보험사가 보험중개사를 거쳐 해외 재보험사로 재보험을 출재할 땐 재보험료를 보험중개사(전용계좌)에 보낸다. 이를 보험중개사가 해외 재보험사로 송금하는 게 통상의 프로세스다. 한국은행 역시 이러한 형태는 제3자 지급에 해당하고, 해외 재보험사로 송금하는 보험중개사에 신고의무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보험업감독규정 충돌

보험업감독규정은 보험중개사의 정‧청산업무와 관련해 보험사와 특약을 맺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용계좌에 입금된 재보험료와 재보험금을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지체없이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이 규정은 실제로 엄격하게 적용된다. 올해도 두 곳의 대형 보험중개사가 정‧청산 지연처리로 금감원으로부터 경영유의 및 개선사항 시정조치를 받은 바 있다. 또 비단 규정 때문이 아니더라도 신속한 업무 처리는 보험중개사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1만달러 초과 송금건에 대한 신고 절차가 더해지면, ‘지체없이 지급해야 한다’는 보험업 감독규정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게 보험중개사들의 일차적인 우려다. 업무량 증가는 물론 지급이 늦어지며 계약에 문제가 생기거나 국제 신인도가 하락하는 상황까지도 걱정한다.

원칙과 현실의 괴리

한국은행은 법령이 명확한 만큼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신고 역시 각 법인이 등록을 마치고 인터넷을 통해 진행할 수 있어, 관련 업무에 심각한 차질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보험중개사들의 체감은 다르다. 갑자기 문제가 불거지다 보니 신청이 몰려 신고가 수리되는 데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외화송금이 막히기 시작한 지난달 중순부터 현재까지 인터넷으로 신고할 수 있는 아이디 등록을 마친 보험중개사는 단 한 곳뿐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중개사 업무에서 외화송금은 매우 빈번하다. 사안에 따라서는 긴급하게 지급이 이뤄져야 할 때도 많다. 행정 절차상 문제로 지연되는 상황에서 원보험사나 재보험사의 클레임이 보험중개사로 향할 공산도 크다.

보험중개사업계 관계자는 “보험사가 재보험료 지급을 미루고, 재보험사는 송금이 되지 않으면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경우도 더러 있다”며 “전용계좌에 입금(재보험료)되는 대로 중개수수료를 제한 뒤 재보험사에 송금해야 하는데 신고까지 거쳐야 하면 너무 어렵다”고 설명했다.

국내 보험중개사 역차별

이러한 규제가 국내 보험중개사에만 족쇄가 된다는 지적도 있다. 규모가 큰 외국계 보험중개사 대부분은 해외에 어카운트 거점을 두고 있어서다. 이러한 케이스에선 국내 보험사가 재보험료를 해외 어카운트 거점으로 송금한다. 보험업법상 보험사업자이자, 거래 당사자인 보험사는 한국은행에 신고해야 할 의무에서 제외된다.

신고의무로 인해 국내 보험중개사들의 외화송금이 지연되면,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 보험중개사와의 경쟁에서 불리해진다.

개선 노력, 출구전략 필요

한편 일각에선 보험중개사업계가 안일했다는 자성도 나온다. 없던 규제가 생긴 게 아니라 이미 있었던 규정인데 관행대로 해오다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법령에 예외 규정을 만들고 신고 절차를 간소화할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보험중개사업계 관계자는 “제3자 지급 관련 규정을 보면 인터넷 구매대행업자가 거주자(구매자)를 대신해 해외로 송금할 땐 한국은행에 신고하지 않아도 된다는 등의 예외 조항도 있다”며 “이들은 업무적 특성을 고려한 규제 제외의 필요성을 정책당국에 개진해왔고, 관행적으로 묵인했던 보험중개사들은 이제야 사태를 인지한 차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인 어려움이 명백한 만큼 보험중개사들도 의견을 모아 논리적으로 전달하면 충분히 예외규정을 만들 수 있다”며 “법 개정은 시일이 오래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이와 별개로 한국은행 신고 절차를 단축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등의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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