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의무위반과 주지의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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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의무위반과 주지의 사실
  • 한창희 국민대학교 교수 kgn@kongje.or.kr
  • 승인 2023.10.11 09: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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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1867년 베이츠 대 헤위트사건을 중심으로

[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언론에 마약 투약 혐의가 보도됐던 연예인이 상해보험에 가입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면, 보험사는 이 사람에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될까? 

이와 같은 주지의 사실 또는 공통적인 인식 사실에 대해 보험자가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매우 애매하다. 이번 칼럼에서는 고지의무위반과 그 기준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 보험법에서는 보험자가 고지의무위반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해 알지 못했을 때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고지의무제도는 기술설에 기반한 신의성실의 원칙을 근거로 한다. 위험에 대한 정보우위자인 보험계약자 측은 위험측정에 필요한 중요한 사항을 신의에 따라 성실히 알릴 의무가 있다. 또 보험사업은 개별적인 보험계약의 위험의 정도에 따라 보험료를 부담하게 하고, 일정한 위험을 초과하는 경우엔 인수하지 않는다는 기본원리에 따라 영위되고 있다. 

마약 투약을 알리지 않고 상해보험에 가입한 연예인에 대해 고지의무를 강조하면 보험자는 보험금 지급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주지의 사실을 강조하면 보험자엔 책임이 발생한다. 
 
주지의 사실 또는 공통적인 인식 사실에 대해 고지의무가 면제되는가에 대한 영국의 리딩 판례는 1867년 베이츠 대 헤위트사건이다. 

1860년대 초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선박건조기술이 발달한 영국은 남부동맹의 발주를 받아 리버풀을 중심으로 선박을 건조했다. 남부동맹은 이를 개조해 전함이나 북부연합군의 해안봉쇄를 돌파하기 위한 순양함으로 사용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북부연합 전함이 침몰하거나 파손됐고 많은 상선이 나포됐으며 결과적으로 북부연합의 해상봉쇄가 돌파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북부연합의 승리 후 열린 알라바마 국제 중재회의(1872~1873년)는 영국이 미국에 1500만달러를 보상하는 것으로 하고 종결됐다.

베이츠 대 헤위트사건의 보험 목적물은 조지아호다. 이 선박은 1862~1863년 그리녹에서 전함이 아니라 북부군의 해상을 돌파하는 선박으로 건조됐다. 전투실적은 초라해 7개 선박(5개 파괴, 2개 예인), 2개의 범선 파괴에 그쳤다. 

조지아호는 영국과 프랑스 해안을 순양하는 미국 북부전함의 주의에서 벗어날 목적으로 1864년 5월 7일 영국의 선박왕 베이츠에게 1만5000달러에 매도됐다. 베이츠는 조지아호가 남부동맹 선박이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보험금 2만3000파운드, 1864년 8월 4일부터 6개월을 보험기간으로 하는 선박보험에 가입했다. 

조지하호는 8월 8일 리버풀항을 출항해 8월 15일 포르투갈해안에서 미국 북부연합군 함대에 의해 포획됐고 베이츠는 보험금을 청구했다.
 
배심은 보험자가 수배사항을 주의 깊게 연구하면 선박에 관한 이전의 것을 상기할 수 있었다고 봤지만, 법원은 보험계약자의 불고지를 면제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1766년 카터 대 보엠사건에서 맨스필드 판사는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은 유럽에서의 문제였기 때문에 멀리 인도네시아 말보로성에 있던 보험계약자 로저 카터는 보험사고인 프랑스의 말보로성 침략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은 반면, 영국의 보험자는 잘 알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보험자는 보험금 지급 책임을 진다고 판단했다. 

반면 베이츠 대 헤위트 사건에서 불러 판사는 “의심스러운 것에 의해 잘 확립된 원칙의 파괴를 허용하는 것과 보험계약자가 통지해야 하는 최대 또는 최소의 정보에 근거한 투기를 허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영국의 거의 유일한 성문보험계약법인 1906년 해상보험법을 개정한 2015년 보험법은 ‘보험계약자의 고지의무가 면제되는 보험자가 인식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사항’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사항’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기업보험에만 적용되고, 우리 법원은 해상보험에 대한 영국의 법과 관습을 국내법의 존재형식으로 인정하므로 해상보험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고지의무는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 체결 시 중요한 사실, 즉 보험자가 보험료 산정 또는 인수 여부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중요 사실을 제공할 의무다. 

영국의 2015년 보험법은 기업보험에 한해 고지의무가 면제되는 보험자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사항’이라 규정하고 있다. 

1766년의 카터사건과 1867년의 베이츠사건은 상반된 결론을 내리고 있다. 2015년 영국 보험법상 보험자의 인식이 추정되는 다른 기준인 ‘당해 영업종목의 보험자로서 알아야 하는 사항’에 관한 판례로는 2013년 선박 ‘호펭7호’에 관한 홍콩 판례가 있다. 

여기에선 원목의 적하가 부보됐는데, 호펭7호는 보험증권 상 중량이 1만톤으로 기재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8960.13톤이었고, 이는 인터넷으로 쉽게 확인 가능했다. 

홍콩 1심법원의 충 판사는 해상보험 거래에서 선박의 명세는 용이하고 쉽게 접근 가능하기 때문에 고지의무 위반이 아니라고 했고, 이 점은 대법원에서도 유지됐다. 
 
한편 영국 2015년 보험법상 고지의무가 면제되는 보험자가 인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두 가지 사항인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사항사항’과 ‘당해 영업종목의 보험자로서 알아야 하는 사항’은 중복될 수 있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보험자가 고지의무 위반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해 알지 못한 때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지 못 한다’고 규정하는 우리나라 보험법과 영국 2015년 보험법상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사항’의 적용은 사실관계에 따른다.
  
고지의무가 면제되는 ‘공통적으로 인식되는 사항’에 해당하는가 여부에 관한 판단에 있어서 정보비대칭의 강자의 지위에 있는 보험계약자의 역선택의 방지라고 하는 보험기술적인 측면과 고지의무제도가 추구하는 보험계약자의 신의성실의무라는 고지의무제도의 두 가지 목적 중 어디에 중점에 둘 것인가의 문제와 연관된다.
 
최근에는 챗GTP 등 디바이스를 통해 취득한 정보를 바탕으로 위험평가와 개별화된 보험료 산정 등 다양한 목적에 활용하는 텔레매틱스보험이 발달하고 있다. 

언더라이팅에 있어서 보험계약 체결 시 정보우위자인 보험계약자가 보험사고의 발생 가능성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인 고지의무제도 뿐만 아니라, 챗GPT 등 인공지능의 발달에 따라 고지의무가 면제되는 보험자가 인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실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영국의 2015년 보험법상 의무가 면제되는 보험자가 안 사실로서 공통적인 인식 사실과 이 조항의 기반을 이루는 1766년의 카터 대 보엠사건, 1867년의 베이츠 대 헤위트 사건에 대한 현대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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