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談] 보험사들이 직급을 줄이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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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談] 보험사들이 직급을 줄이는 ‘진짜’ 이유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3.09.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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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보험談]은 보험업계의 숨은 이야기를 다루는 코너입니다. 보험상품 개발 비하인드부터 각종 카더라 통신까지 보험업계 여러 담론(談論)과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 때로는 보험사들이 민감한 험담(險談)까지도 가감없이 전달한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습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보험은 예로부터 인지산업이라 불렸습니다. 사람과 종이가 중요했기에 보험사들은 많은 인력을 보유하려 노력했죠. 그런데 오늘날엔 많이 달라졌습니다. 수많은 업무가 시스템으로 대체되면서 예전처럼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겁니다. 

외부적으로는 노조가 발달하고, 정년이 늘었으며 육아휴직 등 복지도 강화됐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보험사들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인사 적체죠. 과거 한 해 100명을 공채로 뽑았던 어느 보험사의 지난해 신입사원은 20~30명 수준에 불과합니다. 

최근 한 보험사가 대규모 희망퇴직을 시행해 이슈였는데요. 희망퇴직은 넘쳐나는 인력을 가장 빠르게 줄일 수 있지만, 부담도 상당합니다. 일시에 큰 비용을 지출해야 하고요. 직원 개인 의사에 맡긴다지만 IMF를 겪으며 무자비한(?) 구조조정을 경험했던 우리 사회에서 퇴직에 대한 인식이 곱지만은 않은 것도 있죠.

그래서 많은 회사가 선택하는 방법이 바로 직급 개편입니다.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 같은 전통적인 직급체계를 책임-수석 이런 식으로 통합하는 거죠. 대외적으로는 수평적인 기업문화 확립이나 신속한 의사결정 시스템 구축, 업무 효율성 증대 등의 명분을 내세우면서요.

직급을 단순화하는 게 어떻게 인사 적체를 해결할지는, 불필요하게 많은 인력이 보험사에 어떤 문제로 작용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돈이죠. 직원들의 임금은 상당히 큰 고정 비용이거든요. 

직급이 달라지면(승진) 연봉 인상이 뒤따릅니다. 일단 직급을 줄임으로써 연봉 인상이 발생할 빈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성과급도 그렇고요. 대리부터 부장까지 수석으로 묶인 구조에선, 모든 수석을 대상으로 고과를 산정할 수 있거든요. 여기에 쿼터로 할당한 S, A, B 등의 등급을 매깁니다. 성과급으로 지급할 비용에 대한 계산이 서고, 줄일 수 있다는 의미죠.

직급 개편을 단행한 보험사들은 하나같이 이런 내용을 함구합니다. 기존 대리부터 부장까지를 수석이란 직급으로 통합한 모 회사는 수석 중 누구나 능력만 있다면 부서장을 맡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글쎄요? 기존 대리급 연차의 직원 중 실제 부서장을 맡은, 혹은 앞으로 맡게 될 사례가 있을까요? 더구나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업무에선 여전히 부장이란 직급을 사용하고 있는 회사에서요.

돈을 다루는 금융사, 그 중에서도 예기치 못한 사고를 보장하는 보험사는 가장 보수적인 기업으로 손꼽힙니다. 어제까지의 부장과 대리가 오늘부터 같은 수석이라고 해서 수평적인 문화가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죠. 부장이 결재하던 사안을 대리였던 수석이 결정할 수도 없고요.

물론 대놓고 인사 적체로 진급 누락에 대한 불만도 커지고, 비용도 늘어나니 직급을 줄이겠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보험업계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전혀 믿지 않을, 수평적 기업문화나 신속한 의사결정 같은 명분을 언급하는 건 좀 민망하지 않은가요? 
#보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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