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도배를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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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도배를 배우기 시작했다
  • 고라니 88three@gmail.com
  • 승인 2023.07.2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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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보험라이프]

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고라니] 주말에 도배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토·일 아침 8시 50분에 시작해 5시 40분에 끝난다. 8주 동안 웬만한 종류의 도배지는 모두 다룬다. 안타깝게도 ‘내일배움카드’ 자격이 되지 않아 자비로 결제했다. 본전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된다.

도배를 배우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험이다. 회사는 다닐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붙어 있겠지만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기술을 배워두면 팔다리가 멀쩡한 이상 굶어 죽을 일은 없다. 도배는 타일이나 목공보다 상대적으로 몸에 무리가 덜 가기 때문에, 정년퇴직 이후에도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희망도 있다.

그리고 부동산 투자를 하면서 돈을 많이 아끼리라 계산했다. 경매로 낙찰받은 부동산을 도배하고 팔면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언젠가 다가구주택을 장만하면 세입자용 도배도 직접 할 수 있을 거다. 10월에 새집으로 이사하는데 혹시 색이 바래거나 상한 벽면이 있다면 직접 도배를 하는 게 단기목표다.

우리 기수는 나까지 네 명이다. 20대, 30대, 40대, 50대가 한 명씩이니 각 연령대를 대표해 모인 기분이다. 모두 직장이 있지만 나름의 고민을 갖고 도배를 배우러 왔다. 주말을 포기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풀질하는 동기들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있으면 직장 동료들에게서는 느끼지 못한 동지애를 느낀다.

일주일간 하루도 쉬지 못하니 체력이 금방 고갈된다. 숨 가쁘게 도배지를 재단하고 풀질을 하다 보면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절실하다. 그러나 맥주 대신 먹게 되는 건 욕이다. 강사님은 도배만 40년 넘게 한 베테랑인데 교육방식이 철저하게 도제식이다. 가끔은 내가 학생인지 부하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피곤하지만, 현장 분위기를 간접 체험하는 것도 교육의 일환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확실히 욕먹으면서 배우니 실력이 빨리 늘긴 한다.

주중에 사무실에서 엑셀의 늪에 빠져 있다가 주말에 격렬하게 몸을 쓰면 상쾌한 기분이 든다.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결과물을 보면 비록 군데군데 찢어지고 쭈글쭈글해도 애착이 간다. 회사에 올인하지 않고 내 시간을 분산투자하고 있다는 안정감이 드는 것도 좋다.

이왕 배우는 거 도배기능사 자격증도 따려고 한다. 시험 등록을 앞두고 사무실에서 홈페이지가 열리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부장님이 부르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새 수도권 자리가 모두 마감돼 ktx를 타고 부산에 내려가야 한다. 시험을 보고 올라오는 길이 아쉬움보다 뿌듯함으로 가득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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