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물 흐리는 포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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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 물 흐리는 포스코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3.07.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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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억원 대형 사고에도 통합 입찰‧규모 내세워 보험료 깍기
코리안리 1000억원 요율 제시 불구…최종 819억원으로 조정
보험업법 교묘하게 회피한 인하우스 보험중개사 운영 논란도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포항제철소 현장. 사진=포스코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포항제철소 현장. 사진=포스코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지난해 보험료 288억원 규모의 계약에서 5000억원 이상의 손해가 났다. 계약을 인수했던 보험사는 이 사고 하나로 가용한 XOL(초과손해액재보험)이 깨졌다.

일반적이라면 보험료의 대폭 상승이 불가피했다. 하지만 계약자는 통합 입찰로 보험 규모를 키웠고, 재보험사인 코리안리가 제시한 적정 요율보다 훨씬 낮은 금액으로 갱신했다. 국내 대표 철강기업 포스코의 이야기다.

태풍 힌남노 직격

지난해 9월 포스코는 태풍 힌남노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포항제철소가 침수돼 가동을 멈췄다. 포스코 50년 역사상 초유의 ‘셧다운’이었다. 17개 공장의 정상 가동은 침수 135일이 지난 2023년 1월에야 이뤄졌다.

포스코 측이 밝힌 손해액은 5000억원이다. 하지만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발생한 사고 피해는 자사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사고 이후 산업통상자원부가 꾸린 합동조사단은 해당 사고가 포스코 협력업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이 2500억원대에 이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2022년 10월 기준 고액 보험사고 리스트. 자료=손해보험업계
2022년 10월 기준 고액 보험사고 리스트. 자료=손해보험업계

일부보험, BI도 제외

포스코는 당시 288억원(보험료 기준) 규모의 보험에 가입돼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피해를 남긴 셧다운에 대비한 보장은 없었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다. 포항제철소처럼 대규모의 제조업은 공정 중단으로 인한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그만큼 BI(기업휴지담보) 보험료도 비싸질 수밖에 없다.

비용 절감을 위함이라는 추론은 포스코가 일부보험으로 가입했다는 점에서도 설득력을 얻는다. 말 그대로 전체 공장을 커버할 수 있는 보장을 약정하지 않았단 거다. 이 일부보험은 위법한 사안은 아니다. 다만 보험료를 낮출 수 있는 대신,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전체 가액 대비 보험 가입금액을 따져 비례보상 받게 된다. 충분한 위험 대비가 될 수 없다.

보험금 지급 분쟁

포스코는 당시 계약의 간사였던 DB손해보험(지분 40%)과 보상 문제로 대립각을 세웠다. 포스코는 손해액만큼의 보험금 지급을 요구했고, DB손해보험은 일부보험이기 때문에 전액 지급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었다. DB손해보험으로부터 재보험을 수재한 스코르 역시 강경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전체 가입대상물 중 평가를 거쳐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부분(30~40%)만 보험에 가입했다. 손해보험에선 보험가입금액이 보험가액보다 작으면 가액 대비 가입금액만큼 비례보상한다. 화재보험에선 이 비율이 80%가 넘으면 실손보상하지만, 여기에서도 재고자산이나 공장화재는 제외된다.

이 때문에 손해보험업계에선 포스코의 ‘갑질’이란 비난까지 나왔다. 일부보험의 보상 방식은 포스코 역시 알고 있다. 대규모 보험계약을 주관하는 담당자가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포스코는 받을 수 있는 금액보다 많은 보상을 요구했고 DB손해보험이 거부하면서 분쟁으로 격화됐다.

간사사 교체

통상 대규모 기업보험 계약에서 큰 손해가 발생하면, 이듬해 갱신 역시 기존 간사 체계를 유지하는 게 일반적이다. 법적인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사고 보상으로 큰 피해를 입은 보험사를 배려하기 위한 도의적 관례다.

포스코에선 바로 직전 연도에 큰 사고가 있었기에, 상당 수준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했다. 포스코는 그전까지 별도 입찰을 띄웠던 포스코인터내셔널 적하보험과 묶었다. 288억원이었던 보험료는 적정 요율 1000억원(코리안리 요율)으로 상승했다.

5개 손해보험사(메리츠화재, 한화손해보험, 삼성화재, KB손해보험, DB손해보험)는 모두 코리안리 요율을 기반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그러자 포스코는 5개사를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을 요구했다.

그리고 여기서 가장 낮은 보험료를 제시한 삼성화재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7월 1일 갱신이었던 계약은 보험료를 둘러싼 진통 끝에 하루 전날인 6월 30일에서야 819억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간사인 삼성화재가 35%의 지분을 가져갔다. 이어 KB손해보험 20%, DB손해보험 15%, 메리츠화재와 한화손해보험, 현대해상이 각각 10%를 받았다.

재보험도 불가

규모가 큰 계약, 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요율로 파생된 리스크는 손해보험사들로 전가됐다. 삼성화재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초기에는 600억~700억원대 규모가 될 거라는 소문도 파다했다. 포스코 계약의 어려움과 위험성을 알고 있는 보험중개사들은 재보험 출재업무를 맡길 꺼렸다.

보험중개사업계 관계자는 “요율부터 해외 어디를 가더라도 재보험 받아줄 곳을 찾기 힘든 수준”이라며 “가뜩이나 클레임이 빈번한 적하보험이 포함된 물건이라 관리가 쉽지 않은데, 어렵사리 재보험자를 구해도 중개사에 수수료로 남는 건 1억원도 채 안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819억원까지 보험료는 높아졌으나, 이게 확정된 건 갱신을 불과 하루 앞둔 시점이었다. 지분을 받은 손해보험사들은 해외 재보험자를 찾지 못했다. 일부는 코리안리로 출재했지만, 남은 건 전부 보유할 수밖에 없었다. 작년 같은 사고가 또다시 발생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피아이에스보험중개

이러한 포스코 보험계약에는 피아이에스보험중개(이하 PIS)가 있었다. 포스코의 자회사였던 포스메이트인슈어보험중개(포스메이트인슈어)가 PIS의 전신이다. 포스코는 지난 2011년 4월 포스메이트인슈어를 설립했고 이듬해 12월 투자사인 유한책임회사 에스피원에 매각했다. 에스피원의 대표가 현재까지 PIS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포스메이트인슈어는 포스코 계열사의 보험계약을 전담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설립 당해 1만1131건, 251억원의 모집실적을 기록했고, 매각 논의가 진행되던 2012년에는 상반기에만 1만808건, 188억원의 실적을 달성했다.

포스코는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이다. 큰 공장들에서 매년 갱신해야 하는 보험의 규모는 상당하다. 그런 포스코가 자회사로 보험중개사를 설립하면 두 가지 이점을 가질 수 있다. 어차피 가입해야 하는 보험에서의 비용 절감과 안정적인 부수입이다.

포스코가 계속해서 보험중개사를 운영했다면 지속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포스코는 설립 1년여 만에 포스메이트인슈어를 매각했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등의 비판과 보험업법 위반 논란 등을 피하기 위해서다.

일감 몰아주기, 위법성 논란

포스메이트인슈어의 모기업이자 시설 관리업체인 포스메이트는 1990년에 설립됐다. 포스코 퇴직 임직원 모임인 동우회가 주축이었다. 설립 초기 동우회는 포스메이트의 지분을 100% 보유했다. 이후 수차례 유상증자를 거치는 동안 포스코가 점차 포스메이트에 대한 지분율을 높였고 2005년 계열사로 편입했다.

포스메이트인슈어는 2011년 4월 설립된 이후 포스코 계열사의 보험계약을 주관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선 2010년 7월 23일 보험업법 개정(제101조, 자기계약의 금지)이 있었다. 보험대리점과 보험중개사는 자기 또는 자기고용자를 보험계약자나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모집을 ‘주된 목적’으로 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이는 자기계약 보험료 누계액이 전체 모집 보험료의 50%를 초과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스메이트인슈어의 매출 대부분은 포스코에서 나왔다.

2010년 7월 23일 개정된 보험업법 제101조(자기계약의 금지).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2010년 7월 23일 개정된 보험업법 제101조(자기계약의 금지).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재벌 개혁, 경제민주화

포스메이트인슈어 매각이 이뤄진 2012년엔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당시 핵심 화두는 재벌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경제민주화였고, 포스코는 대외적으로 과도한 사업 영역 확대에 따른 비판을 받고 있었다.

정준양 전 회장 재임기간(2009년 2월부터 2014년 3월) 동안 포스코의 계열사 수는 35개에서 70개(2012년까지)로 늘었다. 포스메이트인슈어도 이때 신설된 회사 중 하나다. 하지만 공격적인 확장은 재무구조에 악재로 작용했다. 2010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로부터 안정적(A) 평가를 받았던 포스코의 신용등급은 2012년 실적 악화를 거치며 2013년 부정적(BBB+)으로 떨어졌다.

2012년 정 전 회장은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정기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70개의 계열사 중 비핵심 계열사를 정리할 것을 공식화하면서다. 포스메이트인슈어도 정리 대상에 포함됐다. 2010년 포스코 지분 100%로 출범한 광고대행사 포레카도 함께였다.

철강이란 본업과 멀기도 하고, 2012년 당시 유력 대선 후보자들이 한결같이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공약으로 내세운 상황도 있었다. 포레카와 포스메이트인슈어 모두 포스코 계열사에 대한 매출 의존도가 특히 높았던 기업이었다.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대통령은 이후 더욱 강도를 높여, 일감 몰아주기를 부당 내부거래로까지 지목했다.

끊지 못한 유착 고리

이러한 이유들로 2012년 말 포스코는 포스메이트인슈어를 매각했다. 모든 지분을 넘기며 표면적으론 완전한 별도의 회사가 됐다. 이 과정에서 2013년 1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매출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정도 체결했다. 매출 대부분이 포스코 계열사에서 나오던 포스메이트인슈어의 매각을 원활히 하기 위한 카드였다.

그런데 손해보험업계에선, 사명을 PIS로 바꾸고 포스코가 약정한 기간이 지난 지금도 사실상 포스코의 ‘인하우스 보험중개사’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포스코는 매각 당시 상생을 이유로 3년간 임직원의 고용보장을 요구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PIS에선 포스코 퇴직자들이 임원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포스코로부터 일감을 받는다.

PIS가 이번 포스코 계약 하나로 달성한 보험료 모집실적은 819억원이다. 지난해 564억9776만9000원(재보험계약 중개 실적 제외)을 훌쩍 넘는다. 이를 통해 받게 되는 수수료 역시 100억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또한 PIS의 전년도 수수료 총액 54억8311만9000원의 두배에 육박한다.

포스코는 1000억원이 적정하다던 보험료를 819억원까지 낮췄다. 단순 추산으로 181억원을 절감했고, 퇴직자가 임원으로 재직 중인 보험중개사에 100억원 이상의 수익을 안겨줬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손해보험사로 귀속됐다.

피아이에스보험중개 최근 3년간 모집실적. 자료=피아이에스보험중개 공시
피아이에스보험중개 최근 3년간 모집실적. 자료=피아이에스보험중개 공시

보험업법 비웃는 편법

그동안 이러한 행태에 관한 문제제기가 지속됐었다. 부당 내부거래를 막기 위해 개정된 보험업법을 교묘하게 회피하는 편법적 운영이라는 거다. 2021년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보험사의 특수관계인이거나 전직 임직원이 이전 직장을 상대로 보험모집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보험중개사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자기대리점을 만드는 이유는 결국 비용 절감”이라며 “보험업법 개정 후에도 적잖은 기업이 친인척이나 지인, 퇴직 임직원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관리 가능한 법인을 세우고, 모기업의 영향력을 토대로 리스크 관리보다는 과도한 보험료 할인과 수수료 지급을 요구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또 “그나마 포스코는 대기업으로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속하고 언론 등 사회적 감시를 많이 받기 때문에 수면 위로 드러나는 경우지만 공시 의무가 없는 중견기업이나 2016년부터 제외된 공기업 등에선 더욱 깜깜이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며 “기업보험시장의 정상화를 위해 유명무실한 자기계약 금지 규제의 실효성을 높일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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