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면적이 ‘0㎡?’ 구멍 뚫린 다중이용업소 의무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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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면적이 ‘0㎡?’ 구멍 뚫린 다중이용업소 의무보험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3.07.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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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청 데이터 오류 심각…26만6095개 중 4954개 면적 ‘0㎡’
‘-1㎡’ 영화관에 ‘1㎡’ 단란주점?…다른 정보 신뢰도도 ‘미지수’
보험사, “소방청 시스템 연동해 보험 가입, 담보 제대로 안돼”
소방청, “문제점 인지…정확도 높이며 보험사 검증 강화 독려”
소방청 관계자들이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 후 관련 회의를 갖고 있다. 사진=소방청
소방청 관계자들이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 후 관련 회의를 갖고 있다. 사진=소방청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다중이용업소가 의무 가입하는 화재배상책임보험에 구멍이 뚫렸다. 소방청이 제공하는 기초 데이터에서 면적이 ‘0㎡’로 표시되는 심각한 오류가 확인된 것이다. 보험사들은 소방청 시스템과 연계해 화재보험 업무를 수행한다. 만일 사고가 발생하면 보상받지 못할 수도 있다.

다중이용업소 화재배상책임보험

다중이용업소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영업장 중 규모나 구조적 특성에 따라 재난 시 큰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큰 업소(대통령령으로 지정)를 뜻한다. 소방청이 주관하는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안전관리 등에 관한 의무가 규정돼 있다.

화재배상책임보험은 법령에 따라 다중이용업소가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보험이다. 다중이용업소에서의 화재나 폭발사고로 제3자에게 발생한 인적, 물적 손해를 담보한다. 인명 피해는 1억5000만원, 재산 피해는 10억원이 한도다. 미가입 시에는 기간에 따라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2021년 7월 6일부터 다중이용업소 화재배상책임보험엔 무과실 책임주의가 적용됐다. 기존에는 원인 미상 등 영업주의 과실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배상에 차질을 빚었다. 이에 따라 신속한 피해자 구제를 목적으로 과실 유무와 무관하게 보장하게끔 개정한 것이다.

이는 손해보험사들엔 상당한 업무적 부담이었다. 기존 화재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한 다중이용업소들도 7월 6일을 기점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새로운 보험에 가입해야 했던 탓이다. 이에 앞서 행정안전부가 의무보험에 대해 소급적용(갱신 시기를 놓친 경우 미가입 기간 사고가 없었으면 남은 기간만큼 보험 가입을 인정)을 자제하도록 지시하면서, 짧은 기간 대거 갱신이 이뤄져야 했던 상황도 있었다. 

공공데이터포털을 통해 제공되는 다중이용업소 오픈 API. 사진=공공데이터포털
공공데이터포털을 통해 제공되는 다중이용업소 오픈 API. 사진=공공데이터포털

고유 일련번호와 오픈 API

다중이용업소에는 고유한 일련번호가 부여된다. 사람으로 치면 주민등록번호와 유사한 개념이다. 소방청은 일선 소방서를 통해 다중이용업소의 일련번호부터 업종과 주소, 면적, 휴‧폐업 및 정상 영업 여부 등 여러 정보를 취합‧관리한다. 

이 시스템은 다시 손해보험사들의 화재배상책임보험 가입 프로세스와 연동된다. 손해보험사가 보험 가입 전산망에 일련번호를 입력하면 소방청이 보유한 면적 등 데이터들을 실시간으로 불러와 반영되는 방식이다. 

무과실 책임주의가 도입되기 전에는 이 일련번호가 공개되지 않았다. 사업장을 특정할 수 있는 개인정보에 해당한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의무보험인 다중이용업소 화재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기 위해선, 영업주가 직접 관할 소방서로 연락해 일련번호를 안내받은 뒤 다시 손해보험사에 제출해야만 했다. 

소방청은 2021년 6월 25일부터 공공데이터포털을 통해 오픈 API 형태로 다중이용업소 일련번호를 공개했다. 무과실 화재배상책임보험 가입 편의를 위한다는 취지였다. 대거 갱신 이슈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휴업 등 변동이 많아진 상황에서, 영업주 개개인의 문의를 받아 일일이 안내하기엔 일선 소방관서의 업무 부담이 크다는 점도 있었다. 

공개 대상은 일련번호와 상호, 주소(지번, 도로명), 면적, 업종, 영업상태 등 6개 항목이다. 소방청은 연 1회 주기로 해당 데이터를 업데이트한다. 다중이용업소 영업주는 관할 소방서에 문의하는 대신 공공데이터포털에서 일련번호를 확인할 수 있다.

소방청이 제공하는 다중이용업소 데이터 중 면적 정보가 잘못된 사례. 자료=다중이용업소 오픈 API
소방청이 제공하는 다중이용업소 데이터 중 면적 정보가 잘못된 사례. 자료=다중이용업소 오픈 API

못 믿을 데이터로 가입된 의무보험

소방청이 공개한 데이터는 이전부터 손해보험사 시스템과 연계돼 다중이용업소 화재배상책임보험에 활용되던 자료다. 그런데 일반인에게까지 공개되면서 데이터가 엉망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점도 함께 드러났다.

가장 최근 업데이트 시점인 2022년 10월 12일(수정 기준, 등록일자 2022년 9월 14일) 기준으로 전국의 다중이용업소는 26만6095개에 달한다. 그런데 이 중 1.86%에 해당하는 4954개 업소의 면적이 ‘0㎡’로 표기돼 있음이 확인됐다.

다중이용업소 화재배상책임보험 가입에 면적은 필수 정보다. 현 체계에서 ‘0㎡’로 표기된 면적은 손해보험사의 고유 일련번호 입력과 함께 자동으로 적용된다. 보험료 산출에 필요한 기초값은 수기로 기입할 수 있지만, 가입면적은 비활성화돼 있어 보험사의 수정이 불가능하다. 이게 ‘0㎡’인 것이다. 보험 가입을 증명하는 증권에도 ‘0㎡’로 표기된다.

이 경우 보험에 가입은 되지만 실제 사고가 발생했을 땐 배상이 이뤄지기 힘들다는 게 손해보험업계의 설명이다. 보험이 보장하는 대상(면적)이 없어서다.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다중이용업소 화재배상책임보험 가입업무를 위해 연계한 전산망에서 소방청 데이터를 끌어오는 프로세스로, 영업장 면적은 소방청이 제공하는 정보라 보험사가 임의로 바꿀 수 없는 부분”이라며 “사고가 일어났을 땐 담보하는 면적 자체가 없어 보험으로 배상절차를 진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일선 소방관서에서는 관내 다중이용업소들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사진=경남고성소방서
일선 소방관서에서는 관내 다중이용업소들의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사진=경남고성소방서

소방청, “시스템 개선, 면적 정보 삭제도 검토”

이런 체계에서 손해보험사에 일련번호를 알려준 영업주는 보험 가입이 완료되고 증권을 받은 뒤에야 잘못됐음을 인식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 수도권 내에선 면적 수백㎡ 이상인 대형 카페 한곳에서 보험 담보 면적이 ‘0㎡’로 표기된 사실을 발견하고 문제를 제기한 일도 있었다. 

하지만 해당 손해보험사는 “소방청 데이터를 토대로 했고, 세부 내용은 보험사에 수정할 권한이 없다”며 관할 소방서에 문의하라고 말했다. 또 소방서에선 “우리는 일련번호만 안내할 뿐 면적에 관한 건 모른다”고 답했다. 법에 따라 보험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납입하는 영업주만 답답함을 토로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선 다른 데이터들도 믿을 수 없다는 점이다. 면적이 ‘0㎡’인 건 한눈에도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지만, 그 외 주소나 기타 사안 등은 정확한 것인지 식별하기 어렵다. 얼마나 많은 데이터의 오류가 있을지, 또 이로 인해 잘못 가입된 보험은 얼마나 많을지 추산조차 쉽지 않다. 

소방청은 이에 대해 면적 등 일부 데이터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했다며 시스템을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손해보험사들에도 보험 가입에 필요한 정보를 이중으로 검증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소방에서 제공하는 데이터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개선작업을 추진할 예정”이라며 “손해보험사들과도 협의해 오류가 있더라도 보험 가입 단계에서 한 번 더 걸러낼 수 있는 체계를 갖추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본래 이 데이터는 일련번호를 안내하는 게 목적이었던 만큼, 제대로 된 검증 체계가 갖춰지지 않고 지금 같은 문제가 계속된다면 아예 면적이나 주소지 등의 정보들을 제공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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