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좌담] 파라메트릭 보험,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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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좌담] 파라메트릭 보험, 어디까지 왔나
  • 홍정민 기자 hongchungmin@kongje.or.kr
  • 승인 2023.08.02 1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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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사, 손보재팬 등 외국에선 이미 상용화
날씨, 항공기지연, 영업손실보상까지 다양
한국은 아직… 보험사 규제, 데이터 부족
파라메트릭 좌담에 참석한 보험전문가들이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지연구 보험개발원 부장, 남상욱 한국보험교육연구원 대표, 이성현 위맥공제보험연구소 선임, 신지호 위맥공제보험연구소 주임, 박소영 악사손보 책임,  송성주 고려대 교수.
파라메트릭 좌담에 참석한 보험전문가들이 열정적으로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지연구 보험개발원 부장, 남상욱 한국보험교육연구원 대표, 이성현 위맥공제보험연구소 선임, 신지호 위맥공제보험연구소 주임, 박소영 악사손보 책임, 송성주 고려대 교수.

[한국공제보험신문=홍정민 기자] 파라메트릭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블루오션이라고 말하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인 파라메트릭의 현주소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파라메트릭은 흔히 아는 날씨보험 외에도 항공기 지연 보상, 호텔 영업손실보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성화됐다. 그러나 보험금 지급 기준 마련, 데이터의 신뢰도, 수익성 담보 등 아직까지 갈 길이 멀다. 

참석자(가나다순)

남상욱 한국보험교육연구원 대표, 박소영 악사손해보험 리스크관리팀 책임, 송성주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교수, 지연구 보험개발원 재물보험팀 수석부장

파라메트릭 보험은 무엇이며, 최근 보험업계 관심이 큰 이유는 무엇인가.

남상욱 대표: 파라메트릭이 새로운 기술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 데이터 기술이 발전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재해가 빈번해지면서 보험이 보장해야 할 리스크가 점차 복잡해지고,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기법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파라메트릭 보험은 강수량, 풍속 등 객관적인 지표에 의해 보상이 결정되며 실제 발생한 손실금액이 아닌 정액보상 형태를 띤다. 사전에 정해진 보험금을 언더라이팅 없이 주다보니 신속하게 지급 가능하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마이크로 인슈어런스(micro insurance)가 가능한 등의 여러 장점이 있다.

주로 날씨보험 형태가 많은데, 다른 분야는 적용하기 힘든가?

남 대표: 그건 아니다. 파라메트릭은 주로 날씨보험에서 적용되지만 4차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지진보험, 홍수보험, 항공기 지연보험도 있고 로이드(Lloyd’s)에는 호텔 영업손실보험도 존재한다.

해외 보험사, 혹은 인슈어테크 기업의 파라메트릭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달라.

박소영 책임: 악사그룹의 자회사로 파라메트릭 보험을 다루는 ‘악사 클라이메이트(AXA Climate)’가 있다. 2017년 설립돼 기후리스크 예측과 방재 서비스 개발, 제공을 주력 업무로 하고 있다.

이들이 개발한 상품 중 프랑스 보르도 지역의 ‘와인 농장 파라메트릭 보험’이 있다. 봄철에 서리가 내리면 와인 농가가 많은 피해를 입는데 전통적인 보험으로는 담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기상 관측소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이 기간을 설정하고, 그 동안 서리피해를 입으면 보상해주는 서비스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고객이 4월 15일부터 5월 31일까지 기간을 설정하면, 그동안 기온이 0도에서 영하 3도(악사에서 정한 서리피해 온도) 사이가 됐을 때 별도 손해사정 없이 보험금을 지급한다. 실제 2017년 4월 27일에 영하 0.9도가 돼 보험금을 지급한 사례가 있다.

사이클론에 관한 파라메트릭 보험도 있다. 공항에 사이클론이 발생하면 대물 손실은 물론 비행기를 못 띄운다거나 이런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사이클론의 진로와 강도 등 2가지 지표를 사용하고 가입자가 공항을 중심으로 원형 반경을 설정해 이 안으로 사이클론이 지나가면 사전에 정한 풍속과 범위를 대상으로 보험금이 지급된다.

마지막으로 라인 강 수위에 따라 지급되는 보험도 있다. 라인 강은 유럽의 물줄기로 많은 배들이 이용하는데 강 수위에 따라 통행을 못하게 되거나 대안을 찾다보면 대체비용이 발생한다. 강 수위에 따라 기준을 정해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남 대표: 인도의 경우 2019년 민관 합동 프로젝트인 BICSA가 출범해 마이크로 인슈어런스형 파라메트릭 보험을 개발했다. 영세 소작농을 대상으로 몬순기인 7월~9월 사이 가뭄에 강한 씨앗을 구매한 농가에 한해 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보험료도 저렴하며 국제 물관리연구소가 일부 부담한다.

지연구 부장: 일본 손보재팬이 태국에서 하는 날씨 지수보험도 있다. 태국의 경우 농사를 지을 때 농업협동조합은행 같은 곳에서 영농자금을 대출받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태국은 가뭄이 자주 발생하고, 이렇게 되면 대출금을 갚지 못하거나, 이듬해 다시 농사자금을 빌릴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손보재팬은 대출 받을 때 농협은행에 파라메트릭 보험을 가입하라고 권유한다. 보험 가입시 피해금의 약 40% 정도를 보상해준다. 가입자들은 이 보험을 통해서 가뭄 등으로 농사를 망쳐도 대출금을 갚을 수 있고, 영농의 연속성이 보장된다.

국내에서 파라메트릭 보험이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남 대표: 보험사들이 상품을 개발하는데 제한요소가 많다. 우선 손해보험은 사고에 대한 손해를 보상하는 것인데, 파라메트릭은 특정 조건이 되면 정해진 금액을 주다보니 이런 기준점을 만드는 게 어렵다. 보험금 지급이 사고의 우연성과 연결되는지, 또한 정해진 금액을 지불하는 범위 설정이라든지, 여러 가지 신경쓸 부분이 많다.

송 교수: 일본에서는 보험업법상 보험사가 영유할 수 있는 업무 중에 파생상품을 다룰 수 있어서 좀 더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지 부장: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은 1999년 이후 보험사가 파생상품을 취급하게 되면서 날씨지수보험과 함께 해외 시장에서 날씨파생상품 판매를 본격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보험으로 하려면 손해비용과 이에 걸맞는 보상이 이뤄져야 되는데 그게 안되면 허용이 안 되니까 보험사가 취급하기에 한계가 있다.

규제를 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지 부장: 우리나라는 보험으로 하려는 게 문제다. 손해보험은 손실 보상이 기본적인 목적이다. 그런데 파라메트릭 보험은 ‘얼마 손실 났어?’라고 물었을 때 ‘정확히 잘 모르지만 이만큼의 손실이 추정되니 이만큼 줘’라고 하니까 보험으로 커버가 안되는 거다.

일본의 경우 ‘그게 보험이든 아니든’ 이렇게 논란을 벌이기 전에 그냥 파생상품으로 인정하고 취급할 수 있게 한다. 그들은 ‘날씨 파생상품을 보험회사에서 취급하는 것 자체가 크게 나쁜 게 아니다’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보험상품이라면 제약이 많을텐데, 규제에서 자유로우니 파라메트릭이 발전할 수 밖에 없다.

남 대표: 말씀하신 것처럼 일본은 우리보다 보험사에 대한 규제가 완화된 편이다. 우리나라는 소비자보호를 위해 규제가 센 편인데, 일본처럼 보험사의 파생상품 취급을 허용하면 좋겠다. 물론 규제완화시 증권사나 다른 금융권과 마찰이 생기지 않도록 감독당국의 리더십도 중요하다.

파라메트릭 설계에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지 부장: 파라메트릭 보험은 내가 직접 손해를 받지 않아도 객관적인 기준에 부합하면 보험금을 받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 경감 노력을 많이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굉장히 좋은 제도다.

그런데 항상 문제되는 게 뭐냐면 보험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자주 바뀐다는 것이다. 날씨보험의 경우 기상 조건은 시시때때로 변한다. 그러니까 언제 사느냐에 따라 예측값은 다 달라진다. 예를 들어 내가 공항에 있다 하더라도 지금 있는지, 어느 시간에 있는지에 따라 그곳에 태풍이나 사이클론이 지나갈 가능성은 다 다르다.

정보량이 많으면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지만 역선택을 당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일이 결혼식인데 보험을 오늘 사는 것과 일주일 전에 사는 것과 한달 전에 사는 것은 예측값이 다 다를 수 있다. 그러면 각각 보험을 가입할때마다 가격이 달라야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될 수 있다.

기상 정보를 갖다 분석하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나한테 정보를 줘야 되고, 나는 그 시간에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위험량을 계산할 수 있어야 된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보험이 원활하게 팔리지 않을 것이다.

남 대표: 그렇다. 그리고 이게 한 번 사고가 나면 보험금을 다 지급해줘야 된다. 만약 기상청에서 이걸 잘못해서 온도가 1도만 올려서 발표하면 저 온도가 기준이 된다. 이런 문제들이 고도화돼야 된다.

한국은 아직 파라미터 전문가와 보험사 역량이 부족한 것 같다.

지 부장: 국내에서 기온에 관한 파라메트릭 보험을 만들 경우 냉난방을 기본적으로 어느 기간동안 하고 이보다 적게 할 경우 기업의 수익이 줄어들고, 이런 기본 지표를 알고 있어야 기상청과 보험개발원 등에서 파라미터를 정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지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이로 인한 기업의 영업손실이 얼마인지 데이터를 추적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보험을 만드려면 날씨 관련 지수와 관련 기업이 가지고 있는 영업 손실 데이터를 가지고 손실 규모를 찾고 2개의 함수 관계를 만들어내 수정해야 하는데 그 내부정보를 알 수가 없다.

남 대표: 그래서 아까 얘기한 로이드의 호텔영업손실보험은 호텔협회가 중간에 낀다. 이들이 호텔들의 영업 손실 데이터를 가지고 있어 데이터 검증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계약자가 먼저 데이터를 제공한다고 해도 이게 통하지 않는다. 만약 ‘누가 검증해 봤어?’라고 할 때 그건 통과가 안된다. 협회든 제3자든 누군가가 데이터를 검증해줘야 가능할 것 같다.

데이터는 많은데 관리는 잘 안된다는 지적도 있다.

송 교수: 데이터 분석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양질의 데이터 찾기가 쉽지 않다. 뭔가 정보가 다 공개돼 있다고 말은 하는데 사용하기 좋게 되어있지 않아서 여기저기서 찾아야 한다.

개별 보험사에서 보험 요율을 책정하기 위한 데이터를 받으면 그 데이터는 깔끔하게 정리돼있다. 그러나 다른 데이터들은 지저분해서 이걸 가지고 뭘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요즘은 데이터 분석 툴도 많고, 분석하는 사람도 많은데, 정작 사용할 수 있는 정제된 데이터가 참 문제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지 부장: 데이터를 다루는 통계 파트가 독립적으로 통계만 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일부 보험사들은 통계파트가 상품 업무를 같이 해야 한다. 통계업무를 하다가 상품업무를 하다가 이렇게 로테이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통계전문가를 키우기엔 부적절한 환경이다.

국내에서 ‘지수형 날씨보험’을 상용화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지 부장: OECD 재해 분류기준에 의하면 거대재해가 있고 그냥 재해가 있다. 그런데 거대재해는 한 번 발생하면 회생불능이지만 발생빈도가 현저히 낮다. 이 경우 사실 저축하는 것보다 보험드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그러나 일반 재해는 이게 반복적으로 짧은 기간에 계속 발생한다. 예를 들어 비나 눈이 일정량 이상 오는 것은 그렇게 희박한 확률이 아니다. 빈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높다.

그런데 빈도가 높은 걸 보험으로 하게 되면 보험금을 많이 줘야 한다. 그러면 보험사는 보험료를 비싸게 책정한다. 결론은 보험에 가입하려는 기업들이 실제 계약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보험가입할 돈으로 여윳돈을 만들어 직접 커버하는 것이다. 대형 재해가 아닌 이런 경우는 보험시장이 잘 안 열린다.

남 대표: 그래서 사실은 파라메트릭 보험을 지자체나 국가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풍수해보험처럼 국가에서 국민들이 필요한 안전망을 구축해주는 형태가 아니면 일반 보험사가 도입하기는 쉽지 않다. 지진, 태풍 같은 대형재해는 가능한데, 그 외의 폭우, 폭설 같은 위험은 사실 보장하기 어렵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

박 책임: 파라메트릭이 발전하려면 토대가 잘 갖춰져야 한다. 데이터와 시스템, 인력 등 보험 환경이 잘 마련돼있어야 신뢰할 수 있는 상품이 나올 것이다.

송 교수: 모험정신을 좀 발휘할 필요도 있다. 기존 손해보험의 틀로 접근하지 말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마음으로 보험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좋겠다.

지 부장: 부보험사에서 시범사업을 해보고 보험적으로 접근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차라리 파생상품으로 조금 접근해봐도 좋을 것 같다. 다른 시장 참여자들이 얼마나 허용을 해주냐가 우려되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게 빠를 수 있다. 금융당국이 파생상품 시장으로 보험회사가 취급할 수 있게끔 해주면 좋겠다.

남 대표: 파라메트릭은 잘 이용하면 저소득층을 위한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 파라메트릭 보험을 빨리 도입해서 그들에게 보험 보장을 열어줘야 한다. 보험사들도 수익성만 너무 고려하지 말고 사회공헌 차원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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