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 파라메트릭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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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오션’, 파라메트릭을 말하다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3.07.24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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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사정 없이 보험금 지급, 운영비 절감 효과
날씨보험, 코로나19 지수보험 등 상용화 가능성
양질의 데이터 확보 관건…금융 규제 완화해야
집중 호우로 수위가 높아진 한강의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집중 호우로 수위가 높아진 한강의 모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파라메트릭(parametric)에 관한 보험업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험이 보장해야 할 리스크가 점차 복잡해지면서, 전통적인 형태의 보험상품만으로는 커버하지 못할 상황도 생겨나고 있어서다. 다양하고 포괄적인 위험을 효과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방안으로 파라메트릭이 떠오르고 있다. 

파라메트릭과 보험

파라메트릭은 수학 용어 ‘파라미터(parameter, 매개변수)’에서 파생된 단어다. 여러 개의 독립적 변수를 공식에 따라 직선이나 곡선, 표면 등의 그래픽 데이터로 처리하는 컴퓨터 설계(CAD) 시스템의 한 기법을 칭한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변수를 반영해야 하는 보험업의 특성과도 유사하다. 파라메트릭보험은 1990년대 중반, 보험연계증권(ILS)의 하나로 시작됐다. 대규모 자연재해 리스크를 투자시장으로 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출발했다. 이후 빅데이터, IT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보험업계에서의 활용도가 급격히 커졌다. 

파라메트릭보험의 장점은 보험금 지급 과정이 간편하다는 것이다. 사전 설정된 파라미터에 따라 보험금을 지급하기에, 물리적 손실 정도를 조사하는 복잡한 손해사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 가입자가 조작 가능한 사고를 기준으로 두지 않아 모럴해저드나 보험사기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보험사 입장에선 운영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이러한 체계를 갖추려면 상당한 수준의,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실제 손실액과 무관하게 보험금과 이를 지급하는 파라미터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충분한 데이터와 연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오히려 실손보상 방식 때보다 큰 리스크를 짊어지게 될 수도 있다.

기후 리스크… 수요는 있다

국내에선 기후 위험을 보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파라메트릭을 주목한다. 

정부기관 중에선 기상청이 가장 적극적이다. 기상청은 지난 2018년부터 보험업계와 기상업계가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하고 파라메트릭 날씨보험 개발을 추진 중이다. 보험을 통해 리스크를 헷징할 수 있다면, 기상 관련 산업 발전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특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축산업과 수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진전도 있었다. 

기상청 산하 기상산업기술원은 2020년 가축별 폭염 피해에 관한 임계점을 제시했다. 폭염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지 않는 수준의 고온이 지속됐을 때도 가축이 폐사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 파라메트릭보험으로 보장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이어 2021년에는 기상청과 손해보험업계, 보험개발원, 기상산업기술원, 수산과학원이 머리를 맞댔다. 이 자리에서 손해보험사들은 수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파라메트릭보험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신뢰도 높은 데이터 확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에 기상청은 기존 기상관측설비에서 추출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한편 기상감정사 활용도 지원하기로 했다. 

성장 가능성 키운 코로나19

전대미문의 코로나19는 자연재해에 국한됐던 파라메트릭보험의 확장 가능성을 열었다. 감염병 확산을 우려한 정부의 봉쇄정책으로 적잖은 소상공인, 기업의 비즈니스가 중단됐다. 이로 인해 물리적 사고로 인한 게 아닌 손실을 보장하는 보험을 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대표적인 분야로는 팬데믹 여파가 직격했던 항공과 관광산업이 있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들 산업을 극도로 위축시켰다. 수많은 여행이 취소되면서 막대한 손해를 입었지만, 기상 문제나 재해로 인한 손실이 아니었기에 기존 보험으로 보장받을 길은 없었다.

관광업계에선 풍수해보험을 개선해 휴업 같은 무형의 손해를 보장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본래 풍수해보험은 자연재해로 발생한 유형의 재산 피해를 보장하나, 특약을 만들어 영업 중단으로 인한 수익 감소도 보장하는 형태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트리거가 원 계약에서 보장하는 사고여야 하는 제약 때문이다. 정부 지침으로 인한 영업 중단은 물론 풍수해는 아니지만, 여행을 취소할 정도의 궂은 날씨 등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는다.

그리고 이처럼 복잡한 리스크를 담보하기 위해선 파라메트릭보험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토대로 포괄적인 위험을 보장하되, 구조는 단순화해 운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상품이 요구되고 있다.

기상관측용 인공위성.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기상관측용 인공위성.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외국에선 위성까지 등장 

글로벌 보험사들은 일찍이 파라메트릭보험의 가능성을 인지하고 활용 폭을 넓혀가고 있다. 악사와 스위스리는 데이터 수집을 위해 초소형 인공위성까지 이용 중이다. 

악사는 이를 통해 호우와 관련한 보험상품을 판매 중이며, 스위스리는 인공위성에서 촬영한 이미지 데이터를 자연재해에 대한 보험금 청구 업무에 적용했다. 모두 피보험자의 실제 손해 발생 여부 및 손해액 규모와 상관없이 재해의 객관적 지표를 기반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파라메트릭의 형태다.

특히 스위스리는 극심한 연무로 인한 피해가 컸던 싱가포르에선 국립 환경기관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파라메트릭을 적용한 보험을 제시했고, 멕시코에선 카리브해 연안에 서식하는 산호초를 담보하는 보험을 도입했다. 아울러 인공위성을 통해 토양의 수분 함유량을 측정, 이를 근거로 가뭄 위험을 보장하는 파라메트릭보험도 판매 중이다.

문제는 규제, 금융당국 지원 필요 

보험상품을 개발하려면 상당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손해사정 절차를 생략하고 정해진 기준에 따라 보장하는 파라메트릭보험은 더욱 그렇다. 

글로벌 보험사들처럼 인공위성까지 활용할 여력이 되지 않는 국내 보험사들은 파라메트릭보험이 활성화되려면 정부 차원에서의 전폭적인 지원과 규제 완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양질의 데이터 확보는 개별 보험사의 노력만으론 어려움이 크다. 수요가 있다고는 하나, 보장되진 않은 상황에서 적잖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새로운 보험상품을 만들기 위한 데이터를 모으기란 쉽지 않다. 특히 파라메트릭보험은 이전엔 없었던 형태로 보험상품 설계에 가장 기초가 되는 사고 데이터조차 충분치 않은 실정이다. 

규제 측면에서의 문제는 사전에 설정해야 할 보험금 규모와 지급 기준을 인정받는 것이다. 실손보상과 이득금지의 원칙 등이 적용되는 손해보험에선, 합의된 정액보상의 적정성을 입증하는 것부터 난제라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손해보험업계 전체가 활용할 수 있는 참조순보험요율이 개발되고 역선택이나 사고 조작 등의 가능성이 낮은 파라메트릭보험의 특성을 고려, 금융당국의 유연한 상품 허가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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