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대비보다 비용 절감…외면받는 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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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 대비보다 비용 절감…외면받는 BI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3.06.12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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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카카오, 한국타이어 기업휴지담보 미가입으로 피해 확산
말뿐인 ESG…큰 리스크 무시하고 사고 없으면 ‘버리는 돈’ 인식
지난해 5월 19일 에쓰오일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화재 현장. 에쓰오일은 기업휴지담보에 가입, 60일을 초과한 가동 중단에 대한 손해를 보장 받았다. 사진=소방청
지난해 5월 19일 에쓰오일 울산공장에서 발생한 폭발 화재 현장. 에쓰오일은 기업휴지담보에 가입, 60일을 초과한 가동 중단에 대한 손해를 보장 받았다. 사진=소방청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오늘날 산업은 매우 복잡하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대형 기업에서 발생한 사고는 단순히 해당 기업의 피해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작게는 협력업체들의 생산 차질부터 사회적 인프라가 중단되며 대국민 불편을 초래하는 초대형 재해로 이어지기도 한다. 

기업의 위험을 보장하는 보험은 이러한 흐름에 맞춰 변화해왔다. 대표적인 게 사고로 인한 업무 중단 피해를 담보하는 BI(Business Interruption)다. 그러나 BI 가입이 일반화된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철저히 외면받는 형국이다. 

실제로 포스코와 카카오, 한국타이어, 한국카본 등 큰 파장을 낳았던 일련의 사고에선 BI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의무가입이 아닌데 보험료는 상대적으로 높아서다. 그러나 비용 절감을 위해 위험 대비를 외면했던 결과는 심각한 타격으로 돌아왔다. 

보험업계에선 이제 BI에 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업의 잠재리스크가 더는 전통적인 재물 손실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이유다. 사고로 인해 중단된 업무는 이익상실은 물론 대외적 평판 훼손, 신용등급 하락까지 이어지는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3년 평균 가입률 2.9%

BI(Business Interruption)는 여러 원인에 의해 생산이나 판매 등 기업의 활동이 중단되는 상황을 말한다. 이 담보는 공장을 가동하지 못해 발생하는 이익의 상실이나 고정비 등의 간접 손해를 보장한다. 공정이 거대하고 복잡해진 현대에는 통상의 직접손해보다 활동 중단으로 인한 손실이 더 심각하게 발생하기에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국내 가입률은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19년 2.9%, 2020년 2.4%, 2021년 3.3%로 연평균 가입률은 2.9% 정도다. 같은 기간 전체 재산종합보험(PKG, Package Insurance) 중 재물손해(PAR, Property All Risks)가 59.6%, 배상책임(GL, General Liability) 30.3%, 기계손해(MB, Machinery Breakdown)는 7.3%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재산종합보험 가입 현황. 자료=보험개발원
재산종합보험 가입 현황. 자료=보험개발원

미가입은 더 큰 피해로

지난해 9월 포스코 포항제철소에는 태풍 ‘힌남노’로 인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폭우로 인근 냉천이 범람, 제철소 내 18개 공장이 모두 물에 잠겼다. 당연히 공장은 가동을 멈췄다. 사고 당시 영업 중단으로 인한 피해액은 하루 500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포스코는 135일 만에야 노후화 판정을 받았던 1개 공장을 제외하고 17개 공장의 복구를 완료했다. BI에 가입하지 않았던 포스코는 이 기간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다.

지난해 10월에는 SK판교데이터센터 화재가 있었다. 이 사고로 카카오가 제공하던 서비스들이 먹통이 됐다. 카카오가 공식적으로 밝힌 서비스 장애 기간은 127시간 30분, 유료 서비스 이용자에 대한 보상액만 400억원이 책정됐다. 카카오 역시 별도의 BI는 가입하지 않았기에 보상은 카카오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에서 충당해야 했다. 인터넷데이터센터(IDC) 관리 책임자였던 남궁훈 각자 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놨다.

올해 3월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선 화재로 제2공장이 전소됐다. 한국타이어 측은 이번 사고로 인한 생산 중단 규모가 약 1조1677억3942만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연 매출액의 16.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한국타이어 역시 BI에 가입하지 않았다. 큰 사고가 있었던 2014년에는 BI에 가입돼 있었다. 그 후로 9년이 흐르는 사이 BI는 제외됐고 전체 보험료도 크게 낮아졌다. 이로 인한 피해가 막대할 것으로 예상되자 한국타이어는 PKG 계약을 중개한 브로커사에 책임을 따지기도 했다.

반면 지난해 5월 폭발화재가 발생한 에쓰오일은 BI에 가입해 피해를 최소화한 전례로 남았다. 에쓰오일에선 알킬케이션(휘발유 첨가제) 공정에서의 폭발로 RFCC(중질유 분해시설), PX(파라자일렌) 공정이 중단됐다. 매출 규모로는 5762억원의 손실을 입었고, 8개월 만에야 모든 공정을 온전히 복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타 사례들과 달리 BI에 가입했던 에쓰오일은 60일을 초과한 휴지 손실분을 보상받았다.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포스코 압연공정. 사진=포스코
태풍 힌남노로 침수된 포스코 압연공정. 사진=포스코

비용절감 논리에 사라진 ESG

기업들이 BI 가입을 꺼리는 이유는 보험료 부담이 커서다. 사고에 대한 직접적인 손해보다 더 큰 피해를 보상할 수 있어서 보험사 BI 요율은 상대적으로 높게 형성돼 있다. 배상책임처럼 가입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라, 사고가 없으면 ‘그저 버리는 돈’이란 인식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기업은 오너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상장기업이라면 주주가 주인이며, 산업 구조가 사슬처럼 얽혀 있어 한 기업의 조업 중단은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한국타이어 사고는 완성차 생산에 차질을 빚었고, 카카오 사고로 인한 카카오톡 먹통 사태는 많은 국민에게 불편을 줬다. 보험료를 아끼고자 리스크 대비에 소홀했던 게 더 큰 손해로 돌아왔을 땐, 주주 이익 침해와 국제 신인도에도 악재가 될 수 있는 시대다.

요즘 기업들은 ESG를 강조한다. ESG는 환경(Environmenta),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를 뜻하는 말로 기업의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필요한 세 가지 핵심요소를 가리킨다. 

비용 절감을 위한 BI 미가입은 ESG의 정신과도 어긋난다. 실제로 한국타이어에선 사고 이후 260여명에 달하는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에게 권고사직 통보가 있었다. 한국타이어 소속 직원들도 대전공장 전환배치 및 명예퇴직 공고가 내려졌다. 공장 가동이 멈췄기에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BI가 있었다면 이들에 대한 인건비(고정비)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BI에 대한 인식 바꿔야

역설적인 사실은 보험료가 비싼 BI가 보험사들엔 별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9년부터 2021년까지 BI의 3년 평균 손해율은 96.8%에 달한다. PKG의 손해율(92.2%)을 상회하며 모든 PKG 보종 중 가장 높은 수치다. 통상 재물보험의 사업비율이 20%를 넘나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판매해봐야 적자인 셈이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BI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복잡한 산업 구조와 환경 속에서 각 기업이 처한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헷지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거다. 또 가입이 늘면 보험사의 위험분산도 가능해져, 전반적으로 보험료를 낮추거나 새로운 보장을 추가할 여력도 생길 것으로 전망한다.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전염병에 관한 BI 상품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며 “정부 차원에서 독려하며 지수형 도입 등 여러 방안이 논의됐지만 결국 불발됐던 건 국내에선 BI에 관한 기본적 인식조차 부족했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로선 빈번한 화재사고 때 보장하는 BI 가입도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며 “향후 BI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고 가입자가 증가하면 보험료 인하나 또 있을지 모를 팬데믹 상황을 보장하는 형태로의 개발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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