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헨드렌, 그리고 ‘다양한’ 바비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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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헨드렌, 그리고 ‘다양한’ 바비 인형
  • 김민석 마스턴투자운용 브랜드전략팀장·ESG LAB 연구위원 listen-listen@nate.com
  • 승인 2023.05.15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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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ESG 오디세이]

[한국공제보험신문=김민석] 사라 헨드렌(Sara Hendren)과 바비 인형. 미국의 디자이너이자 올린공과대학교(Olin College of Engineering) 교수인 사라 헨드렌과 세계적인 완구업체 마텔(Mattel)의 히트 상품인 바비 인형은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버드대학교 디자인대학원을 졸업한 사라 헨드렌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장애인 마크에 물음표를 던지고,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새로운 디자인으로 저항한 인물이다. 그는 휠체어에 수동적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아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보다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모습의 장애인 마크를 새롭게 고안했다. 기존 마크와의 선명한 대조를 위해, 새 마크를 투명 스티커로 만들어 덧입히는 방식의 운동이 펼쳐졌다. 이른바 ‘액세서블 아이콘 프로젝트(Accessible Icon Project)’이다.

장애인 표지판을 훼손하기 때문에 불법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이 게릴라 아트 프로젝트는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그 결과 미국 뉴욕에서 40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던 기존 장애인 마크는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보다 독립적이고 적극적인 인상을 주는 표지가 뉴욕의 공공장소에 부착되기 시작한 것이다. ‘장애인’보다 ‘인간’에 방점이 찍혀 있는 이 새로운 디자인을 기획한 사라 헨드렌에게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들이 있다. 그는 어머니로서도, 디자이너로서도 뜻깊은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사라 헨드렌이 뉴욕의 장애인 마크를 바꿔 놓은 지 9년의 세월이 흘렀다. 최근 마텔사는 다운증후군 바비 인형을 선보였다. 미국 국립 다운증후군 학회(NDSS, National Down Syndrome Society)와 긴밀한 협업을 거쳐 탄생한 결과물이다. 둥근 얼굴, 작은 귀, 납작한 콧등 등 실제 다운증후군 여성의 외모를 인형 디자인에 입체적으로 구현했다.  

휠체어에 대한 능동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 '액세서블 아이콘 프로젝트'(왼쪽)와 마텔이 출시한 ‘다운증후군이 있는 바비 인형’.
휠체어에 대한 능동적인 이미지를 부각시킨 '액세서블 아이콘 프로젝트'(왼쪽)와 마텔이 출시한 ‘다운증후군이 있는 바비 인형’.

레고 그룹의 2022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린이 2만 5000여명 중 70% 이상이 ‘나와 닮은 장난감이 부족하다’고 답변한 바 있다. 바비 인형에 노출된 소녀들은 다른 조건에 노출된 소녀들보다 상대적으로 신체에 대한 자기 만족감이 낮다(lower body esteem)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국에서 ‘토이라이크미’(#ToyLikeMe)’ 캠페인이 괜히 열풍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화려한 금발, 가느다란 허리, 긴 다리를 가진 바비 인형만 가지고 논 아이와 다운증후군 바비 인형을 비롯해 휠체어를 탄 인형, 의족이나 보청기를 착용한 인형 등을 골고루 접한 아이의 세계관은 분명 다를 터이다. 길거리를 지나가며 보다 진취적인 이미지의 장애인 마크를 보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사이에도 ‘다름’을 받아들이는 수용력에 큰 차이가 생길 공산이 크다.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형태의 인형과 시간을 보낸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다양성’과 ‘포용성’의 가치를 체득할 수 있다. 백반증을 앓는 인형, 척추옆굽음증(척추측만증)이 있어 허리에 보조기구를 찬 인형을 낯설게 느끼지 않은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친구들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다.

‘K-컬처’가 주목받고 있는 지금, 한국의 캐릭터 산업은 얼마나 ‘다양성’을 담보하고 있을까. 전 세계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문화콘텐츠 기업들은 보다 막중한 책임의식을 지녀야 마땅하다. ESG를 부르짖고, DEI(Diversity, Equity, and Inclusion)를 외쳤던 것이 허구가 아니라면 말이다. 다양한 직업, 인종, 성별, 장애를 가진 바비 인형처럼, 다채로운 얼굴의 국내 캐릭터를 접하고 싶다. 사라 헨드렌도, 그의 아들도 그런 세상을 바라고 있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전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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