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목적 기업’으로 가는 길
상태바
파타고니아, ‘목적 기업’으로 가는 길
  • 김민석 마스턴투자운용 브랜드전략팀장·ESG LAB 연구위원 listen-listen@nate.com
  • 승인 2023.01.25 1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민석의 ESG 오디세이]

[한국공제보험신문=김민석]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필자의 눈에 들어온 문구다. 그 아래 구체적인 비즈니스 지향점이 소개된다. 강력한 내구성, 자연 환경 보호,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한 싸움, 우리 비즈니스에 대한 성찰, 지역 사회를 위한 싸움까지.

매년 매출의 1%를 비영리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회사답다. 파타고니아에서는 이 1%를 ‘지구세(Earth Tax)’라고 명명한다. 희유하면서도 매혹적인 네이밍이다. 지구세 납부는 1980년대부터 이어온 전통이다. 이 회사는 이런 희소한 ‘자발적 납세’를 지속하면서 동시에 외형적 성장에도 성공했다.

파타고니아는 디자인, 가격, 유행보다 브랜드가 가진 고유의 철학을 강조한다. 무슨 패션에 철학 타령이냐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실지로 이 기업에는 철학 담당 임원(Director of Philosophy)도 존재한다. 빈센트 스탠리(Vincent Stanley)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파타고니아의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와 <책임 있는 회사(The Responsible Company)>를 공저로 출간한 인물이기도 하다. 최근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 전시회 ‘CES 2023’에서 연사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들의 철학을 좀 더 들여다보자. 지난해 이본 쉬나드 회장은 공개 기업(going public), 즉 상장을 추진하기보다는 목적 기업(going purpose)이 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상장을 하게 되면, 주주의 단기적인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골몰하게 될 공산이 클 터이다. 이본 쉬나드는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라고 말했다. 지구라는 주주를 위한 행보를 걷는 데, 상장은 필수적인 절차가 아닌 것이다. IPO를 지상과제로 여기는 기업인들이 많은 우리 입장에서는 적이 낯선 광경이다. 목적(purpose)에 집중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더 나아가서 자신의 가족(이본 쉬나드 회장 부부 및 두 자녀)이 소유한 회사 지분 전체를 비영리재단(Holdfast Collective)과 신탁사(Patagonia Purpose Trust)에 넘긴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약 30억 달러, 무려 4조원이 넘는 액수다. ‘기부’의 범위를 훌쩍 넘어선 행위다. 회사 소유권 자체를 넘긴 결정이기 때문이다. 200억원이 넘는 세금도 내야 하는 형국이다. 앞으로의 미래 수익(연매출)도 환경보호를 위해 기부할 예정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언론인 오레 오군비이(Ore Ogunbiyi)는 앞으로 기업이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중립을 지키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일갈한 바 있다. 투자자, 내부 직원, 소비자가 더욱 ‘액티비스트(activist)’의 성향을 띠게 되면서, 기업이 더욱 적극적으로 가치를 표현하고 수호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 홈페이지에는 크게 4가지의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그중 하나가 ‘액티비즘(activism)’인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사회적, 환경적 변화를 이끌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모든 기업이 파타고니아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는 없다. 다만 꾸준한 활동 없이 현란한 수사만 요란하게 내세우며 ESG 모범 기업인 양 젠체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지금, 파타고니아가 표상하는 정신의 일부에 대해서라도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선한 일’과 ‘지속가능한 비즈니스’의 양립이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기업이니까. 이본 쉬나드의 전언으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악(惡)에게 지는 길입니다(Evil always wins if we do nothin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