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와 책임 그리고 예방 메커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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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와 책임 그리고 예방 메커니즘
  • 류근옥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kgn@kongje.or.kr
  • 승인 2022.12.26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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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류근옥 교수] 2022년에는 큰 사고가 잦았다. 그중 10월 29일 이태원의 핼러윈 축제의 압사 사고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158명의 젊은이가 희생됐고 생존자 중 한 명이 그날의 트라우마로 시달리다 최근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얘기도 들린다. 사고 직전 현장에서 위험한 상황의 전개를 당국에 알렸지만, 경찰이나 해당 구청의 대응은 너무 안일하고 미온적이었다. 정부 부처별 책임 소재와 범위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와 해석도 큰 문제로 드러났다.

정부의 늦장 대응을 혹독하게 비판하는 언론도 따지고 보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다. 언론은 누구보다도 새로운 정보에 밝은 조직이다. 그러나 사고 전에는 위험을 예견하거나 경고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길에서 설마 압사 사고가 나겠나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을 잡았고 사고 후에는 모두 남의 탓을 하며 뒷북만 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시민들의 잘못이나 책임은 없는 것일까? 나는 솔직히 시민들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지 능력이나 판단 능력이 부족한 어린애들이 모여 사고를 당했다면 미성년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여지가 없다. 그러나 18세 이상의 성인이면 해석이 다르다. 성인은 자유의사에 따라 선택한 행동과 그 결과에 책임도 져야 한다.

필자가 재직했던 대학에서 선배 학생들이 학기 중에 신입생들을 데리고 MT를 갔다가 한탄강에서 3명이 익사한 사고가 있었다. 학교에 신고도 하지 않았고 자기들끼리 간 행사였다. 사고는 저녁 식사 후 컴컴해지는 시간에 한탄강 물에 뒷걸음쳐 누가 더 깊이 들어가나 담력 시합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먼저 군대 다녀온 선배들이 시범을 보이다가 한 명이 미끄러져 급류에 떠내려갔다. 다른 선배 학생들이 그를 구하려다 함께 익사했다. 학교 전체의 큰 슬픔이었다.

희생자 유족 중 일부는 학교가 무조건 책임지라고 거칠게 행동했다. 다행히 대학은 캠퍼스사고 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 그러나 해당 보험사는 군대까지 다녀온 성인들이 어두운 시간에 강물이 들어가는 것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무모하게 담력 시합을 하다가 사고가 났으므로 1인당 사망 보험금 중 일부를 과실상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험사의 주장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성인의 자유행동에는 본인 책임도 따른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였다.

요즘 위험한 파도 서핑을 즐기는 애호가들이 많다. 그들의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들에게 경찰이 일일이 따라 다니며 사고 위험이 있으니 바다에서 나오라고 하지는 않는다. 파도가 심할수록 더 짜릿한 맛이 있다며 그들은 오히려 더 큰 모험을 즐긴다. 그런데 그들도 파도를 타다 목숨을 잃거나 상어한테 물려죽기도 한다. 그렇지만 인명 사고가 났을 때 정부의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다.

성인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 변화를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어느 장소에서 사고 위험이 느껴지면 그 자리를 피하거나 적절한 위험관리를 해야 한다. 게다가 사고 위험을 가중하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경찰 등 정부에 의존한 질서 유지나 안전 인프라 구축이 물론 일차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현장에서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본인이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고 이것이 가장 효과적인 리스크 관리 수단이다.

사고 피해에 대한 보상을 다루는 보험에서는 가입자 스스로 사고 위험을 줄이도록 유도하거나 사고 위험을 가중하는 도덕적 해이를 해소하도록 상품을 설계한다. 대표적인 예가 보험상품을 일부(partial)보험으로 설계하는 것이다. 일부보험에서는 사고 시 피해액 중 일부는 보험계약자 본인도 부담해야 하므로 스스로 사고 예방을 위해 노력한다. 또한, 교통법규를 잘 지키고 사고 예방에 힘쓰면 자동차 보험료도 인하해준다. 이것이 사고 예방의 경제적 메커니즘이다.

서울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다. 사람이 접근하면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걷거나 뛰면 위험하오니 정지된 상태에서 이동합니다”라는 음성이 나온다. 그러나 이를 듣고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바쁜 출퇴근 시간에 그 규칙을 준수하다가는 뒤에 사람들에게 욕을 먹기도 있다. 특히 노인들은 다리가 아파 좀 서 있고 싶지만, 일부 거친 사람들은 앞사람을 밀치고 지나가기도 한다. 안전을 위해 정한 규칙을 준수하는 것이 이렇게 불안하고 뒤통수가 저린 것이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만약 에스컬레이터에서 사고가 나면 우리 정치인들이나 시민단체들은 누구에게 그 책임을 돌릴지는 말 안 해도 뻔하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잘못된 현실이다.

결국, 안전을 위해 마련된 법과 규칙을 스스로 지키는 것이 사고를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사고 위험을 느끼면서도 설마 설마 하면서 무시해 버리는 것은 매우 무모한 행동이다. 무모한 행동은 자유 의지에 기초한 선택일 수 있지만, 그 결과에 본인도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고가 나면 남의 탓만 해서는 우리 사회가 나아지기 어렵다. 또한, 이번 기회에 경찰을 포함한 공직자들의 업무 영역과 책임 범위도 좀 더 명확히 하는 안전 관리 규칙이나 편람의 정비도 필요하다. 아울러 그게 왜 내 책임이야 하는 공직자는 더는 없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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