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멸종 위기의 ‘손해보험설계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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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멸종 위기의 ‘손해보험설계사’들
  • 김환범 kgn@kongje.or.kr
  • 승인 2022.12.2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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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김환범] 손해보험설계사들이 사라져간다. 인력의 감소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진짜 손해보험을 판매하는 설계사들을 찾아보기 힘들단 얘기다. 궤변 같으나, 엄연한 현실이다. 지금 영업현장이 그렇다.

보험은 불의의 사고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고자 태동했다. 해상교역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었던 때, 바다는 무한한 가능성이자 미지의 위험이었다. 화재도 비슷하다. 인류는 불을 사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했다. 그러나 불은 한순간에 모든 걸 앗아갈 수 있는 위험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상보험과 화재보험이 생겨났고 오늘날 손해보험의 시초가 됐다. 비록 국내 손해보험사들의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할지언정, 그들의 이름에 ‘해상’이나 ‘화재’가 빠지지 않는 것 또한 손해보험의 정체성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손해보험설계사다. 시작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손해보험사 전속 설계사이자 영업 관리자다. 그렇다는 건 필자와 함께 일하는 수십여 명의 동료들 역시 손해보험설계사란 얘기다. 그런데 서두에 언급했듯 요즘에는 진짜 손해보험설계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경제적 논리가 손해보험 고유의 정체성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언젠가부터 손해보험설계사들은 손해보험상품에 주력하지 않는다. 생산성이 떨어져서다. 쉽게 말해, 들이는 시간과 노력 대비 소득이 적다. 화재보험이나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는 것보다 어린이보험, 암보험계약을 체결하는 게 훨씬 이득이다. 

좀 더 근원적 이유를 보면 손해보험사들이 있다. 이름의 해상, 화재란 단어가 무색하게 오늘날 손해보험사들은 장기인보험 판매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월납 보험료가 같아도 화재보험보다 암보험을 판매했을 때 더 많은 수수료를 준다. 흔히 업계에서 시책이라 부르는 특별 인센티브에서도 차등을 둔다.

이해는 된다. 손해보험사도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고, 자잘한 일반보험보단 굵직한 장기인보험의 효용이 더 크니까. 같은 이유로 설계사들을 힐난할 수도 없다. 그들도 돈을 벌고자 일하는 것인데 수익은 적으면서 더 까다로운 일을 하라고 강요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제 해상, 화재는 떼버리고 ○○제3보험으로 바꿔야 하지 않나 싶다. 

얼마 전 카페에서 우연히 다른 설계사의 상담 모습을 봤다. 고객은 자동차보험 가입에 대해 문의했고 설계사는 이렇게 말했다.

“저한테 들어주시면 저야 좋지만, 자동차보험은 어느 회사나 보장이 똑같아요. 인터넷으로 보험료 비교해보시고 제일 저렴한 데 가입하시는 게 이득입니다.”

그는 그렇게 자동차보험 계약으로 얻을 수 있었던 약간의 수수료를 포기했다. 대신 고객에게 신뢰할 수 있는 설계사란 인식을 심어줬다. 자신의 이익보다 고객을 먼저 생각한다는 그런 이미지 말이다. 

하지만 자동차보험은 모두 똑같지 않다. 고객이 잘 모르는 특약이 많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누군가에겐 꼭 필요한 담보가 다른 이에겐 무용지물이거나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해당 고객은 1만원대 추가보험료로 가입할 수 있었던 타차차량손해특약을 놓쳐, 휴가 중 렌터카를 이용할 때마다 기십만원의 자차보험료를 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상적인 얘기고 필자 역시도 반성해야 할 일이지만, 조금은 손해보험설계사라는 데 소명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는데, 어차피 기계로 뽑는 거라 어디나 똑같다며, 저녁에 개시할 칵테일 준비만 해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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