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예산으로 입원적정성 심사, 마냥 ‘꽃놀이패’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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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예산으로 입원적정성 심사, 마냥 ‘꽃놀이패’일까?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2.09.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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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부담 떠안는 경찰…보험사는 보험사기 신고 위축 걱정
접수창구 일원화에 수사목적 개인정보 활용 통지법 이슈도
보험사기조사협의회가 입원적정성 심사비용을 경찰이 부담하도록 한 결정을 두고 보험업계에서는 활발한 신고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보험사기조사협의회가 입원적정성 심사비용을 경찰이 부담하도록 한 결정을 두고 보험업계에서는 활발한 신고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보험사기 근절을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이 수행하는 입원적정성 심사비용을 경찰청이 부담하기로 한 보험조사협의회 결정을 두고 보험업계 일부에서 우려가 나온다.

범정부 차원에서 보험사기 대응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지만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되레 보험사들의 신고 자체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입원적정성 심사업무 과중

금융위원회는 지난 14일 보건복지부, 경찰청,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 심평원 등이 참여한 제1회 보험조사협의회(이하 조사협)에서 입원적정성 심사비용을 의뢰기관인 경찰청 예산으로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입원적정성 심사는 보험사기 사건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피보험자의 입원이 합리적으로 이뤄졌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수사기관의 의뢰를 받아 심평원이 수행하고 있다.

문제는 심평원의 한정된 인력과 시스템에 비해 심사의뢰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일처리가 늦어지며 신속 수사가 필요한 보험사기 혐의 입증에 차질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 2017년 1만2222건이었던 입원적정성 심사 처리건수는 2020년 1만8711건으로 늘었고, 같은 기간 1인당 처리건수도 582건에서 936건(담당 인력 20명)으로 증가했다.

여기에 입원적정성 심사에 건강보험 재정 투입이 부당하다는 여론도 있었다. 범죄수사는 수사기관 고유업무인데 여기에 건강보험 재정을 쓸 이유도, 명분도 없다는 것이다. 올해 처음 열린 조사협에서 가장 먼저 입원적정성 심사비용에 관한 논의가 이뤄진 배경이다.

입원적정성 심사건수 추이. 자료=금융위원회
입원적정성 심사건수 추이. 자료=금융위원회

접수창구 일원화 여파

보험업계 내부에서 걱정하는 부분 중 하나는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의 부담이 더 커졌다는 점이다. 비용적인 부분은 물론 지난해 4월부터 시작된 접수창구 일원화의 영향도 맞물려 있다.

현재 보험사기 수사는 위험요인을 감지한 보험사나 공제기관, 금감원 또는 개인의 신고를 받아 경찰이 착수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대부분은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수상한 점을 포착한 보험사의 신고에서 비롯되고 있다.

경찰은 시‧도청 수사2계에서 이를 일괄 접수한다. 이후 분석과 분류를 거쳐 일선 경찰서에 배당하면 수사가 시작되는 방식이다. 일선 경찰관이 자체적으로 입수한 첩보가 있더라도 시‧도청을 거치지 않으면 수사에 착수할 수 없다.

기존에는 보험사가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면 됐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경찰과 보험사의 유착 등 부작용도 적잖았다. 2020년에는 관련 첩보를 입수한 검찰이 모 손해보험사 SIU 부서를 압수 수색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 측에서 보험사와의 유착 형성을 근절하고자 자정안으로 꺼내든 게 바로 접수창구 일원화다.

접수창구가 좁아지면서 원활한 수사가 어려워졌다. 유착을 막으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에 보험사기 수사 경험이 많은 곳이 제외되거나 타 관할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을 배당하는 일도 있었다.

이는 다시 일부 경찰서의 보험사기 수사 기피 현상으로 이어졌다는 것이 보험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가뜩이나 업무량이 많은 일선 경찰서에서 혐의 입증도 어려운 타 지역 보험사기 사건에까지 집중할 여건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는 보험사기 적발인원이 9만7629명을 기록, 접수창구가 일원화되기 전인 2020년 9만8826명에 비해 다소 줄었다. 대대적인 특별단속과 보험사들의 적극적인 대응에도 정작 적발인원은 감소한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4월 보험사기 신고접수업무를 지방청 수사2계로 일원화했다.
경찰은 지난해 4월 보험사기 신고접수업무를 지방청 수사2계로 일원화했다.

경찰 비용부담 확대

이같은 상황에서 입원적정성 심사비용을 수사기관 예산에서 지원토록 한 것은 경찰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매해 경찰의 수사비 부족 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추가 지출까지 발생하게 됐기 때문이다.

비용과 관련해 또 다른 이슈도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건보공단과 심평원이 보유한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한 경우 그 사실을 즉각 정보주체에게 통지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보호하고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개인정보 요청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관건은 비용이다. 건보공단에서만 지난해 211만7190건의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제공했다. 이 중 경찰에 제공한 건은 185만9875건으로 약 87.8%에 달한다. 이를 기준으로 개인정보 제공 사실을 통지하는데 소요되는 금액은 29억원가량으로 추산된다.

건보공단은 개정 취지에 공감한다면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통신비밀보호법)로 수사 목적상 통신 사실을 확인한 경우 대상 당사자에 대한 통지의무는 검사 및 사법경찰관에게 있으며 비용 역시 개인정보를 요청한 자가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개인정보 제공으로 인한 비용은 수사기관의 책임 영역이라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라는 보편적 공익을 내세운 만큼 해당 법안의 통과 가능성은 클 것으로 관측된다. 이 때 선행 법령과의 형평성을 고려하면 결국 이 비용의 부담 주체도 수사기관이 될 여지가 짙다. 의료 관련 개인정보가 꼭 필요한 보험사기 수사 활성화에 유리한 흐름은 아니다.

보험사기 적발인원 추이. 자료=금융감독원
보험사기 적발인원 추이. 자료=금융감독원

심평원 시스템 개선 미지수

보험사들은 또 경찰이 입원적정성 심사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더라도 이것이 심평원의 인력이나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질 것이라 장담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다. 손해보험사들로부터 분담금을 받아 운영하는 자동차보험 진료비 심사에서의 전례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손해보험사들은 자동차보험에서 의료기관의 진료비 과다청구가 의심될 때 심평원에 확인을 요청한다”며 “손해보험업계가 의료계와 함께 구성한 분쟁심의위원회에서 주관하던 업무였는데 공공성과 효율성을 이유로 2013년부터 심평원에 이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연히 그에 따른 분담금을 지불하고 있는데도 심평원은 인력에 비해 청구건수가 너무 많다며 줄이자고 얘기한다”며 “입원적정성 심사에 경찰 예산이 들어가더라도 정작 심평원이 인력을 늘리거나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으면 업무 지체는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단순하게 경찰의 예산을 쓴다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입원적정성 심사업무 프로세스 개선에 어떻게 사용할 건지, 또 없었던 지출이 생길 경찰의 예산 증대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의 상세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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