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잡(Green Job), 보다 확장된 맥락으로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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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잡(Green Job), 보다 확장된 맥락으로 바라보기
  • 김민석 마스턴투자운용 브랜드전략팀장·ESG LAB 연구위원 listen-listen@nate.com
  • 승인 2022.09.05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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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ESG 오디세이]

[한국공제보험신문=김민석] ESG가 기업경영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덩달아 주가가 오른 분야가 있다. 이른바 ‘그린 잡(Green Job)’이다. 그린 잡이라는 말을 딱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 뚜렷하지는 않을지언정 그래도 어느 정도 감이 잡히긴 한다. ‘그린’이 표상하는 특유의 이미지와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정의를 살펴보자. 미국 노동통계국은 그린 잡을 “환경이나 천연자원에 이득이 되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직업이거나 자원을 덜 쓰고 생산과정이 더 친환경적인 직업”으로 규정한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친환경 산업에서 환경을 보존하고 회복하는 데 기여하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로 바라보고 있고, UN환경계획(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UNEP)은 “온실가스 감축과 지구환경, 생태계 보호를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과 관련된 재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으로 정의내린 바 있다. 

필자는 세계적인 기관에서 규정한 위의 내용이 당연히 틀렸다고는 보지 않지만, ‘그린(Green)’이라는 기표(記標)에 대한 해석의 층위가 보다 다양해져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그린은 녹색이니깐 친환경을 의미하고, 고로 그린 잡은 친환경 관련 업무라는 식의 의미 연결은 너무도 기계적이고 일차원적이다. 

그린 잡에 대한 협소한 시각은 ‘그린’이라는 목표를 향해 정진하고 있는 선의의 그리고 다수의 프로페셔널을 본의 아니게 배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직업명이나 부서명에 환경 관련 키워드가 들어가지 않는다 해도 그린 잡의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명함에 적힌 몇 글자가 아니라 ‘그린 감수성’과 지식, 역할, 방향성이다. 

그린이 유독 푸릇푸릇한 나무나 산과 같이 단일한 이미지로 연상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문제다. 주요 대기업이나 금융사 홈페이지에 접속해보자. ESG 섹션은 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이다.

필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일이라면 모두 넓은 의미의 그린 잡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이란 단어를 살펴보면, 이는 본디 자연 환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여러 형태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을 포괄하기 마련이다. 나무를 심고 쓰레기를 줍는 활동이 ‘친환경’ 활동의 전부로 오인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린’이라는 강령을 그렇게 단순한 논리 아래 그것도 한정된 집단에서 전유해버리는 것은 부당하기 그지없는 처사다. 무엇보다 그린의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보다 확장된 맥락에서, 보다 많은 사람이 그린 활동에 흔쾌하게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지역 커뮤니티 사이의 연결고리를 강화하는 일, 교통환경을 개선해 주민들의 편의를 증진하는 일, 청년들의 취업을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고안하는 일, 재능기부 차원에서 직접 연사로 나서거나 마을 축제에 문화적 요소를 가미하는 일. 당장은 이런 류의 움직임이 녹색 빛깔로 바로 연상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린 잡’은 색깔 논쟁이 아니다. 이것은 녹색, 저것은 적색, 흑색, 이런 식으로 편 가르듯 구획하자는 게 아니다. 핵심은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에코 디자이너, 그린 빌딩 설계사, 수직농업 기술자, 폐수 관리 기사, 대기질 엔지니어. 국내외에서 유망하다고 거론되는 그린 잡이다. 이렇게 꼭 어떤 화려한 네이밍이 부여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실천하는 작은 초록빛 날갯짓이 우리 사회가 좀 더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태준다면? 그린 잡을 수행하고 있다고 봐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더 많은 그린 잡이 탄생하길 바란다. 그린 잡의 형태와 그에 담긴 목소리가 다채로워질수록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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