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에도 보험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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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에도 보험이 필요해
  • 고라니 88three@gmail.com
  • 승인 2022.02.22 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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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보험라이프]

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고라니] 최근 대학 동기의 소식을 들었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소식이었다. 대학원 과정이 얼마나 무시무시한지 듣곤 했기에 어려운 길을 성공적으로 완주한 동기가 대단해 보였다. 축하의 마음으로 끝났다면 좋았을 걸, 이럴 때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게 실감 나니 문제다. 이제 대학교수나 국책연구소의 연구원이 될 동기와 평범한 직장인인 내 모습을 비교하게 되니 말이다.

우린 나이를 먹으며 새로운 얼굴의 자존심 도둑들과 마주한다. 20대에는 나보다 좋은 대학에 다니는 사람, 잘생긴 사람, 사교성 좋은 사람이 범인이었다. 30대가 되니 사람 자체보다는 손에 얼마나 많은 걸 쥐고 있는가로 비교의 기준이 바뀌었다. 직업이 뭔지, 사회적 지위는 어떤지, 순자산은 얼마인지를 확인하고 조급함이나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천 번도 넘게 불렀던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 가사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대부분의 경우, 안도감보다 조급함이 따라오니 문제다. 세상엔 잘난 사람이 너무 많다. 내가 속한 이 작은 조직에조차 일도 잘하고 인간관계까지 좋은 사람이 왜 이리 수두룩한지 의문이다. 평소 사이가 안 좋았던 동기에게 승진이 밀릴 때, 부동산 급등기 전 서울에 아파트 세 채를 사놨다는 동갑내기 선배가 점심값을 아끼려 도시락을 싸 온 날 보며 “그거 아낀다고 얼마나 모이냐”라며 웃고 지나갈 때, 삐걱하고 자존심에 금이 간다.

그렇다고 사회에서 사람을 골라 만날 수는 없으니, 자존심을 지킬 방법은 알아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존심 도둑들의 예기치 못한 습격에 대비해 바닥난 자존심을 멱살 끌고 일으켜 줄 보험을 설계해 왔다. 주경야독으로 업무 관련 자격증을 공부하고, 복싱과 헬스로 몸을 단련했다. 소비를 극도로 줄이고 월급의 80%를 저축해 또래보다 종잣돈도 빨리 모았다. 힘들 때 빠져들 수 있는 문화적 취향도 만들었다.

이런 노력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자존심이 상할 때 내가 가진 자본들을 떠올리며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러나 결국은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내 자기계발과 저축은 타인의 룰을 가치판단 없이 수용해 남의 경기장에서 헉헉대며 뛴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와 음악, 맛있는 안주와 술은 아픈 부분을 외면하도록 돕는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마음이 다친 후 보상을 하는 방식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니었다.

자존심을 지키는 방법은 계속 찾는 중이지만, 이제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내가 자존심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내 그릇과 깜냥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한 자존감의 문제였다는 걸 말이다. 난 교수나 전문직이 될 정도로 머리가 좋지도 의지가 강하지도 못했다. 재테크에도 둔하고 서른 중반에 다시 신입사원이 될 정도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리고 그건 자존심 상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이었다.

가끔 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 아이가 자기 친구의 부모를 부러워하는 상상을 한다. 왜 나는 저런 부모 밑에서 못 태어난 거냐며 신세 한탄할 때, 억장이 무너지는 대신 네가 말한 그런 부모가 아니어서 미안하다는 얘길 먼저 해주고 싶다. 그리고 어떤 점이 부러운지 물어보고, 내가 어떤 식으로 그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을지 같이 얘기할 수 있었음 좋겠다. 물론 터무니없는 얘길 한다면 따끔하게 혼내줘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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