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판결의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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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법원,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판결의 시사점
  • 이경희 상명대 글로벌금융경영학부 교수 khlee@smu.ac.kr
  • 승인 2022.02.03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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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이경희 교수] 미국에서는 퇴직연금제도 수탁자를 대상으로 한 집단소송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300건 이상의 소송이 제기됐으며 10억 달러가 넘는 합의금과 함께 상당한 금액을 법률비용으로 지출했다. 이런 상황에서 2022년 1월 24일 대법원 판결이 눈길을 끌고 있다. 2016년에 소송이 제기되어 장기간 진행된 사건으로 노스웨스턴대학 퇴직연금제도의 퇴직자(원고)들이 제도 운영에 재량권을 갖는 대학과 투자위원회(피고)를 퇴직급여보장법(ERISA) 상 수탁자 의무 위반으로 제소한 것이다. 확정기여형제도를 관리하는 수탁자는 1974년에 제정된 ERISA에 따라 투자옵션을 모니터링하고 부적절한 옵션은 라인업(line up) 상품에서 제거해야 하는 신중 의무를 부담한데 따른 것이다.

원고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피고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첫째, 수탁자가 기록관리(record keeping) 수수료를 모니터링하지 않아 가입자가 높은 비용을 부담했다. 둘째, 기관용보다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는 소매용 주식형 펀드를 라인업함으로써 과도하게 높은 비용을 부담했다. 셋째, 429개에 달하는 다중/중복 뮤추얼 펀드로 인해 혼란과 잘못된 투자결정을 초래했다.

2018년 3월 지방법원은 다양한 투자옵션 중에서 가입자가 선호하는 더 저렴하고 보수적인 옵션을 선택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피고인 수탁자들의 손을 들어주었고, 2020년 항소법원은 이를 확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하급법원의 결정을 파기했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는 퇴직연금제도 수탁자가 다양한 투자옵션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신중하게 포함할 수 있는 투자옵션을 결정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독립적인 평가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이 제기된 후 노스웨스턴대학은 투자옵션을 계층(tier)으로 구조화하여 다시 설계했다. 전체 투자옵션을 5개 계층(TDF, 인덱스 펀드, 액티브 펀드, 보험 특별계정, 자기주도형 계좌(self-directed brokerage account)로 재구조화하고, 뮤추얼 펀드 개수는 32개(TDF 1개/인덱스 펀드 5개/액티브 펀드 26개)로 대폭 축소했다.

가입자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해 투자옵션을 극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은 많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과 달리 명시적으로 수탁자 책무를 부담하는 주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직연금제도 특히 확정기여형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퇴직연금사업자의 책무에 대한 요구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본격적으로 투자옵션을 구조화하여 가입자가 효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프로세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나라와 퇴직연금제도 운영방식이 유사한 일본에서 사용자와 퇴직연금사업자로 하여금 제공하는 투자상품의 경쟁력을 검토하도록 수탁자 책무를 강화했다는 점도 참고할만하다. 일본은 가입자의 2/3가 요구하면 저성과·고비용 상품의 탈락이 가능하며, 사용자가 제시할 수 있는 상품의 개수를 3개 이상 35개 이하로 제한한 상태에서 디폴트옵션상품 1개를 지정하도록 한다. 올해 하반기부터 우리나라에서도 사전지정운용(디폴트옵션)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효율적인 투자옵션 제공방식에 대한 검토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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