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눈덩이’ 농작물재해보험을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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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실 눈덩이’ 농작물재해보험을 어쩌나
  • 고영찬 기자 koyeongchan@kongje.or.kr
  • 승인 2021.07.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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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료 7222억원 거둬 보험금 1조193억원 지급, ‘밑빠진 독에 물붓기’
손해율 높아지며 재보험 갱신 난항, 정부가 80% 부담
자연재해 급증에 추가 손실 불가피, 해법찾기 골몰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농가
집중호우 피해를 입은 농가

[한국공제신문=고영찬 기자] 자연재해로 인한 농작물 피해를 보상하는 정책성보험 ‘농작물재해보험’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최근 몇 년간 집중호우, 태풍 등이 급증하면서 손해율이 높아져 재보험사들이 보험 인수를 꺼리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라는 거대 위험을 담보하는 만큼 위험을 분담해야 하는데, 재보험사들이 등을 돌리면 정부와 사업시행사인 NH농협손해보험이 모든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보험료로 7222억원을 거뒀으나 지급된 보험금이 1조193억원에 달해 해법찾기에 실패하면 농작물재해보험이 폐지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보험가입자 중 절반 보험금 수령, 손해율↑

자연재해의 경우 한번 발생할 때 피해규모가 크기 때문에 정부는 2001년부터 농작물재해보험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재해보험의 보험료는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통상 정부가 50%를 지원하고 지자체가 최대 40%을 부담하여 농가는 10% 내외의 금액만 부담한다. 현재 보험 운영사는 NH손해보험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농작물재해보험 가입률이 45.2%를 돌파하여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봄철에는 냉해, 여름에는 집중호우와 태풍 등 자연재해가 꾸준히 늘면서 재해보험에 가입하는 농가 수도 늘어났다.

문제는 보험가입률이 늘면서 손해율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작년 보험에 가입한 44만 2000곳의 농가 중에 보험금을 수령한 곳은 20만6000호로 절반 가량이다. 사업비를 제외한 순보험료로 7222억원을 거뒀으나 지급된 보험금이 1조 193억원에 이르면서 손실이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2019년에는 5129억원의 보험료를 거둬들이고 8980억원이 보험금으로 지급되면서 순보험료 대비 보험금 지급규모가 1.7배에 달하기도 했다. 손해율은 2018년 111.4%, 2019년 186.2%, 2020년 149.7%로 손실이 이어지고 있고, 보험 사업비 등을 포함하면 실 손해율은 더 늘어난다.

특이한 점은 자연재해가 최근 몇 년간 집중되면서 손실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집중되어 있다. 2001년 제도가 도입된 이후 총 5조 1728억원의 보험금이 지급되었는데 그중 70%에 달하는 2조 8072억원이 최근 3년간 집중됐다.

정부-보험사 손실부담 비율, 2:8 → 8:2로

농작물재해보험 손해율이 오르면서 재보험사들도 보험 인수를 꺼리는 분위기다. 세계적으로 자연재해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서 손실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사업을 계속 진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재보험으로 위험과 손실을 분산시키지 않으면 손실을 오로지 정부와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NH농협손해보험이 부담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사업이 폐지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농작물재해보험은 현재 농림축산식품부, 삼성화재, 현대해상 등 민영보험사와 재보험사가 각각 재보험을 통해 위험을 나눠 부담하고 있다. 2019년까지는 정부가 20%, NH손보 등 민영보험사가 80%의 위험을 부담했으나 2019년부터 손실이 크게 발생하자 재보험을 거부했고 결국 정부가 50%, 민영보험사가 50%를 부담하게 됐다.

올해는 보험사들의 반발로 정부가 80%, NH손보를 포함한 민영보험사가 20%의 보험을 인수하기로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재해보험의 문제가 향후 손해율인데 자연재해 발생 빈도가 높아지면서 손해가 예고된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보험사가 사업 진행을 거절할 것”이라면서 “정부가 민영보험사를 끌어들일 특별한 대책이 없다면 세금으로 보상해주거나 사업폐지 밖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도 자연재해가 늘면서 ‘알짜’로 통하던 자연재해 상품에서 재보험사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대형 산불과 코로나19 등 예상하지 못한 대형재해를 경험하면서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재보험 인수 자체를 기피하는 추세다.

담당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재보험사들의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뚜렷한 해결책은 없는 상황이다. 농민에게 지급하는 농직물 피해 보상 수준을 지금보다 줄이고, 대신 보험료를 더 올리지 않는 정도로 대응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재해보험정책과 관계자는 “보험금이 많이 지급되면 그만큼 보험료를 올려야 하는데 농민들의 부담이 우려되어 보상수준을 축소시킨 것” 이라면서 “여러 방안을 두고 개선방안을 연구하고 있지만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집중호우 피해 농가를 방문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집중호우 피해 농가를 방문한 김현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재해 보상기준 낮추고 패널티 부과, 농민 반발

농림축산식품부는 울며 겨자먹기로 작년부터 재해 보상기준을 80%에서 50%로 낮췄다. 농민에게 지급되는 보험금을 감당할 수 없어서다. 또한 보험금을 3번 연속 수령하면 자기부담금이 올라가고 패널티도 적용되는 식으로 조정했다. 이를 두고 농민들도 반발하고 있다.

경남 김해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김명우(52)씨는 “농사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필수인 것처럼 가입하라고 했는데 지금은 보험이라고 하기에는 보상도 적고 까다로워졌다. 말그대로 천재지변인데 갈수록 혜택이 줄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확정된 997억원의 농작물 냉해 복구비의 경우도 낮아진 보상비율과 실제 보상까지 시간이 지연된다는 점에서 농민들이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농작물재해보험이 농민들이 농사에 대한 도덕적 헤이와 책임감 결여를 야기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농업도 일종의 사업 운영인데, 정부가 보험으로 손실을 보상해주면서 일부 농민들이 도덕적 해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금을 노리고 농작물을 열심히 키우지 않거나, 반복되는 재해에도 예방조치나 시설투자에 나서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일부 손해평가사들은 농작물 피해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농민과 충돌을 우려하여 농민 측 주장대로 과도하게 보험료를 책정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농작물재해보험 운영사 NH농협손보도 정부 눈치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농협의 조합원들이 곧 보험 가입 대상자이고, 농촌을 위한 정책성보험이란 이유로 상품을 운영하고 있지만, 손실이 지속되면서 내심 사업을 포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재보험금은 보험료 예산지원과 별도로 농어업재해재보험기금에서 지급되는데 현재까지 정부는 6417억원을 출연했으나 이미 재보험금으로 8300억원이 지급되어 정부출연금도 한계에 직면했다.

이해관계자 모여 정책설계 다시해야

우려했던 것처럼 올해 하반기가 시작하자마자 계속된 집중호우와 장마로 인해 농작물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장마 시작과 동시에 쏟아진 남부지역의 폭우는 농가지역을 이른바 ‘싹쓸이’한 상황이다.

올해는 간신히 20% 비중으로 민영보험사를 참여시켰으나 내년에는 협상이 더욱 힘들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통령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공공정책성 보험의 폐지는 농가의 거센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되지만 폐지가 아닌 운영으로 방향을 잡더라도 해결책은 나오지 않는 상황이다.

따라서 매년 세금으로 막거나 보험사를 통해 상황을 모면하기보다는 지금부터라도 보상범위 및 보험금 현실화, 재보험 요율 조정 등 농작물재해보험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앞서 정부와 농업계가 보험료 및 보장에 대한 실질적인 협의나 조정을 시작하는 첫 단계가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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