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가 없는 곳에는 권리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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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가 없는 곳에는 권리도 없다
  • 방제일 zeilism@naver.com
  • 승인 2021.07.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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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신문=방제일] 소년이 죄를 지으면 소년원에 가고, 대학생이 죄를 지으면 대학원에 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다.

취업을 하기 싫다는 이유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진학 후 곧 그 선택을 후회했지만 어쨌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진학 당시 학자금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원과 연계된 학사 조교를 했다.

학사 조교는 주로 자신이 진학한 학과에서 조교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나같은 경우는 주전공이 아닌 부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했기에 학과 조교를 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학사조교로 임용됐다. 됐을 당시엔 뛸 듯 기뻤다. 기쁨은 잠시였다. 내가 추천받아 간 곳이 지옥의 불구덩이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름은 그럴싸하다. 교수협의회 조교. 대학 내 교수 700명이 소속된 협의체의 단 한명의 조교. 나는 그 일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첫째, 교수도 인간이다.
둘째, 교수들은 생각보다 입이 험하다.
셋째, 많이 배웠다고, 인성까지 훌륭한 건 아니다.

어쨌든 매일 매일 전화통에 불이 날만큼 많은 연락을 받았다. 민원이라면 민원이고, 푸념이라면 푸념이었다. 그 정도는 그래도 눈감고 들을 만 했다. 문제는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 일은 주로 회비 공제와 관련한 것이었다.

교수협의회는 당연히 회원의 회비로 운영된다. 회원은 교수다. 회비는 분기당 2만원씩 급여에서 공제된다. 문제는 이게 자발적 동의 없는 공제란 것이다.

몇몇 깨어있는(?) 교수는 이 회비 공제에 이의를 제기했다. 자신의 동의가 없기에 회비를 낼 수 없다는 뜻이다.

그 말에 나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교수협의회 회장은 그런 교수들의 회비를 받지 말라고 내게 지시했다. 학교 회계팀에 연락해 그 교수들의 회비 공제를 취소 요청한 후 공문을 작성해 보냈다. 매우 간단해 보이는 이 절차는 꽤나 많은 요식 행위를 거친 후에야 완성된다.

몇몇 교수들이 제기한 회비 공제 문제는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어디 그렇게 세상살이가 쉬울까.

교수협의회의 주 목적은 교수의 권리 증진과 더불어 경조사를 챙기는 것이다.

경조사 때 회비에서 화환 구입을 비롯해 축의금과 조의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회비를 내지 않는 회원에게도 동일하게 화환과 경조금을 줘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수면 위에 올랐다.

지루한 릴레이 회의 끝에 교수협의회에서는 화한은 보내되 경조금은 지급하지 말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결론이 그렇게 나자 회의록을 작성하던 나는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후 문제의 교수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은 지금까지 교수협의회에 10년 간 타의로 회비를 냈는데, 현재 회비를 내지 않는다고 경조금을 주지 않는 건 도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맞는 말은 더욱 아니다.

어느 조직이든 일정 부분의 의무를 부담해야만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의무 없이 권리만 누린다면 그 누가 의무를 부담하려 할까.

개인들이 모인 그 어떤 공동체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를 이행해야만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 의무는 돈이든 일이든 누군가는 그 몫을 해야만 온전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의무는 이행하지 않은 채 권리만 누리려고 하는 행위는 결국 공동체에 균열만 가져올 뿐이다.

어쨌든 나는 그 교수의 말을 교수협의회 회장에게 전달했다. 그 말을 듣던 회장은 넌지시 어느 과 누구 교수냐고만 물어봤다.

그 후 결론은 어떻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회비 공제와 관련한 민원은 다시 내게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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