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목적의 성질손해 면책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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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목적의 성질손해 면책의 이해
  • 한창희 국민대 교수 chgm@kookmin.ac.kr
  • 승인 2024.02.2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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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게티이미지뱅크

[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보험법은 손해보험에서 ‘보험목적의 성질 또는 하자로 인한 손해’를 보험자의 면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성질손해의 면책’이라고 한다. 이것이 면책사유로 정해진 취지는 보험사고의 요건인 우연성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위험단체를 통하여 위험분산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고, 각 보험가입자가 이 손해의 예방과 손실의 부담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과일이나 생선 또는 육류의 부패, 주정의 증발 등이다. 영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판결의 하나로 불리는 2011년 ‘센더 모푸 사건’은 이 같은 성질손해의 면책에 관한 입증책임 등이 쟁점으로 다투어졌다. 또한 2010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일본 보험법은 법정면책사유로 하는 우리 상법과 달리 이 성질손해의 면책조항을 삭제했다.

센더 모푸 사건은 미국 텍사스에서 말레이시아까지 예인선으로 바지선에 실은 보험목적인 석유시추시설을 운송하는 도중에 손해를 입은 석유시추시설의 받침다리의 보험보상이 청구된 케이스다. 영국 최고법원은 바지선에 받침다리를 세우고 시추선을 실은 채 먼 바다를 항해하다가 다리골절이 생긴 손해는 항해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면책되는 성질손해라고 판시한 1심판결을 파기하고, 충격파도가 직접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보아 보험금지급을 명령했다.

석유시추선인 센더 모푸호는 1978년 싱가포르에서 제조되어 피보험자가 소유하고 있었다. 2005년 6월 28일 피보험자는 이 시추선을 미국 텍사스주 갤버스톤에서 말레이시아 러뭇까지 운송하기 위한 용선계약을 체결하고, 7월 22일・23일까지 바지선에 적입을 완료했다. 이는 특별한 검정이 필요한 예인위험이며, 해상항해를 위해 받침다리를 제거하는 등 조치가 없으면 장기간의 항해에 대하여 골절 등이 발생할 수 있었다.

갤버스톤을 출항한 7주 후 10월 10일에 예인하는 바지선과 함께 케이프타운에 도착하였는데, 시추선의 받침다리의 핀홀부분에 균열이 발견되어 수리했고 검정인은 항해를 승인했다. 10월 28일 예인선은 바지선과 함께 희망봉을 출항했지만, 11월 4일 저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더반(Durban) 북부에서 받침다리의 골절사고가 발생했다. 11월 5일 저녁에는 남은 2개의 받침다리도 골절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12월 9일 예인선은 바지선과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다.

센더 모푸호의 제원은 ‘넓이 3.6M, 길이 93.6M, 무게 404톤’였으며, 보험계약은 보험금액 1000만 달러(정액공제 100만달러), 보험료 37.8만 달러였다. 보험목적의 고유의 하자 또는 성질로 인하여 생긴 멸실, 훼손 또는 비용은 면책이었다.

보험자는 ①손해의 원인은 보험의 목적인 받침다리 자체의 하자인 것 ②의도된 항해의 과정에서 우연한 사고의 개입이 없는 받침다리 자체의 취약성이 존재했고, 성질손해는 면책위험이기 때문에 보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1심 법원은 성질손해는 ‘선적된 적하가 의도된 통상의 과정에서, 우연적인 외부의 사고의 개입없이, 적하 자체의 반응의 결과로 입은 품질악화’라고 해석하고, 통상적인 항해 과정에서 어떠한 외부의 작용으로 보험목적에 손해가 생긴 경우에도 그 외부적 작용이 우연한 담보위험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정도의 작용으로 목적물에 손해가 생긴 경우에는 성질손해에 포함된다고 하여, 면책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피보험자가 선적시 검정인으로부터 안전운송방법과 적절한 적입방법에 대해서도 조언을 얻었기 때문에 항해에 적합한 방법으로 운송한 것으로 시추선이 항해를 견딜 수 있음을 보증한다고 판단했다. 받침다리의 골절사고를 야기한 직접원인은 우연한 외부의 충격인 파도라고 하였다. 11월경 희망봉을 항해하는 통상의 경우 예상되는 필연적인 충격파도가 아닌 파도의 압력에 의하여 받침다리가 결과적으로 골절사고를 입었다면, 받침다리의 금속피로의 취약성으로 인한 손해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고, 충격파도라는 우연적인 사건의 개입에 의한 것이라고 보아 원심을 파기하고 보험보상을 명하였다. 최고법원은 이를 유지했다.

영국의 1990년 ‘노튼 대 하딩시건’은 캘커타에서 독일 로테르담으로 선박의 컨테이너에 적입하여 운송되는 가죽장갑의 적하보험사건이었다. 컨테이너에 적입될 당시 캘커타는 몬순시기여서 습했고, 가죽장갑은 습기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몬순시기에 컨테이너에 적입하면 그 상부에서 수증기가 응집하여 컨테이너에 적입되어 있던 가죽장갑에 흡수되어 훼손이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됐다.

법원은 ‘적하는 어떠한 우연한 외부의 사고의 개입이 없이, 의도된 통상의 항해과정에서 자연적 행위의 결과 훼손되었다. 적하기 젖은 채 선적되었기 때문에 적하 컨테이너의 적입 상태에 이상이 없었고, 우연한 사고의 결합도 없었다. 적하 자체가 스스로 훼손되었다’고 하여 보험자의 면책을 판시했다.

성질손해의 면책은 프랑스 보험법, 이탈리아 채무법(보험계약법은 민법을 의미하는 이 법에서 규정함)에서 규정하지만, 후자는 약관에 규정한 담보위험으로 할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 영국의 1906년 해상보험법과 같다. 예컨대 영국의 1983년 ‘소야 대 화이트 사건’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앤트워프까지 선박에 의해 운송되는 콩의 적하에 대하여 ‘열과 수증 그리고 자연발화’로 인한 멸실 또는 훼손을 담보했다. 법원은 이 조항은 성질손해를 보장하는 것이라고 판시하였다.

2008년에 제정된 일본 보험법은 성질손해는 모든 손해보험계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손해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것, 이를 보험담보의 범위에 포함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고, 현재 기업보험 등의 분야에서 이 손해를 보상할 목적적으로 계약이 체결되는 사례가 있는 점 등의 이유를 들어, 이를 면책사유로 하는가 여부는 개별적인 약정에 맡기는 것으로 하여, 법정면책사유에서 삭제하였다. 이 점은 우리 보험법과 다르다.

보험소송실무에서 손해가 담보위험으로 인한 것임을 증명할 책임을 지고, 보험자는 면책사유로 인한 손해임을 증명할 책임을 지며, 양자가 대등한 경우에는 면책위험이 우선한다. 영국의 센더 모푸사건에서 법원은 손해가 우연한 사고임을 증명한 경우 또는 손해의 원인이 불가피한 것이 아님을 증명할 책임만을 지고, 피보험자가 이를 증명하면 보험자는 면책임을 증명할 책임을 진다고 하였다. 나아가 우연한 외부적인 사고가 개입한 경우 성질손해 면책을 적용할 수 없다고 했다.

영국을 해상보험업계의 중심으로 인정하여 영국의 법과 실무를 그대로 우리나라 보험실무에 적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험법상 면책사유로서 성질손해에 대해 영국의 센더 모푸 사건 등 판례와 보험실무의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성질손해의 보험보장허용과 증명책임에 관한 일본·프랑스·이탈리아 등 선진보험국가의 보험실무의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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