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조합의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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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제조합의 복수
  • 이루나 sublunar@naver.com
  • 승인 2024.01.15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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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보험라이프]

한국공제보험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루나] 매일 출근을 위해 지하철 선릉역을 나와 테헤란로를 걷는다. 도로 양옆으로 교정공제회, 엔지니어링공제조합, 소프트웨어공제조합, 전국택시공제조합 등 많은 공제조합 사무실이 몰려 있다. 금융업종이 많은 테헤란로 특성상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커다란 공제조합 간판들을 보다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다들 공제조합에 별도의 브랜드를 만들지 않고, 업의 명칭을 공제조합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간판명에 숨겨진 의미는 업종별 공제조합은 1개라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다른 예이지만, 노동조합의 경우 2011년부터 복수 노동조합 설립이 합법화됐다. 노조도 경쟁의 시대에 들어섰고, 조합원 의견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물론 노조 간의 경쟁과 갈등이 심화되는 부작용도 있지만,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 복수노조가 설립되며 노사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다. 과연 공제조합도 지금처럼 업종 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반드시 유지해야만 하는 걸까?

일부 복수의 공제조합이 운영되는 곳도 있겠지만, 아직 대다수는 업종 내 단일 조합의 형태이다. 만약 여러 개의 공제조합이 생긴다면 조합원도 나뉠 것이고, 조합당 기금이나 운용비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조합 기금 규모가 줄면서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이 낮아질 수도 있고, 경쟁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홍보 비용과 시간이 투입돼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공제조합 가입 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합원들은 분명 본인에게 유리하거나 편의성이 높은 조합을 비교한 후 선택할 것이다. 조합 간의 경쟁이 심화되면 타 산업 조합과의 파격적인 협업 방안이 나올 수도 있다. 현재 공제조합에선 공제 업무 외에도 많은 수익산업을 병행하고 있다. 부동산, 호텔, 렌터카, 상조 등 많은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새로운 수익 창출에 애쓰고 있다. 점차 공제조합 간에도 중복되는 사업이 생길 것이고, 인프라 공유, 합병, 사업 철수 등 전략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미 은행업에서는 디지털 금융의 활성화로 오프라인 매장의 유지 부담이 커지자 ‘한 지붕 두 은행’의 공동점포가 생기기 시작했다. 같은 공간에 두 개 은행을 함께 운영하면서 비용 부담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자구책이다. 편의점 내 현금지급기 대신 주요 금융 업무가 가능한 키오스크를 설치한 편의점 은행도 늘려가고 있다. 이처럼 보수적인 은행권에서도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생존을 위한 협업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과 고민이 낳은 결과물이다.

공제조합은 이에 비하면 무풍지대에 가깝다. 숨겨진 신의 직장이라고 불리는 조합들도 많다. 다수의 공제회가 자산이 1조가 넘고, 교직원공제회는 자산이 50조원에 이른다. 대규모 기금을 운용하고 조합원의 미래를 담보해야 하는 조직이라면, 미래를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경쟁력을 지속해서 높여가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구조가 급격히 변화하자, 국민연금의 재정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다. 공제업계도 국민연금의 위기를 넋 놓고 쳐다볼 상황은 아니다. 국민연금의 불투명한 현재는 바로 공제업의 불안한 미래와 맞닿아 있다.

복수 공제조합 설립이 능사는 아닐 것이고, 법과 제도 측면에서 정비해야 할 이슈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치열한 내부 경쟁 없이 독점적인 조합원 확보와 기금에만 의존한다면, 공제업의 위기는 보다 큰 쓰나미가 되어 닥칠 것이다. 자라나는 미래세대를 위한 공제업의 파격적인 변화와, 창의적인 협업 방안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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