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시장 선거 결과를 복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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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 시장 선거 결과를 복기하며
  • 김민석 마스턴투자운용 브랜드전략팀장·ESG LAB 연구위원 listen-listen@nate.com
  • 승인 2024.01.02 09: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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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ESG 오디세이]

[한국공제보험신문=김민석] 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어떤 내용으로 새해 첫 글을 쓸까 고민하다 지난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소환해 이야기를 꺼내 보기로 결정했다.

작년 6월 한 도시에서 시장 선거가 펼쳐졌다. 후보자는 100명이 넘었다. 선거 결과가 흥미로웠다. 당선자는 홍콩 출신. 득표 2위는 포르투갈 출신. 득표 3위는 자메이카계 이민자가 차지했다. 이 도시는 어디일까? 캐나다의 토론토시다.

선거 결과 1위와 2위는 각각 이민자 가정 출신의 60대, 40대 여성이고, 3위는 이민자 가정 출신의 흑인 남성이다. 마이너리티 요소를 복수로 갖고 있는 이들이 캐나다 최대 도시의 시장직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 것이다.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올리비아 차우(Olivia Chow)는 역사상 첫 아시아계 토론토시장이 되었다. 10대 때 홍콩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온 그는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쓰는 데 성공했다. 홍콩에서 교육자였던 그의 부모는 본래 직업을 포기하고 음식 배달, 청소 등의 고된 일을 하며 그녀를 토론토대학교 졸업생으로 만들어냈다. 한국에서 이민을 간 가정의 모습과 진배없다. 부모님의 헌신에 기시감이 든다. 그렇게 올리비아 차우는 아시아에서 온 여성으로서 신민당(NDP) 보좌관, 시의원, 교육위원, 하원의원 등을 거치며 캐나다에서 정치적 커리어를 차근차근 쌓아갔다.

‘다양성’을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 행정과 정치 영역에서 DEI(다양성·형평성·포용력)가 실천적으로 구현된 사례다. 올리비아 차우는 토론토를 “이민자 출신 어린이가 새로운 시장으로 여러분 앞에 설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했다. “토론토는 희망의 장소이자 두 번째 기회의 장소”라는 말도 덧붙였다. 실지로 9년 전 선거에서 3위로 낙선했던 그는 새로운 기회를 잡아 토론토 시정의 수장 자리에 등극했다. 토론토에서 여성 시장이 나온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석패를 한 2위 득표자 아나 바일랑(Ana Bailão)은 또 어떠한가. 그 역시 감수성 예민한 10대에 포르투갈에서 캐나다로 넘어왔고, 토론토 부시장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3위 득표자는 마크 선더스(Mark Saunders)다. 자메이카계 영국 이민자인 그 또한 인고의 노력 끝에 토론토 경찰청장이 되었다. 그는 경찰청장 재직 시절 경찰청사에 성 중립 화장실을 설치하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심지어 시장직에 도전한 후보 중에는 인간뿐 아니라 강아지도 있었다. (정확히는 강아지의 주인인 토비 힙스가 대리인 자격으로 출마했다.) 그(?)는 동절기 과도한 소금 성분의 제설제 사용을 금지하자는 공약을 내세웠다. 상업용 빌딩의 화석연료 난방 금지와 같은 친환경 공약도 추가로 제시했다. 토비 힙스는 시청에 동물이 있다면 보다 나은 결정을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아래 출마를 결심했다고 전했다.

필자는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지고의 선이라고까지는 말할 생각이 없다. 이민자 가정 출신 인물이 시장 자리에 오르는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무조건 더 나은 곳이라고 함부로 재단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다만 다름에 대한 ‘존중’이라는 첫 단추부터 꿰기 힘든 사회라면, 구성원 전체가 이 상황을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얼굴을 갖고 있는가. 홍콩계 여성 시장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토론토의 아이들은 다양성이라는 화두에 마음을 여는 데 큰 애로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차별적인 언행이나 극단적이고 편협한 태도에 분명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다양성은 논의하기 꺼리게 되는 주제가 아니라, 사회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진작해 주는 원동력으로 기능할 터이다.

한국과 캐나다는 분명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으로 차이가 크다. 다시 말하지만, 토론토 시장 선거 사례를 보고, 무조건 우리도 토론토와 똑같이 하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토론토 시장 선거가 시사하는 바를 우리 입장에서 우리의 시각으로 주체적으로 살펴보자는 것이 골자다.

이민은커녕 아직도 영남이니 호남이니 출신 지역 운운하는 작태가 남아 있는 한, 감정적인 성별 대립구도로 모든 형평성 관련 논의를 집어삼키는 한, 나이로 지위고하를 결정짓는 습속을 떨쳐내지 못하는 한 DEI 어젠다를 사회 발전의 재료로 삼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차우가 도시 행정을 어떤 모습으로 펼쳐 나갈지 자못 기대가 된다. 새해에는 국내에서도 공공영역이든 민간영역이든 다양성을 무기로 혁신을 일으키는 사례가 더 많아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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