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보험 유지율, 책임전가가 답인가?
상태바
[현장에서] 보험 유지율, 책임전가가 답인가?
  • 김환범 보험설계사 kgn@kongje.or.kr
  • 승인 2023.12.06 13: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김환범 보험설계사] 보험사에 유지율은 굉장히 중요하다. 소비자는 미래의 불확실한 위험에 대비하려 다달이 돈을 내고, 보험사는 이렇게 받은 돈을 굴려 사업을 영위한다. 갑작스러운 계약 해지로 예상했던 수입보험료에 차질이 생기는 건 달가운 일이 아니다. 회계적으로 미래이익이 중요해진 지금에 와선 더욱 그렇다.

그래서 보험사들은 어떻게든 계약을 오래 유지하려 노력한다. 여기에는 좋은 상품을 만들고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상적인 방식, 그리고 보험설계사들을 압박하는 현실적인 방식이 병존한다. 오늘 말하고 싶은 건 그 현실적인 방식의 불편함이다.

현실적인이라 함은 철저히 보험사 관점에서다. 효과가 좋다는 의미다. 직접 소비자와 만나고 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설계사는 소비자와 대면이 어려운 보험사를 대신해 계약을 지키는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구체적인 방법은 모집수수료를 장기간에 나눠 지급하는 것, 일정 기간 내 계약이 해지되면 미리 줬던 수수료를 환수하는 것, 시책이나 기타 혜택을 부여하기 위한 보험설계사 평가지표에 유지율을 포함하는 것 등으로 다양하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일부 부도덕한 보험설계사의 잘못도 부정할 수 없다. 허위작성계약, 경유계약, 수수료 환수 기간이 끝나면 곧바로 새로운 보험으로 갈아 태우기 등. 이러한 것들은 보험사의 건전성에 대한 위협일 뿐 아니라, 보장 공백이라는 소비자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작금의 규제는 유지율에 대한 책임을 오롯이 보험설계사에게만 전가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7월부터 개정‧시행된 보험업감독업무시행세칙은 이러한 느낌을 확신으로 바꾼 결정적 계기였다. 유지율 산출에 청약철회와 품질보증해지계약을 포함토록 한 부분이다.

품질보증해지는 불완전판매가 조건이므로 명백한 잘못이다. 소비자는 계약 때 보관용 청약서를 받지 못했거나, 중요한 내용의 설명을 듣지 못한 경우, 청약서에 자필서명을 하지 않은 경우 계약이 성립한 일로부터 3개월 내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 

청약철회는 다르다. 소비자는 보험증권을 받은 날로부터 15일 이내, 청약한 날로부터 30일 이내 이를 무를 수 있다. 이때 보험설계사의 잘못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소비자의 단순 변심으로도 가능한 게 청약철회다. 법으로 보장된 소비자의 권리다.

그런데 소비자가 당연한 권리를 행사했다는 게 보험설계사에겐 계약을 오래 유지하지 못한 낙인으로 남는다.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말이다. 유지율 우수자를 대상으로 한 시책에서도 제외될 거고, 회사에 따라선 사유서를 내라고 할 수도 있다. 

보험설계사는 보험사가 만든 상품을 판매하는 영업인이다. 그런 보험설계사의 업무는 상품을 정직하게 판매하는 것까지다. 판매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가 있었다면 마땅히 책임져야 하겠으나, 그 이후는 아니다. 보험사의 친절하지 못한 응대나 보험금에 대한 불만으로 떠나는 소비자를 보험설계사가 어떻게 붙잡으란 말인가?

소비자가 떠나는 이유는 다양하다. 더 좋은 상품이 나왔을 수도 있고,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 보험료가 부담될 수도 있다. 보험설계사가 관리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다. 불합리한 수준이 아니라 불가능하다. 보험설계사만 닦달할 것이 아니라 보험사와 금융당국이 근원적인 이유부터 고민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