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 잃은 화재안전우수건물 인정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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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잃은 화재안전우수건물 인정 제도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3.11.29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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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안전우수건물서 소방관계법령 위반사례 속출
엄정한 심사 거쳤다더니…1년도 안돼 소화전 누수
화보협 제공하는 특수건물 할인율 신뢰성 논란도
화재보험협회 특수건물 안전점검. 사진=화재보험협회
화재보험협회 특수건물 안전점검. 사진=화재보험협회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화재안전우수건물인정제도의 공신력이 흔들린다. 위험관리 전문가들의 엄정한 심의로 선정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우수건물로 지정된 곳들에서 크고 작은 소방관계법령 위반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수건물의 차별화된 안전성을 대내외에 알려 사회 안전문화 정착에 기여하기 위함이란 제도 본연의 취지가 퇴색되는 건 물론, 안전관리가 우수하다고 평가된 특수건물에 주어지는 화재보험료 할인율의 적정성 논란까지 야기되는 실정이다.

화재안전우수건물

특수건물 안전점검을 수행하는 화재보험협회가 주관한다. 특수건물 안전점검에서 화재위험도가 낮고 건물 관계자의 안전경영 의지가 높으며 화재폭발위험, 건축방화시설, 공정시설, 소방시설 등의 관리상태가 우수한 건물을 대상으로 심의를 거쳐 선정한다. 

심의위원회는 방재 관련 교수 및 미국공인위험관리사 등 외부위원(2인 이상), 화재보험협회 직원 중 관련 경력 20년 이상의 내부위원(3인 이상)으로 구성된다. 

선정된 우수건물에는 인정서와 건물에 부착할 수 있는 인정패가 제공되며 화재보험협회의 기술지원, 자료 및 도서할인, 교육 수강, 세미나 등 각종 혜택이 부여된다. 인정 기간은 인정일로부터 2년이다. 올해 화재안전우수건물로 인정받은 곳은 총 48개소(신규 7, 갱신 41)다.

화재안전우수건물 인정 절차. 자료=화재보험협회
화재안전우수건물 인정 절차. 자료=화재보험협회

소방시설 자체점검, 문제점 속출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은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주기별로 소방시설 자체점검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관할 소방서에 보고해야 한다. 건물 관계자의 안전관리 의식과 역량,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다. 

점검은 소방시설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정상 작동 여부를 체크하는 작동기능점검과 이에 더해 설비별 주요 구성품의 구조기준의 법정 기준(건축법, 국가화재안전기준)에 적합한지까지 확인하는 종합정밀점검으로 나뉜다. 대개 면적이 크고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며 스프링클러, 옥내소화전 등이 설치되는 특수건물에는 종합정밀점검 이행 의무까지 부여된다.

그런데 화재안전우수건물로 선정된 곳들에서 소방점검 결과 여러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다. 화재안전우수건물로 인정받기 위한 기준이 일반적인 소방점검보다 훨씬 까다롭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어려운 일이다.

2021년 화재보험협회는 신규 화재안전우수건물 중 하나로 이마트 광교점을 선정했다. 당시 배포한 보도자료(5월 6일)에서도 화재보험협회가 안전점검을 실시하는 특수건물 가운데 최고 수준의 안전관리가 이뤄지는 건물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마트 광교점은 2022년 진행된 두 차례의 소방점검(작동기능점검 1회, 종합정밀점검 1회)에서 모두 문제점이 나왔다. 결과를 보고 받은 경기 수원소방서는 법정 기준에 맞춰 개선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이마트 광교점은 2023년 다시 화재안전우수건물로 갱신 인정을 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2년 화재안전우수건물로 인정된 유안타증권빌딩, 2023년 인정받은 롯데시티호텔명동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심지어 화재안전우수건물 인증을 받은 그해 소방점검에서 나타난 일이다. 서울 중부소방서는 이들 건물에 소방관계법령 위반에 따른 조치 명령을 내렸다. 

롯데시티호텔명동 소방관계법령 위반 조치명령서. 자료=서울 중부소방서
롯데시티호텔명동 소방관계법령 위반 조치명령서. 자료=서울 중부소방서

소방시설 사고까지

실제 심각한 피해로 이어진 사례도 있었다. 2023년 1월 28일 이케아 광명점에서 발생한 누수 사고다. 지하주차장 2층과 3층에서 물이 쏟아졌다. 지하주차장과 영업장 일부가 물바다로 변했고, 고객들의 대피 소동이 빚어졌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13명이 갇혀 공포에 떨기도 했다.

소방당국의 조사 결과 원인은 허술하게 관리된 소방시설이었다. 건물에 설치된 옥내소화전에서 조인트 불량이 확인됐다. 이 틈으로 물이 새어 나온 것이다. 만약 해당 옥내소화전이 커버해야 할 구역에서 실제로 불이 났다면 초기 진화에 실패,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옥내소화전 조인트 불량으로 누수가 발생한 이케아 광명점.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옥내소화전 조인트 불량으로 누수가 발생한 이케아 광명점. 사진=경기도소방재난본부

이케아 광명점은 2022년 화재안전우수건물로 인정받았다. 통상 화재안전우수건물 선정 절차는 매년 4월경 진행된다. 현실적으로 그때까지 멀쩡했던 옥내소화전 조인트가 불과 9개월여 만에 노후나 파손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는 사이에 이뤄진 소방점검에서조차 찾아내지 못했단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정일로부터 2년이 지나지 않았기에, 소방시설 불량으로 인한 누수 사고가 발생한 이케아 광명점은 현재까지도 최고 수준의 안전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는 화재안전우수건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수건물 할인율 논란

화재안전우수건물인정제도의 신뢰도 하락은 화재보험협회가 제공하는 특수건물 할인율의 공신력 논란으로 이어진다. 

화재보험협회는 매년 특수건물 안전점검을 수행하면서 화재위험도지수를 산정, 또 위험도지수별 안전등급 조정계수와 특수건물 기준할인율을 곱해 최종 할인율을 산출한다. 이렇게 산출된 할인율은 손해보험사들에 전해져 개별 특수건물이 화재보험에 가입할 때 반영된다.

특수건물 기준할인율 및 안전등급 조정계수. 자료=화재보험협회
특수건물 기준할인율 및 안전등급 조정계수. 자료=화재보험협회

화재안전우수건물은 특수건물 중 가장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고 인정받는다. 이 경우(S등급) 안전등급 조정계수는 1.40이 부여된다. 이케아 광명점 같은 대규모 점포의 기준할인율은 15%, 둘을 곱하면 할인율은 21%로 산출된다. 

정작 핵심 소방시설의 관리 부실로 사고가 발생한 곳임에도, 안전관리가 잘 돼 있다며 높은 할인율을 적용받는 모순이다. 

신뢰도 제고 필요

보험업계에선 제도의 신뢰도 확보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약부화재보험 가입이 의무인 특수건물에 대해선 화재보험협회로부터 받는 정보가 절대적이다. 그런 화재보험협회가 운영하는 안전성 인정제도의 신뢰부터 무너지면, 특수건물 화재보험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우려다.

손해보험사 관계자는 “특수건물 화재보험 가입 업무에선 법정 안전점검기관인 화재보험협회에서 제공하는 안전점검 결과, 할인율 등의 데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크다”며 “손해보험사는 그걸 믿고 진행해야 하는데, 그런 화재보험협회가 가장 안전하다고 인정한 곳들에서 사고가 터지면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전반적인 안전관리 수준을 평가하기 때문에 세세하게 들여다보는 소방점검과는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기본적인 소방점검에서도 지적받는 곳을 화재안전우수건물이라고 공표하는 것도 어폐가 있다”며 “제도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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