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지연·날씨보험, 한국형 파라메트릭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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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지연·날씨보험, 한국형 파라메트릭 ‘초읽기’
  • 홍정민 기자 hongchungmin@kongje.or.kr
  • 승인 2023.11.1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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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보험개발원, 파라메트릭 상품 검토
항공기 지연보험, 지자체 날씨보험 유력

[한국공제보험신문=홍정민 기자] 한국에서도 파라메트릭 보험을 만나볼 수 있게 됐다. 금융당국이 그동안 실손보상 원칙에 입각해 허가하지 않던 파라메트릭 보험 상품 개발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항공기 지연보험과 날씨보험에 대해 검토 중이며, 빠르면 연내 출시될 전망이다.

항공기 지연·지자체 날씨보험

파라메트릭 보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올해 초부터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은 보험개발원과 함께 날씨보험 활성화를 위한 해외 시장조사와 보험업계 지수형 보험상품에 대한 수요조사를 진행했다.

금감원은 파라메트릭 보험 도입 조건으로, 해외 사례 기반으로 시장 수요가 있고 요율 산출이 가능한 구체적인 상품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이후 금감원과 보험개발원은 가장 적합한 상품으로 항공기 지연보험과 지자체 날씨보험 2가지를 선정하고 관련 상품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실손형으로 있는 항공기 지연보험의 경우 항공편이 4시간이상 지연되면 식음료비, 숙박비, 교통비 등을 보험가입 금액 한도 내에서 실손보상하게 돼 있다. 그러나 영수증, 항공사 확인증 등의 증빙자료를 보내야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어 불편한 상황이다.

그리고 항공기가 지연되는 경우 대기시간 동안 음료, 식사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소비 시점에서 보험사고 발생이 미확정된 상태임으로 보상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이에 개발원은 항공기 출발시간이 2시간 이상 지연되거나 결항된 경우 정액형으로 보험금이 지급되는 항공기 지연보험을 개발했다. 항공기 출발이 2시간 지연되면 4만원을 지급하고 추가 지연 시간대별로 2만원씩 지급해서 최대 누적 10만원을 지급한다.

특히 항공기 지연, 결항시 보험사에서 가입자에게 항공기 지연 정보를 안내하고 곧바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간편하게 보상받도록 했다. 다만 소비자들의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보험 적용 장소는 인천국제공항, 항공사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2곳에 한정했다.

지자체 날씨보험은 여러 트리거 중 강우량을 지수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안이 검토 중이다. 일정 강우량 이상인 경우 보험금을 지급해 도로복구, 이재민 지원 등 지자체 피해복구비용으로 활용하는 내용이다. 하루나 이틀 누적 강우량 혹은 침수 가구수 등을 기준으로 구간별 보험금을 설정하는 방식도 검토 중이다.

보험 통계로는 전국의 방재기상관측장비의 관측 통계 및 행안부 자연재난 상황 통계를 활용한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지난 20년간 연도별 강우량 통계를 활용한 결과 순보험료 1억5000만원 정도가 산출됐다.

보험가입 방식은 지자체가 직접 보험계약자가 되어 보험금을 지급받고, 이를 이재민 지원금 및 인프라 복구 경비로 활용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해외에선 이미 파라메트릭 보험 ‘활발’

해외 보험사들의 경우 이상기후 확대 등으로 인해 다양한 분야에서 파라메트릭 보험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현재 도입 검토 중인 항공기 지연보험과 날씨보험도 악사, 처브, 스위스리, 손보재팬에서 이미 사용 중이다.

악사(AXA)에서는 지난 2017년 항공출발 지연시 보험금을 지급하는 항공출발 지연보험을 개발했다. 항공권을 예약한 고객이 보험에 가입하면 이더리움 기반의 플랫폼 피지(Fizzy)를 통해 비행기 출발시간을 확인해 즉시 보험금 지급유무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항공교통 데이터베이스에 연결돼 출발이 2시간 이상 지연되면 계약자가 별도 보험금 청구를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보험금이 지급된다. 역선택을 방지하기 위해 출발일 15일 전에 가입 가능하도록 설정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최초의 보험상품으로 크게 주목받았으나 시장성이 부족해 2년 만인 2019년 하반기에 판매 중지됐다.

처브(Chubb)는 2018년 스위스리와 제휴해 항공출발 지연보험을 출시했다. 2017년에는 영국을 대상으로, 2018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거주자를 대상으로 출시했다. 처브 커넥트 앱(Chubb Connect App)을 통해 오스트레일리아 거주자만 가입 가능하며 고객이 미리 약정한 지연 기준시간(30분, 45분, 60분, 120분)을 기준으로 항공기 지연을 보장한다. 항공기 출발이 지연되면 별도 보험금 청구없이 바로 고객의 페이팔(Paypal) 계정으로 보험금이 지급된다.

지난 2019년 스위스리는 유럽 지역의 강물 높낮이를 지표로 한 하천수위 보험(Flow)를 개발했다. 하천수위 높낮이에 따라 정상적인 영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기업에 대해 수입감소와 운영비용을 보장한다. 하천 수위에 따라 수익과 비용에 영향을 받는 유럽기업들이 해당 보험에 가입한다. 보험금은 미리 해당 하천에 설치된 계측기로 측정된 수위로 결정되며 최대 5000만 달러(약 660억원)까지 책정된다.

일본의 손보재팬은 일본 내에서 축적한 상품 개발 및 판매 노하우를 바탕으로 동남아 주요국가에서 날씨 지수보험을 판매하고 있다. 그 중 다량의 날씨 데이터 획득이 가능한 태국에 2010년 가장 먼저 도입됐다.

태국은 약 10㎢ 단위로 기상관측체제가 잘 갖춰져 있어 손보재팬은 태국기상청 협조로 과거 기상데이터를 입수했다. 처음에는 벼농사를 대상으로 가뭄피해를 보상했으며 7월 또는 8~9월 강수량이 일정 수치 이하인 경우 사전에 정한 보험금을 지급했다. 2019년에는 과수농가까지 대상을 확대했다. 보험금은 가뭄 수치에 따라 대출 원금의 10%~40%까지 지급한다.

파라메트릭 보험 활성화되려면

파라메트릭 보험이 활성화되려면 베이시스 리스크(피보험자에게 실제 발생한 손해액과 보험지급액 간 차액)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덱스(보험금 지급 기준 지표)로 적용할 데이터의 집적과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동안 국내 보험사나 데이터 제공기관의 기술력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태였다.

A보험업계 관계자는 “지표 설정과 관련해 지표 측정기가 고장나거나 데이터 송부 시 통신 이상 및 사이버 공격을 당해 오작동할 경우 등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프로세스를 치밀하게 준비해야 된다”며 “이에 관련된 장비와 기술력 제고 그리고 전문 인력 확보가 정말 중요하다”고 말했다.

파라메트릭은 보험상품 개발 원칙 중 ‘실손보상의 원칙’으로 인해 그동안 활성화되기 어려웠다. 실손보상 원칙은 실제로 발생한 손해만 보상한다는 취지로 고의사고 유발과 같은 도덕적 위험을 방지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가 있는 산업의 경우, 언더라이팅 없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어 보험료 절감 및 보험사각지대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최근 금융당국의 기조도 파라메트릭에 긍정적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B보험업계 관계자는 “2010년 초반에 파라메트릭 보험 상품을 금감원에서 보류했던 사례를 찾아봤는데 사건이 발생한 것과 보험금 지급 상황에 대한 인과관계를 통계적으로 입증하지 못해서 결국 상품 개발이 안된 적이 있었다”며 “이에 너무 어렵고 복잡한 경우가 아닌 심플하게 상품 구성을 할 수 있는 항공기 지연 보험 상품부터 이야기가 많이 나와 상품이 개발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파라메트릭 보험시장은 굉장히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다”라며 “예를 들어 여객지연보험이라든가, 외식업에 한정해서 지자체별로 미세먼지 농도별로 매출 손실액을 파악해서 파라메트릭 보험을 만드는 등 항공기 지연보험과 지자체 날씨보험을 시작으로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어 금융당국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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