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험업법을 적용한 ‘남극 헬기사고’ 판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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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험업법을 적용한 ‘남극 헬기사고’ 판례
  • 한창희 국민대학교 교수 chgm@kookmin.ac.kr
  • 승인 2023.06.15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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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2013년 12월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건설 현장에서 헬기사고가 발생했다. 근로자 등 11명이 탑승한 헬기가 임시숙소가 있는 아라온호 갑판에 착륙하던 중 전복되어 헬기 기장 등 2명이 안면부 등에 상해를 입었다. 대법원은 2019년 이 사건에 대해 영국법준거조항에 따라 영국 보험법을 적용하여 3억원의 보험금 지급을 명령했다.

이 사건의 보험계약은 보험사고의 지역적 범위를 남극 지방으로 한정하는 특수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보험계약의 해석 및 유효성이 문제될 때에는 ‘이 보험은 영국의 법과 관습에 따른다’는 영국법준거조항이 보험약관에 삽입되어 있었다.

우리 보험법에 따르면 타인의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상해보험 계약에서는 보험계약 체결시 그 타인의 서면에 의한 동의를 얻어야 하는 반면, 영국 보험법에서는 보험계약자에게 보험계약 체결시 피보험이익이 있을 것을 요구하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이와 같이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계약 체결시 피보험자의 동의를 요구하는 우리 보험법이나 피보험이익을 요구하는 영국 보험법의 입장은 방식에 차이는 있지만 보험 살인 등 도덕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점에서는 같다. 실제로 작년 말 억대 보험금을 노리고 여동생을 바다에 빠트려 숨지게 한 ‘부산 동백항 차량 추락사건’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우리 보험법은 이 같은 도덕적 위험을 방지하고자 손해보험 통칙에서 ‘보험계약은 금전으로 산정할 수 있는 이익에 한하여 보험계약의 목적으로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손해보험에 한하여 피보험이익을 인정하고, 생명보험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타인을 피보험자로 하는 사망보험이나 상해보험의 경우에는 피보험자의 서면 동의를 요구한다.

영국 손해보험의 경우 보험목적에 대한 경제적 이해관계이면 충분한 우리보다 법률적 이해관계를 좁게 인정한다. 피보험이익을 폐지하고 이득금지의 원칙에 의해서만 규율하는 방식으로 법률개정위원회의 컨센서스가 이뤄져 있다.

판례법주의를 취하고 있는 영국에서 1906년 해상보험법 이외에 거의 유일한 성문보험법이라 할 수 있는 1774년 생명보험법은 도박보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생명보험과 상해보험의 경우 피보험이익의 존재가 보험계약의 적법·유효요건으로 되어 있다.

이에 따라 (1)자기의 생명보험계약이나 배우자의 생명보험계약에서는 피보험이익이 추정되지만, 영국법상 부모와 자녀 상호간에 부양의무가 인정되지 아니하므로 부모는 자녀의 생명보험계약의 피보험이익을 가지지 아니한다. 자녀 또한 부모의 생존에 대하여 피보험이익을 원칙적으로 갖지 않는다.

(2) 금전상의 이익에 관해서는 ①채권자는 채무자의 생명에 대하여 채무액을 한도로 ②고용관계가 있는 고용주는 생명보험계약 체결 당시 근로자가 장래 제공할 노무가치의 상당하는 피보험이익을 가진다.

한편 2009년 중국 보험법은 생명보험의 경우에 보험청약자가 피보험이익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점에서 영국법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만, 피보험자의 동의가 있으면 피보험이익이 있는 것으로 보는 점에서는 우리법과 유사하다. 즉, 청약자는 ①자신, ②자신의 배우자, 자녀 또는 부모, ③청약자와 부양, 양육 또는 유지관계를 가지는 가족구성원 또는 가까운 친척에 대하여 피보험이익을 인정한다. 또한 피보험자가 청약자의 보험계약을 체결하는데 동의하는 경우 청약자는 피보험이익을 갖는 것으로 본다.

다시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헬기사고로 돌아가보자. 이 사건의 보험계약은 헬기에 탑승하는 다수의 승무원 및 승객을 피보험자로 하여 보험기간 동안 그들이 탑승 및 비행 중에 발생한 사고를 보상하는 것이다. 사망 또는 상해시 보험계약자가 보험자로부터 1인당 3억원 한도 내에서 전액 또는 일정 비율의 정액 보험금을 지급받는 내용이었다.

헬기는 사건 당일인 2013년 12월 14일 19:22경 임시숙소가 있는 아라온호 갑판에 착륙하던 중 전복되어 화재로 인해 기체가 전소됐다. 헬기에 탑승한 승객은 화염화상 25%의 상해를 입어 안면부대부분의 면적 및 양쪽 귀에 영구적으로 뚜렷한 흉터가 남게 됐다.

1심 법원은 준거법을 대한민국법으로 보고 이 사건 보험계약에서 상해를 입은 승무원 또는 승객이 피보험자이자 보험수익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 사건 보험계약은 타인의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인데 타인의 서면 동의가 없어 보험금 수령 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원심은 보험계약자와 보험회사 사이에 체결한 이 사건 보험계약의 피보험이익이 인정되므로, 이 사건 보험계약은 영국법상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영국의 1774년 생명보험법상 생명보험 또는 상해보험의 경우 보험계약이 적법·유효하려면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 체결 당시에 보험의 목적이 된 생명 또는 신체에 관하여 피보험이익을 가져야 한다’고 판시했다. ‘보험계약의 내용, 헬기의 운항·관리자로서 사고 발생 시 손해배상 등 책임을 부담하여야 할 갑 회사의 지위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보험계약자에 피보험이익이 인정되므로 위 보험계약이 영국법상 유효하다’고 하여 원심판단을 유지했다.

생명보험에서 보험살인 등 도덕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선진 보험국가의 제도는 크게 2가지이다. 첫째, 생명보험의 경우 피보험이익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피보험자의 서면동의를 요구하여 보험가입시 피보험자가 자기의 생명을 걸고 보험계약이 체결된다는 것을 알리고 그 결정권을 부여한다. 다만, 보험가입 후 보험살인 가능성이 증가하는 등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언제든지 동의를 철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독일, 일본 등이 채택하고 있다.

둘째, 생명보험의 경우에도 피보험이익을 요구하여 보험계약 체결시 배우자와 같이 자연적 애착이 있는 경우 등에 한하여 생명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여 보험살인 등을 사전에 철저히 봉쇄하는 방식으로 영국, 미국 등이 채용하고 있다.

생명보험제도가 탄생한 영국에서는 도박보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1774년에 최초의 성문보험법을 제정하여 원칙적으로 부부가 아닌 한 생명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그 후 독일·프랑스 등의 경우에는 생명보험의 활성화를 피보험자의 동의로 이를 대체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2019년 대법원판결은 보험사고 발생지가 남극지방이라는 특수요소가 있는 보험계약에서 영국법준거약관에 따라 보험계약의 해석 및 유효성 여부 판단에 적용되는 준거법은 영국보험법이라 봤다. 영국 생명보헙법상의 피보험이익의 해석과 관련하여 보험계약자가 자신이 잠재적으로 부담하게 될 손해배상책임으로 인한 손해를 부보할 목적으로 타인의 사망 또는 상해를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도 피보험이익을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은 보험수익자의 보호를 주된 목적으로 유용한 기능을 하는 반면 이를 악용하여 보험금의 편취를 노리고 보험살인 등 악용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상해보험에서 영국보험법상의 피보험이익제도를 적용한 이 판례는 우리와 크게 다른 법체계를 가지는 영미 생명보험 실무에도 관심이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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