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모집인과 손해사정사, 변호사의 이해충돌 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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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모집인과 손해사정사, 변호사의 이해충돌 방지
  • 한창희 국민대 교수 chgm@kookmin.ac.kr
  • 승인 2023.05.02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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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보험업은 일종의 서비스업이고, 자금의 융통 즉, 중개를 전업으로 하는 금융업권에 속한다. 서비스업이라는 점에서 의료업과 변호사업과 동일하다.

그런데 의료업이나 변호사업에서는 소개·알선·유인행위가 금지된다. 의료법은 국민건강보험법이나 의료급여법에 따른 본인부담금을 면제하거나 할인하는 행위, 금품 등을 제공하거나 불특정 다수인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 등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및 이를 사주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 조항의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는 환자와 특정 의료기관·의료인 사이에 치료위임계약의 성립 또는 체결에 관한 중개·유도 또는 편의를 도모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가 영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금지·처벌하는 이 조항의 입법 취지는 의료기관 주위에서 환자 유치를 둘러싸고 금품수수 등 비리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며 의료기관 사이의 불합리한 과당경쟁을 방지함에 있다.

변호사는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여 널리 법률사무를 행하는 것을 직무로 하므로 변호사법상 ‘변호사나 그 사무직원은 법률사건이나 법률사무의 수임에 관하여 소개·알선 또는 유인의 대가로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제공하거나 제공하기로 약속하여서는 아니 된다.’ 즉 변호사는 사건수임과 관련하여 이익을 주고받기로 하고 수임관련종사자를 활용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반면 보험의 요소로서 ‘위험의 분산 내지 결합’은 동질적이고 독립한 위험을 집적하여 대수의 법칙에 의하여 전체의 위험을 작게 하는 기능이다. 일반적으로 보험계약이 체결되는 과정은, 보험회사가 미리 대상 소비자를 위한 보험약관을 작성하여 두고, 보험설계사, 보험대리점, 방카슈랑스, 휴대폰, 콜센터 등 보험모집인을 통하여 보험가입희망 소비자를 발굴·접촉하는 방식을 취한다.

보험업은 의료업·변호사업과 달리 손해발생사실의 조사, 손해액 및 보험금의 사정을 목적으로 보험업법에 근거하여 면허를 부여한 손해사정사라는 보험전문인이 45년에 걸쳐 배출되고 있다. 근래의 손해사정사 합격자수는 한해 약 500명이고, 반면 변호사는 약 1700여명이 신규로 면허를 부여받고 있다.

보험가입단계에서 보험모집에 관한 주요쟁점은 보수의 공개 등 정보제공이고, 보험사고 발생 이후 가입계약의 면부책의 단계에서의 손해사정의 경우에는 변호사법 위반과 관련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보험모집인의 보수에 관한 문제를 살펴본다. 보험사업의 성질상 다수의 보험가입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먼저 고객을 발견 권유하는 데에서 시작되고, 이에 따라 보험거래는 일반적으로 모집이라는 과정을 수반한다. 이와 같이 보험사업은 실제로 보험보조자의 중개를 통하여 수행되기 때문에 보험업은 다른 금융업종에 비하여 일자리창출기능을 통하여 국민경제에 이바지한다.

보험회사, 보험대리점 또는 보험중개사에 소속되어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보험설계사의 수는 2018년 기준으로 약 41만명이고, 이 중 보험회사 소속은 18만4000여명, 법인·개인보험대리점 소속은 약 23만명이다. 보험대리점 중 법인보험대리점 소속은 약 22만5000명이고, 개인보험대리점 소속은 5300명이다.

보험상품판매와 서비스가 보험회사로부터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경로를 보험의 판매채널이라고 한다. 전통적인 면대면방식이 아닌 비대면 판매방식인 전화(TM: Telephone Marketing), 인터넷(CM: Cyber Marketing), TV홈쇼핑 등의 IT를 활용하는 방식이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보험모집인에게 많은 보수가 지급되는 면대면방식의 모집 비율이 여전히 높고, 이들 보험설계사·보험대리점·보험중개사는 판매수수료에 생계를 의존하기 때문에 보험계약자의 수요에 적합한 보험상품을 권유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덜 적합하더라도 보수가 높은 보험상품을 권유할 것인가라는 이익상충이 발생한다.

보험선진국은 보수와 관련된 보험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입법적인 노력을 다하고 있다. 모든 유럽연합회원국이 국내법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는 ‘2016년 유럽연합의 보험유통 디렉티브’는 “①보험모집인은 금융소비자의 이익과 관련하여 항상 정직하고, 공정하며, 전문적이어야 하고, ②회원국은 보험모집인의 금융소비자에 대해 행해지는 소통 과정을 포함한 모든 정보가 공정하고, 명확하며, 오도되지 아니하도록 하며, ③회원국은 보험모집인이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최선으로 이익상충금지의무를 위반하여 보수를 받거나 직원의 업무수행을 평가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우리나라 금융소비자보호법은 “금융상품판매업자 등은 금융상품판매업 등을 영위할 때 업무의 내용과 절차를 공정히 하여야 하며, 정당한 사유 없이 금융소비자의 이익을 해치면서 자기가 이익을 얻거나 제3자가 이익을 얻도록 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손해사정사는 보험사고가 발생한 경우 손해액의 평가, 사정을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는 가입자와 보험회사 간의 분쟁을 예방하고 손해사정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도모하기 위한 보험전문인을 말한다. 2017년 기준으로 독립손해사정사 940명을 포함하여 5417명이 활동하고 있다. 보험업법상 손해사정사의 업무는 “손해발생 사실의 확인, 보험약관 및 관계 법규 적용의 적정 여부 판단, 손해액 및 보험금의 사정, 위 각 업무와 관련한 서류의 작성·제출의 대행, 위 각 업무의 수행과 관련한 보험회사에 대한 의견의 진술”이고, ‘보험금 지급을 요건으로 합의서를 작성하거나 합의를 요구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변호사법은 ‘변호사 자격이 없고 변호사법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처음부터 금품 기타 이익을 얻기 위해 타인의 법률사건에 개입하는 것을 방치하면 당사자 기타 이해관계인의 이익을 해하고 법률생활의 공정·원활한 운용을 방해하며 나아가 법질서를 문란케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받고, 일반의 법률사건에 관하여 중재, 화해, 알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보험금청구와 관련하여 면허를 받고 서비스영업을 하는 변호사와 손해사정사의 직역의 한계가 불명확하여 법적 불안정성이 계속되고 있다. 2022년 대법원판결은 손해액 및 보험금의 사정 등 5가지의 업무와 관련하여 ‘보험가입자를 위하여 보험금 청구를 대리하거나 사실상 보험금 청구사건의 처리를 주도하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판시했다.

즉, 법원은 손해사정사의 업무범위를 “손해사정사가 그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보험회사에 손해사정보고서를 제출하고 보험회사의 요청에 따라 그 기재 내용에 관하여 근거를 밝히고 타당성 여부에 관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필요할 경우가 있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보험사고와 관련한 손해의 조사와 손해액의 사정이라는 본래의 업무와 관련한 것”에 한정했다.

아울러 “교통사고의 피해자 측을 대리 또는 대행하여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거나 피해자 측과 가해자가 가입한 자동차보험회사 등과 사이에서 이루어질 손해배상액의 결정에 관하여 중재나 화해를 하도록 주선하거나 편의를 도모하는 등으로 관여하는 것”은 변호사의 업무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변호사와 손해사정사의 업무범위를 명확히 정하려는 입법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2019년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회사가 사정한 손해액 및 보험금에 관하여 보험회사와 의견을 교환하고 그 내용을 보험계약자 등에게 설명하는 행위’를 손해사정사의 업무범위에 추가하고 있다. 반면 2022년 판결은 손해사정사의 업무범위에 관한 최초판결인 1994년 대법원판결과 2001년 대법원판결의 판시에 따라 개정된 보험업법의 내용을 적용하고 있을 뿐, 첨예하게 다투어지고 있는 회색지대에 관한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2022년 수입보험료는 생명보험사 132.7조원, 손해보험사 120.1조원 등 총 252.8조원이다. 이 보험료 중 보험모집인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약 20~30%로 추정된다. 이 보수를 취득하기 위한 보험모집인의 치열한 노력이 우리나라 보험산업의 양적성장을 이끌었지만, 보험계약자의 수요와 필요에 적합한 보험상품모집과 보다 많은 보수를 획득하는 보험상품모집이라는 두 가지 상충하는 이익의 조정이 긴요하다. 보험선진국은 보험모집의 대가인 보수에 관한 정보제공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보험모집보수의 투명성와 보험소비자에 대한 정보제공을 강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제도와 실무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보험금청구 과정에서 사실의 조사와 손해액의 사정을 직무로 하는 손해사정사의 역할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변호사의 증가와 함께 보험금청구에 관한 법률사건을 수임하는 변호사의 관여도 비약적으로 늘고 있다. 이에 따라 보험사건에 관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직업인 변호사와 손해사정사의 업무범위의 획정도 변화하는 보험환경을 감안하여 새롭게 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손해사정사의 변호사법 위반의 경우 이와 같은 관점에서 적극적인 사법을 향한 법원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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