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환경책임보험으로 번진 한국타이어 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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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환경책임보험으로 번진 한국타이어 화재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3.04.2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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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 간사사 DB손해보험에 환경책임보험 배상 요구
DB손해보험, “화재 인한 2차 손해…법령‧약관상 면책 대상”
배상 검토하라던 환경부도 번복, 손익분담 국가재보험 탓?
선례 되면 불날 때마다 보상…피해구제계정 바닥날까 우려
환경피해 있어도 보장 No…의무가입 정책보험 실효성 논란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사진=소방청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사고. 사진=소방청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환경책임보험으로까지 번졌다.

최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인근 주민들은 DB손해보험(환경책임보험 제3기 사업 간사사)에 화재로 인한 환경오염 피해를 환경책임보험을 통해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DB손해보험은 화재로 인한 2차 손해라 원칙적으로 면책 대상이라며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환경책임보험에서 배상하는 방안은 이같은 주민들의 요구가 있기 전부터 논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직후 현장 주변에서의 환경오염피해 민원이 속출하자, 환경부가 직접 DB손해보험 측에 배상을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는 것이다.

DB손해보험은 반발했고 현재는 환경부 역시 입장을 선회했다. 환경오염피해의 신속한 구제를 위해 도입된 환경책임보험이 정작 필요할 때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쟁점①-환경오염피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로 인한 환경오염피해는 명확하다. 인근 아파트 단지는 물론 상점과 농가에도 새카만 분진이 확인됐다. 주 원료가 고무인 타이어 21만개가 소실됐다. 상식적으로 발암물질인 탄화수소를 비롯해 유해물질로 분류되는 카본, 탄소 등이 발생하지 않을 수 없는 사고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보고서를 통해 타이어 화재로 인한 환경오염의 위험성을 경고했었다. 이에 따르면 타이어 1kg이 연소할 때 미세먼지는 113.5g, 금속먼지 및 유기성 먼지는 200g 이상 배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실된 타이어 21만개를 가장 가벼운 스포츠 타이어 기준(9.7kg)으로 환산해도 그 무게는 2037t에 달한다. 

또 대표적인 발암물질이자, 중독성을 가진 나프탈렌(1g)과 유기화합물(20g)도 검출됐다. EPA는 타이어 화재 때 발생하는 돌연변이 유발물질이 오염방지시설을 갖춘 석탄화력발전소에서 배출되는 가스보다 1만3000배가량 위험하다는 의견도 더했다.

토양과 수질오염의 위험도 크다. EPA 연구결과 타이어 100만개가 연소되면 약 5만5000gal(20만8197ℓ)의 기름이 흘러나온다. 이 역시 21만개로 환산해보면 1만1550gal(4만3721ℓ)의 기름이 유출된 셈이다. 지난 1990년부터 2015년까지 용산 미군기지에서 발생한 최악의 기름 유출 기준(1000gal, 3785ℓ)의 11배를 상회하며, 국내 최대 해양오염사고로 기록된 2007년 태안 기름 유출사고(3314gal, 1만2547ℓ)의 3.4배가 넘는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 현장에 투입된 대용량 방사포. 사진=소방청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 현장에 투입된 대용량 방사포. 사진=소방청

당시 화재 현장에는 수많은 소방장비가 투입됐다. 헬기 9대와 차량 158대가 동원됐다. 울산119화학구조센터에서 보낸 대용량 방사포도 있었다. 분당 45톤의 소방수를 쏟아낼 수 있는 대용량 방사포는 9시간가량 가동됐다.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이 위치한 공단의 폐수처리장이 처리 가능한 용량은 분당 42톤이다. 대용량 방사포에서 쏟아낸 양만 계산해도 분당 3톤은 그대로 인근 덕암천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헬기와 다른 방수차량, 대전공장 내 스프링클러까지 고려하면 처리되지 못한 소방폐수는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실제로 MBC 보도에 따르면 화재 다음날 진행된 소방폐수 간이 검사에서 수질오염 정도를 나타내는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은 57.8, 하천수 수질환경 기준 ‘매우 나쁨’인 11의 다섯 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대전과 청주 등지에서는 지난 5일 기준 1219건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정신적 피해를 비롯해 두통과 기관지 이상 등을 호소하는 사례 784건, 자택 오염 177건, 영업 피해 90건, 농작물 피해 42건, 차량 피해 34건, 기타 92건 등이다. 대전자치구의장협의회는 6일 성명을 내고 한국타이어에 피해 보상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했다.

쟁점②-화재로 인한 2차 손해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은 ‘환경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에 관한 법률(환경오염피해구제법)’에 따라 환경책임보험에 가입했다. 이는 일정 규모의 시설을 설치‧운영하는 사업자가 반드시 가입하는 의무보험으로 환경오염으로 인해 발생한 타인의 신체 또는 재산 피해를 보장한다.

주민들의 요구는 한국타이어 대전공장으로 인한 환경오염피해가 명확한 만큼 기존에 가입된 환경책임보험에서 배상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DB손해보험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설물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는 이유다. 화재가 직접 원인이 된 2차 피해기 때문에 환경책임보험에서는 면책 대상이라는 입장이다.

보험업계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있다. 통상 화재로 인한 소방폐수 손해 등은 영업배상책임보험에서 담보하는 특약이 있고, 환경책임보험의 영역이라 보기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환경책임보험 약관에는 보상하지 않는 사항 중 화재로 인한 손해란 명시가 없다. 유사한 맥락에서 지진, 분화, 홍수, 해일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손해는 보상하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지만, 보험에서 화재는 천재지변에 포함되지 않는다. 

환경책임보험에서 보상하지 않는 손해. 자료=환경부
환경책임보험에서 보상하지 않는 손해. 자료=환경부

사고로 인한 2차 손해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언급도 없다. 만약 이를 보상하지 않는 손해로 명기한다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한다. 대부분 환경오염사고는 크던, 작던 1차 사고에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온전히 면책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게 손해사정업계의 시각이다.

실제로 환경책임보험 보상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2019년 A기업에서 미상의 발화열원에 의한 유증기 폭발화재로 화학물질이 유출된 사고에 대해 6억80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또 같은 해 B기업의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방수에 의해 주변에 적재돼 있던 분체도료가 하천으로 유입된 사고 때도 4900만원을 보상했다. 단순히 화재가 1차 원인이기에 보상하지 않는 논리라면 이 역시 면책이었어야 했다.

화재가 1차 원인이었던 사고의 환경책임보험 보상 사례. 자료=환경책임보험사업단
화재가 1차 원인이었던 사고의 환경책임보험 보상 사례. 자료=환경책임보험사업단

쟁점③-화학물질만 보상?

환경책임보험은 2012년 구미 불산누출사고를 계기로 태동했다. 이 영향으로 화학물질에 대해선 굉장히 엄격한 형태다. 

환경오염피해구제법에선 환경오염피해를 ‘시설의 운영으로 인해 발생되는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해양오염, 소음‧진동, 진동이 원인 중 하나가 되는 지반침하(광물 채굴이 원인인 경우 제외)’로 정의한다. 

덧붙여 화학물질안전관리법(화관법) 제2조 제13호에 따른 화학사고를 포함하는데, 여기에선 ‘화학물질이 사람이나 환경에 유출‧누출돼 발생하는 모든 상황’을 화학사고로 규정한다.

타이어 제조공정에도 많은 종류의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연소 시에는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퍼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를 화학물질의 유출로는 보지 않는다. 타이어 자체를 완제품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같은 원인(화재)으로 유해물질이 발생했음에도, 원 물질이 직접 유출된 사고는 보장하지만 연소하면서 생겨난 사고는 보장하지 않는다는 논리의 배경이다.

의혹①-손익분담 국가재보험

환경부 역시 같은 이유로 환경책임보험에서 보장할 부분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의아한 부분은 사고 직후에는 오히려 환경부가 (DB손해보험에)환경책임보험에서 보장하는 것을 검토하도록 했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DB손해보험 측 주장에 설득된 모양새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책임보험은 환경오염이 1차 사고일 때 보장하는 보험인데 이번 사고는 화재가 1차 사고였고 환경오염피해가 이어진 경우”라며 “모든 화재사고에선 대기오염이나 수질오염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데 이때마다 환경책임보험에서 보장한다는 건 법 취지에도 맞지 않고 심각한 재정적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6월부터 환경책임보험에 손익분담 국가재보험을 도입했다. 보험사의 과도한 이익을 제한하고 이를 국가 구제계정으로 적립해 공공성을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것이 그간의 안정적인 손해율이 계속될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점이다. 손익분담 체계에서는 손해가 발생하면 국가의 책임도 커진다. 이번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화재를 환경책임보험에서 보장하는 선례가 만들어지면 향후 발생하는 대형 화재사고 때마다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고, 구제계정엔 심각한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셈이다.

환경책임보험과 영업배상책임보험의 비교. 자료=환경부
환경책임보험과 영업배상책임보험의 비교. 자료=환경부

의혹②-애매모호한 약관, 자의적 해석

환경부와 DB손해보험은 화재로 인한 환경오염피해는 영업배상책임보험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환경부가 지난 2021년 6월에 펴낸 ‘환경책임보험 길라잡이’ 자료를 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해당 자료에선 환경책임보험과 영업배상책임보험의 비교 설명이 등장한다. 영업배상책임보험은 ‘오염사고 추가특별약관’을 첨부해 환경오염 사고를 담보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때도 환경오염물질이 일시적으로 전파된 사고만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반해 환경책임보험은 일시적 오염뿐만 아니라 누적된 오염으로 인한 제3자 피해까지 보장하며 두 보험에 모두 가입된 경우(두 보험에서 보상하는 손해인 경우) 환경책임보험에서 보상한도액까지 우선 보상하고, 이를 초과하는 손해액은 영업배상책임보험에서 보상한다는 약관 내용도 첨부했다. 

대기오염은 일시적일 수 있다. 사고 당일에도 강풍이 불었기 때문에 진화 후에야 측정된 대기오염 수치는 낮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타이어가 타면서 발생한 기름은 토지와 하천에 누적되는 오염이다. 환경부가 직접 ‘길라잡이’에서 언급한 보장 대상인 것이다.

의혹③-의무가입 대상 적정성

화재로 인한 2차 손해, 연소 과정에서 발생한 오염은 보장하지 않는다는 게 환경책임보험의 원칙이라면 또 다른 문제가 나온다. 광범위하게 설정된 의무가입 대상의 적정성 여부다.

현재 환경책임보험의 의무가입 대상은 환경오염 유발시설을 보유한 사업자다. 각 분야와 위험물질 취급 및 배출량 등 세부적인 기준이 있으나, 쉽게 생각해 화학물질을 다루거나 환경기술인을 선임해야 하는 업체라면 모두가 대상이다. 

2020년 11월 기준 의무가입 대상 사업장은 1만4388개, 시설물은 1만7375개소에 이른다. 미가입에 따른 제재가 강해, 휴업이나 폐업을 제외하면 가입률은 99%에 육박한다. 화재를 원인으로 파생되는 환경오염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상당수의 사업장은 현저히 낮은 위험성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보험료를 내고 있는 셈이다.

환경책임보험 가입건수 및 가입률. 자료=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책임보험 가입건수 및 가입률. 자료=한국환경산업기술원

제도 도입 취지 살려야

환경책임보험은 환경오염사고에 대비하고자 만들어졌다. 피해자 입장에선 환경오염의 특성상 피해 입증이 어렵고, 고액의 비용과 장기화 등으로 소송 자체를 포기하며 피해를 감수하게 될 상황을 구제하기 위한 목적이다. 또 사고 기업에는 막대한 피해배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도산하는 사태를 방지하며, 국가적 측면에선 사고 때마다 예기치 못한 세금이 투입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화재로 인한 환경오염피해 역시 자명하고 심각하다. 환경책임보험의 도입 취지대로라면 이 또한 보장해야 하는 영역이다. 직접 유출된 기름과 불이 나서 발생한 기름이 토양이나 수질에 미치는 영향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모호한 법령과 이를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하는 행태로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가 방치되고 있다. 되레 법령상 보장하기 난해한 부분이 있다면,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구제를 더욱 폭넓게 할 수 있도록 이를 개선해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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