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자대위에서 피보험자 보호를 우선한 판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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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자대위에서 피보험자 보호를 우선한 판례 변화
  • 한창희 국민대 교수 chgm@kookmin.ac.kr
  • 승인 2023.01.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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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보험자대위는 보험자가 피보험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한 경우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지위에서 손해가 생긴 피보험이익에 대한 권리와 구제방법을 법률상 당연히 취득하는 것을 말한다. 그 근거는 이득금지의 원칙이다. 손해보험계약에서는 계약자 측이 이득을 얻는 건 허용되지 않는다. 이 원칙은 법률엔 명시돼 있지 않지만, 해석상 이렇게 고찰되고 강행법으로 취급된다. 

즉, 보험자대위제도를 둔 이유는 피보험자가 보험금을 받은 후에도 제3자에 대한 청구권을 보유, 행사하는 것은 손해의 전보를 넘어 오히려 이득을 주는 결과가 된다는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는 손해보험 원칙에 반하게 되며 배상의무자인 제3자가 피보험자의 보험금 수령으로 책임을 면하게 되는 불합리도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를 제거해 보험자에게 그 이익을 귀속시키려는데 있다.

지난 2015년 가해자 과실로 손해를 입은 피보험자가 손해의 일부만 화재보험으로 보상받고 보험자는 가해자에게 보험자대위를 청구한 사건이 있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잔존 손해액 중 피보험자가 먼저 전보하고 남은 부분에 대해 보험자대위를 허용하는 취지로 판례를 변경했다. 

이후 2021년과 2022년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이 얽힌 사건에서도 앞선 판례의 취지대로 피해자인 수급권자, 재해근로자의 보호를 위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근로복지공단의 구상권을 제한했다. 또 자동차보험의 자기차량손해담보 자기부담금 환급 관련 사건에도 해당 화재보험 사건을 원용했다. 

보험자대위는 18세기 전반부 스페인에 의한 영국 선박·적하 압류사건에서 발전했다. 영국 국왕은 선박‧적하의 재탈취를 명령하고 탈취물의 매도이익은 손해를 입은 선주, 하주와 재탈취에 참가한 선원들에게 분배했다. 

이때 손해를 입은 선박에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에게는 매도이익을 지급하지 않고 소유자에게는 보험 가입 여부와 관계없이 지급했다. 이로 인해 보험계약자에 대한 보상은 중복으로 이뤄졌다는 것과 보험자의 지급보험금을 회복 받을 수 있는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됐다. 

이 ‘스페인 압류 사건’은 보험자가 보험금을 지급하고 피보험자가 다른 원천에 의해 보상을 받은 경우, 피보험자의 중복보상을 배제한다는 원칙을 적용하고 그 이익은 보험자에게 귀속한다는 것을 확립했다. 이후 1880년까지 보험자대위는 제3자에 대한 피보험자의 권리를 행사할 목적으로 보험자가 피보험자의 지위에 서는 단순한 이론이었다. 

1883년 ‘카스텔레인 대 프레스턴 사건’에서는 피보험자가 보험금을 받고 제3자에 의해 손해배상도 받은 경우 보험자에게 회복을 허용했다. 또 1886년 ‘두푸어셋 대 비숍 사건’에서는 이중보상을 방지하기 위한 소극적인 원칙이었던 것을 넘어 피보험자가 이를 포기할 수 없도록 하는 적극적인 권리를 보험자에게 부여했다.

근래 보험자대위에 관한 쟁점은 일부보험계약을 체결해 보험금을 받고도 피보험자에게 잔여 손해액이 있는 경우다. 사고의 책임이 있는 제3자가 별도로 존재, 그 제3자를 대상으로 보험금을 지급한 보험자의 대위청구권과 잔존손해가 있는 피보험의 손해배상청구권이 경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피보험자는 보험금으로 전보되지 않고 남은 손해에 관해 제3자를 상대로 그의 배상책임을 이행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전체 손해액에서 보험금으로 전보되지 않고 남은 손해액이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액보다 많을 때는 보험자의 대위권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피보험자에게 먼저 귀속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일본은 1997년 최고재판소 판결에서 피보험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보험자와 피보험자의 부보비율에 따라 분배하는 상대설의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2008년 제정(2010년 시행)된 보험법에서는 ‘당해 보험자가 행한 보험급부액이 전보 손해액에 부족한 때는 피보험자는 피보험자채권 중 당해 대위와 관련된 보험자의 채권에 우선해 변제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며 차액설로 전환했다. 독일의 학설과 판례 역시 이와 유사한 ‘차액전의 대응’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5년 화재보험 사건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보험자는 보험금액의 한도까지 우선적으로 배정을 받고 피보험자는 나머지에 대하여 지급받는다’는 절대설을 폐지하고 일본과 독일에 상응하는 차액설을 채용했다. 2021년과 2022년 건강보험과 산재보험 관련 사건에서도 이같은 취지를 반영, 수급자와 재해근로자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인정했다. 또 자동차보험 자기차량담보에서 본인부담금에 대한 피보험자의 환급청구권을 인정한 데 따라서도 일부 하급심판결에 관한 보상실무상 논의가 진행 중이다.

네 가지 쟁점에 대해 살펴본다.

첫째, 2015년 사례는 인접한 자동차부품공장 건물 내 창고에서 발생한 화재가 옮겨 원고의 부보된 건물과 기계류 일부 및 재고자산이 소훼된 사건이었다. 

원심은 전체 손해액 6억여원 중 60%인 4억원을 인정하고 보험회사로부터 수령한 약 3억2000만원과의 차액인 8000만원가량을 가해자가 배상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대법원은 전체 손해액 6억여원 중 지급보험금 3억2000만원을 공제한 금액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손해보험 사고에 관해 동시에 불법행위나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책임을 지는 제3자가 있어 피보험자가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경우, 피보험자가 수령한 보험금은 스스로 보험사고에 대비해 그때까지 보험자에게 납입한 보험료의 대가적 성질을 지니는 것으로,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과는 별개이므로 손해배상책임액에서 공제할 것이 아니다’고 판시했다.

둘째, 2021년 판결은 피해자 과실로 인한 상해 치료비에 대해 건강보험법에 따라 보험급여를 받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제기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건강보험법에 따라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기왕치료비 손해배상채권을 대위하는 경우 그 범위는 가해자의 손해배상액을 한도로 공단이 부담한 보험급여비용 전액이 아니라 가해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한되고 나머지 금액(공단 부담금 중 피해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피해자를 대위할 수 없으며 이는 보험급여 후에도 여전히 손해를 전보받지 못한 피해자를 위해 공단이 최종적으로 부담한다. 이때 공단이 보험급여 지급의무를 면함으로써 부담하지 않게 되는 비용의 범위는 가해자의 행위를 원인으로 지급 사유가 발생한 금액, 즉 공단 부담금 중 가해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한정되고 나머지 부분은 여전히 공단이 부담한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제3자 손해배상 후 피해자가 보험급여를 받았다면 공단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피해자에게 부당이득으로 징수할 수 있는 범위도 가해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한정된다’고 했다.

셋째, 2022년 대법원 판결은 광케이블 철거작업을 맡은 회사 소속 근로자가 철거 중인 전주에 머리를 가격당해 사망한 사건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요양급여, 장의비, 유족연금으로 약 2억2000여만원을 지급하고 가해자에게 구상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이전의 판례를 변경, ‘공단이 제3자의 불법행위로 재해근로자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한 다음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할 수 있는 범위는 제3자의 손해배상액을 한도로 해 보험급여 중 제3자의 책임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제한된다. 

따라서 보험급여 중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공단이 재해근로자를 대위할 수 없으며 이는 보험급여 후에도 여전히 손해를 전보받지 못한 재해근로자를 위해 공단이 종국적으로 부담한다고 보아야 한다”고 하였다.

넷째, 자기차량손해담보의 자기부담금과 관련한 일부 하급심판결은 보험자의 대위권보다 피보험자의 손해배상청권이 우선된다는 2015년 대법원판결의 취지에 따라 자차보험자의 대위행사가 가능한 금액에서 피보험자가 부담한 자기부담금을 공제, 피보험자의 자기부담금 환급을 인정했다. 

다만 타당성 여부에 관한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이후 대법원 판결 양상과 이에 따른 보험실무에서의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법상의 보험과 국민건강보험, 산재보험상 공보험에서 보험자의 대위권, 구상권을 제한하고 피보험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방향으로 보험자대위 실무가 변하고 있다. 

판례는 그 근거를 ’피보험자가 수령한 보험금은 보험사고에 대비해 스스로 납입한 보험료의 대가적 성질을 지니는 것으로서 제3자의 손해배상책임에서 공제할 것이 아니다‘라는 점과 ‘재해근로자에게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그 위험을 부담하도록 하는 것은 산재보험제도의 존재 목적에도 반한다’고 봤다. 또 ‘보험급여 중 적어도 재해근로자의 과실비율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은 보험자인 공단이 재해근로자를 위해 본래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서 재해근로자가 보험급여 수령 이익을 온전히 누리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고 한다. 

이에 따라 보험업계는 자기차량담보에서 자기부담금 환급을 허용하는 하급심판례와 이를 배제하기 위한 약관 개정에 따라 자동차보험 보상실무의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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