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談] 골프보험의 역주행 성공기
상태바
[보험談] 골프보험의 역주행 성공기
  • 이재홍 기자 leejaehong@kongje.or.kr
  • 승인 2022.10.07 14: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험談]은 보험업계의 숨은 이야기를 다루는 코너입니다. 보험상품 개발 비하인드스토리부터 각종 카더라 통신까지 보험업계 여러 담론(談論)과 아주 사소한 이야기들, 때로는 보험사들이 민감한 험담(險談)까지도 가감없이 전달한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습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재홍 기자] 요즘 골프보험시장이 뜨겁습니다. 보험사들이 앞다퉈 신상품을 내놓고 있는 게 확고한 방증이죠. 아무리 간단한 형태라도 보험상품을 만드는 데는 상당한 품이 들거든요. 또 판매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향후 운영도 고려해야 합니다. 즉 보험사들이 새로운 상품을 쏟아낸다는 건 번거로운 수고를 감수하고도 이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는 의미입니다.

최근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지만, 국내 골프보험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습니다. 확인 가능한 기록상으로는 1980년대에 등장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홀인원보험이라고 불렸죠. 홀인원을 기록하면 동반자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거나, 기념품을 돌려야 하는 관례에서 파생된 금전적 리스크를 보장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이 홀인원보험은 초창기엔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보험금을 받을 가능성이 너무 희박합니다. 보통 아마추어 골퍼의 홀인원 확률이 파 3홀을 기준으로 1만2000분의 1이라고 하는데요. 이 정도 가능성을 걱정해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상해나 질병 같은 심각한 위험도 아닌데 말이죠.

그로부터 약 40년 후에야 빛을 보게 된 골프보험, 보험업계에서는 이것이 가능했던 배경 중 하나로 코로나19를 꼽습니다.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으로 오히려 혜택(?)을 받은 몇 안 되는 분야라는 겁니다. 통상 4인 플레이로 이뤄지는 실외스포츠라는 특성상 사적 모임에 4명까지 허용된 방침에서 비교적 자유롭기도 했고요. 그렇게 국내외여행과 다른 실내스포츠들이 제약을 받는 사이 골프를 즐기는 인구는 급증했습니다. 보험이 성장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조건, ‘모수’가 탄탄해진 겁니다.

소위 대표적인 귀족 스포츠라 불리던 골프의 대중화 바람은 단순히 잠재고객의 양적 증가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홀인원 리스크 체감도에도 영향을 미쳤죠. 경제적으로 넉넉한 골퍼들에겐 별거 아닌 한턱이 누군가에게는 적잖은 부담일 수도 있습니다. 3대가 덕을 쌓아야 달성할 수 있다는 홀인원이 찾아왔을 때 기쁨을 오롯이 만끽하려면 주머니 사정을 걱정해야 할 상황에서부터 자유로워야겠죠.

보험사들은 이렇게 생겨난 파이를 더욱 키우려 노력했습니다. 어떤 회사는 골프를 치는 날 하루만 가입할 수 있도록 편의를 극대화했고 어떤 회사는 홀인원에 더해 골프채 파손, 배상책임, 상해 등 담보 영역을 늘렸죠. 선물하기 기능이 등장했고 스크린골프 홀인원에 대한 보장 가입도 가능해졌습니다. 그렇게 홀인원보험이 골프보험이 되고, 다른 보험상품과 연계되면서 이제 틈새시장의 신기한 상품이란 꼬리표는 뗐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물론 골프보험은 그 자체로 보험사의 큰 수익원이 되긴 어렵습니다. 보험료가 워낙 저렴하니까요. 잠재고객인 골프 인구가 많다지만, 경쟁에 뛰어든 보험사도 많습니다. 의무보험이 아니라 수요 예측도 어렵고 심심찮게 발생하는 보험사기도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여러 보험사가 골프보험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재무제표에는 나타나지 않는 이득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마케팅 효과가 있습니다. 무형의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사로서는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익은커녕 되레 돈을 써야 하는 브랜드 광고나 행사에 적극적인 것도 그래서죠. 골프보험, 크진 않아도 수익은 나는 데다 골프 인구를 타겟팅해 어필할 수 있는 매개체로 어떻습니까?

근래 골프의 진입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지만 아직은 저렴한 취미라 말하긴 어렵습니다. 1년~3년짜리 골프보험에 가입하는 소비자라면 적어도 정기적으로 골프를 즐길 정도의 경제적 여력은 된다는 의미겠죠. 필요하다면 다른 보험상품에 가입할 여지도 있고요. 가망고객의 DB 확보, 이것도 보험사에는 상당한 메리트입니다.

다시 저렴한 보험료 이야기로 돌아가서, 이는 보험사에는 높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지만 반대로 소비자에게는 부담이 없다는 장점이기도 합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가격저항이 낮은 골프보험을 다른 보험상품에 특약 형태로 탑재, 1+1 이상의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골프보험과 잘 어울리는 상품이라면 대표적으로 운전자보험을 들 수 있습니다. 골프의 특성상 장거리 운전이 동반될 때가 많아서죠. 상당수 골프장은 도심지나 주거지역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요. 골프를 즐기는 이들에게 운전 중 사고와 골프 관련 보장을 한 번에 제공한다는 플랜은 주효했고, 현재는 운전자보험과 골프보험을 모두 운영 중인 보험사 대부분이 운전자보험에 골프 담보를 넣어 판매하고 있습니다.

운전자보험은 골프보험보다 원초적인 위험을 보장합니다. 당연히 소비자 니즈도 더 클 수밖에 없죠. 도로교통법 개정 등 사고 때 운전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정책이 시행될 때마다 수요가 급증하기도 하고요.

새 국제회계기준(IFRS17)을 준비해야 하는 보험사로서도 중요한 영역입니다. 보장성보험으로 당기손익이 높게 잡혀서지요. 보험사기, 출혈경쟁, 금융감독원 개선 권고 등의 부정적 키워드에도 보험사들이 계속해서 보장을 강화하며 전략상품으로 내세우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단일상품으로는 다소 부족했던 니즈와 보장을 보완하는 형태로 골프보험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한순간의 트렌드로 끝나지 않고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며 발전해온 것이죠. 아직 국내에선 지지부진한 소액단기보험의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은 모델이라고도 생각됩니다. 간단한 구조에 저렴한 비용, 기간이 되는 골프산업의 인프라까지 제반 조건은 충분하거든요.

#보험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