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와 보험의 탄생과 로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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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제와 보험의 탄생과 로이즈
  • 한창희 국민대 법학과 교수 chgm@kookmin.ac.kr
  • 승인 2020.10.2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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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신문=한창희] 유사보험으로 불리는 공제는 학생의 교육활동 중의 상해사고나 각종 협동조합원의 사망·상해·질병에 대한 급부, 건설사업에 대한 보증, 위험률이 높아 보험회사가 인수를 꺼리는 화물자동차·택시·렌터카의 운행으로 인한 사고를 보장하는 제도로 우리의 경제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사회안전망을 구성하고 있다.

영국 철학자 칼 포퍼에 의하면 역사는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다. 이는 역사를 통해 현재에서 과거를 보는 것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나의 인식과 개념으로 과거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보험의 역사는 보험의 본질을 어떻게 파악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구성원이 보험의 본질을 공동체에서 조금씩 각출해 장래의 예측할 수 없는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공동으로 비축하고, 손해를 입은 사람의 구제에 충당하는 제도라고 파악한다면 과거의 원시공동체까지 소급된다.

현대 보험은 경제적인 상업제도고 보험에 가입하는 사람의 동기는 손해로 곤란해진 타인에게 금전을 지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곤란해진 경우를 위한 것이며 이를 위해 보험료를 지급한다. 보험을 인수하는 사람도 이익을 얻기 위한 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보험의 본질을 사업제도로 파악해 보험의 역사를 소급한다면 보험제도는 14세기의 해상보험의 탄생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해상보험은 14세기 이탈리아의 피사, 피렌체 등의 상업도시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고찰되고 있다. 보험의 시초는 해상보험이고 오늘날 보험은 개인생활에서부터 기업생활의 구석까지 침투하고 있다. 보험제도는 위험부담에 대해 대가를 지급하는 제도로 사유제산제도, 자기책임원칙, 계약개념 등이 존재해야 성립한다. 개인생활분야에 보험이 생긴 것은 시민사회가 성숙한 17세기 경이다.

옛날부터 지중해에서는 교역이 성행했다. 무역의 성공은 큰 이익을 주지만 무역에 수반하는 다양한 위험은 큰 위협이었다. 해난에 조우하면 전재산을 상실했다. 이에 대한 대처방법으로 상인이 고안한 제도가 모험대차다. 유태인이 프랑스에서 추방된 때인 1182년에 이 모험대차를 이탈리아의 롬바르드 지방에 소개했고 롬바르드인이 이를 개량했다.

모험대차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지중해 연안지방에서 이용되던 융자제도다. 항해사업자는 선박과 적하를 담보로 금융업자로부터 자금을 융자받지만 해난과 해적에 의해 항해중 선박과 적하가 멸실하는 경우에는 자금 변제가 면제됐다. 모험대차에서는 통상의 융자에 항해 중 재산이 전부 멸실하는 위험을 금융업자가 부담했기 때문에 항해가 무사히 종료된 경우에는 원금에 다액 이자(20~30%)를 더해 변제됐다. 모험대차는 해운·해상무역에 유익한 제도로 지중해 연안국가에 확대되고 12~13세기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의 상업도시에서도 널리 이용됐다.

그런데 13세기에 차입금의 고통이 중대한 문제가 되자 로마황제 그레고리우스 9세는 1234년 경 교회법에 근거해 이자를 취득하는 것을 어느 경우라도 금지하는 이자금지령을 공포했다. 모험대차제도는 이자를 취득하는 제도이었기 때문에 행할 수 없게 됐다. 해상무역에서는 다액의 자금이 필요하고 위험도 크기 때문에 모험대차는 필요했고, 상인은 이자금지령을 위반하지 않고 모험대차와 같은 효과를 가지는 제도를 고안하게 됐다. 다양한 방법이 사용되던 중 모험대차에서 융자 부분을 떼어내고 위험 부분만 대가를 얻는 거래가 생겼다. 이것이 바로 해상보험의 탄생이다.

이는 14세기 중반에서 후반으로 피사, 제노아, 파렌체, 베네치아 등의 북이탈리아의 상업도시가 그 무대였고 지중해무역의 발전과 북이탈리아의 롬바르드인 등의 해외 이주 등을 배경으로 15세기에는 마르세유, 앤트워프 등으로 확대됐다. 16세기에는 앤트워프 등이 지중해 지역을 갈음해 해상무역의 중심이 됐으며 롬바르드 상인에 의해 런던에 전파됐다.

17세기 무역의 중심으로 런던이 발전하며 해상보험의 무대가 됐다. 현재에도 런던은 재보험, 해상보험, 기타 기업분야의 보험거래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으나 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로이즈다.

로이즈는 1688년의 어드워드 로이드라는 커피하우스에서 출발했다. 로이즈 커피하우스는 해상보험의 거래장소로 성업했고 1760년대 전쟁위험의 존재 등으로 인해 다액의 이익을 얻었지만 전쟁의 종료로 다양한 도박보험을 판매해 쇠퇴도 경험하면서 개인보험사업자 위주로 성장했다. 로이즈는 다양한 위험을 인수해 보험시장으로써 세계적인 지위를 확립해 1980년까지 1세기 동안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로이즈는 미국의 제조물책임, 석면관계 배상책임보험소송 그리고 빈번한 자연재해로 거액의 재보험금지급에 직면해 1994년부터 내부의 거버넌스, 위험관리체제의 강화, 회계제도의 변경 등 대변혁을 추진했다. 이러한 개혁이 성공하면서 로이즈는 현재 재보험과 해상보험 등의 기업보험의 분야에서 국제적인 보험시장으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험이라는 용어는 1895년 유길준의 서유견문 7편에 처음으로 사용됐다. 현재 우리나라는 지난해 기준 수입보험료 206조 3813억원, 세계시장 점유율 2.77%, 세계수입보험료 순위는 7위다. 700년의 역사를 가지는 보험업과 공제업이 촘촘한 사회안전망으로 국민에게 안심을 제공해 변함없는 신뢰를 쌓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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