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스스터디] 미국 대형 공제보험사 '리버티뮤추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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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스스터디] 미국 대형 공제보험사 '리버티뮤추얼'
  • 홍정민 기자 hongchungmin@kongje.or.kr
  • 승인 2020.07.02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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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 보상에서 시작해 세계적 보험사로 성장
보험업 한계 넘어 보험사고 예방 앞장, '사업성+이미지' 두 마리 토끼

[한국공제신문=홍정민 기자] 미국 공제보험사 규모는 리버티뮤추얼(Liberty Mutual), FM(Factory Mutual) 글로벌 등 세계적인 대규모 기업부터 단일 카운티에서 운영되는 소규모회사까지 매우 다양하다. 대부분 공제보험사들은 자동차, 주택, 기업 등 다양한 대상에 보험을 판매하는 반면 교회, 약사, 보석상등 틈새시장 전문 공제사들도 있다. 이 중 세계적 공제보험사로 성장한 리버티뮤추얼의 탄생과정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어쩌면 국내 공제조합의 미래 모습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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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미국 보스턴에 지어진 최초의 리버티 뮤추얼 본사 모습. 사진=리버티 뮤추얼
1937년 미국 보스턴에 지어진 최초의 리버티 뮤추얼 본사 모습. 사진=리버티 뮤추얼

근로자 재해공제 '리버티 뮤추얼(Liberty Mutual)'

2019년 매출 기준 미국 유명경제지 포춘(Fortune)지 선정 100대 미국 기업 중 75위를 차지한 리버티 뮤추얼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전 세계 900개 이상의 지역에서 4500만명 이상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자산 1300만 달러(약 156억원), 연매출 430억 달러(약 52조원)를 기록했고, 자동차, 주택보험, 근로자 보상, 일반 배상책임, 전문배상보험, 화재 및 보증을 포함, 광범위한 보험 상품을 보유 중이다.

리버티 뮤추얼은 근로자 재해보상보험에서 시작됐다. 최초의 근로자 보상 시스템은 1884년 독일에 도입됐으며 1897년에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노동자 보상법이 시행됐다. 미국에서는 벌목일꾼들에게 특화한 시카고 회사 '룸버맨즈 뮤추얼 캐주얼티 컴퍼니(Lumbermens Mutual Casualty Company)'와 같은 민간 보험사에서 이미 일부 근로자보험을 제공하고 있었다. 1902년 메릴랜드를 시작으로 1949년 미시시피가 법안 제정을 함으로써 모든 주에서 근로자 보상법이 확립됐다.

1911년 매사추세츠 주의회는 고용주가 근로자 보상을 제공하도록 규정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의거해 리버티 뮤추얼의 시초인 매사추세츠근로자보험연합(MEIA)이 구성됐는데 15명의 임원진이 주주가 아닌 보험계약자의 이익을 위해 1912년 7월 1일 보스턴에서 공제사로 운영을 시작했다.

회사는 처음부터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 보험금을 지불하는 생명보험 제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의 안전을 위한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1912년 약 2만명의 미국 노동자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는데 공제사는 목공 기계, 파워 프레스, 프레스 브레이크, 밀링 머신 및 드릴 프레스와 같은 위험한 장비로부터 작업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계 보조장치를 설계하는 데까지 도움을 줬다.

MEIA는 1914년 매사추세츠주 스프링 필드에 첫 지점을 개설해 공제상품 다양화를 시도했지만 법률에 따라 책임 범위가 제한돼 있어 이를 시도하지 못했다. 대신 1908년에 매사추세츠주가 공인한 화재공제회사인 '유나이티드 뮤추얼 화재보험회사(United Mutual Fire Insurance Company)'와 제휴를 맺었다.

매사추세츠 주의회는 1915년에 MEIA가 배상책임보험을 인수할 수 있는 새로운 법률을 통과시켰으며 그 후 MEIA는 자동차 보험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추가 법률에 따라 MEIA는 매사추세츠 이외의 지역에서 사업을 할 수 있었고, 점차 사업이 다각화되자 1917년 8월 현재의 리버티 뮤추얼로 회사 이름을 변경했다.

작업장 사고 예방 노력으로 인지도 획득, 사업 다각화로 연결

리버티 뮤추얼은 작업장 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간 것으로 유명하다. 1921년 무성영화인 '무법자(The Outlaw)'와 '운명의 손(The Hand of Fate)'이라는 안전 영화를 제작해 25만명 이상의 근로자와 공장 관리자가 관람했다. 1930년부터는 운전자 교육과정에 고등학생에게 안전자료를 배포하기도 했다.

대공황 기간인 1930년대 리버티 뮤추얼은 보스턴에 새로운 본사를 세우며 근로자보상보험에 명실상부 최대의 보험자로 번성했다. 2차세계대전 중인 1943년 리버티 뮤추얼은 부상자들이 생산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실험 재활 센터를 창립했다. 또한 최초의 에스컬레이터 비상 차단 스위치를 개발했는데 이 장치는 1960년에 이르러 모든 미국 빌딩의 에스컬레이터에게 필수 요건이 됐다.

1954년 매사추세츠주 홉킨턴에 있는 최첨단 실험실인 '리버티 뮤추얼 리서치 센터(Liberty Mutual Research Center)'를 설립했다. 이 센터는 직장 활동으로 인한 피로를 판단하기 위한 테스트 개발, 트럭 운전자를 위한 비상 지원 프로그램 작성 등 광범위한 활동을 펼쳤다.

미국 고속도로에서 매일 100명이 사망한 1957년에 리버티 뮤추얼은 코넬 대학(Cornell University)과 협력해 안전벨트와 머리 받침을 갖춘 프로토타입 '생존 차량(survivor car)'을 제작해서 당시 인기 TV 게임 쇼인 I've Got a Secret에 출연시켰다. 리버티 뮤추얼의 이니셔티브를 통해 자동차 제조업체는 접을 수 있는 조향축, 에어백, 머리 받침, 안전벨트 등과 같이 지금은 표준이 된 여러 안전기능을 도입할 수 있었다.

또한 1964년 리버티 뮤추얼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홉킨턴에 스키드 컨트롤 스쿨(Skid Control School)을 개설해 스키드 및 기타 비상 상황에서 차량제어법을 상업용 차량 운전자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리버티 뮤추얼 연구소는 1960년대 초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MIT)과 협력해 최초의 배터리 구동 보철 팔꿈치인 '보스턴 엘보우(Boston Elbow)'를 개발하고 1980년대에는 재활센터에 허리학교(The Back School)을 설립해 요통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등 인체 공학 분야에 대한 선구적인 연구도 수행했다.

1973년 리버티 뮤추얼이 글로벌 재보험 시장에 참여하기 위해 런던에 위치한 최초의 완전 국제 사무소를 개설한 이후 리버티 뮤추얼은 현재 연 20억 달러에 이르는 거수 보험료를 달성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는 보험 산업 전체의 확장과 도전의 시기로 '리버티 인터네셔널 홀딩스(Liberty International Holdings)'를 설립해 여러 회사들을 합병하면서 콜롬비아, 필리핀, 싱가폴, 홍콩 등 전 세계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김신중 사이먼리코리아 대표는 "미국, 유럽 등은 리버티 뮤추얼 같이 공제조합이 상호보험사 형태로 발전한 경우가 대다수다"라며 "국내 공제기관도 사업다각화로 인해 규모가 커진다면 상호보험사 형태인 뮤추얼 형태로 따라가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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