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과 공제모델로 성공한 스테이트 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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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공제모델로 성공한 스테이트 팜
  • 류근옥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klew@seoultech.ac.kr
  • 승인 2022.08.0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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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류근옥 교수] 미국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가장 큰 점유율을 가진 회사가 스테이트 팜(State Farm)이다. 이는 미국 일리노이주의 한 농부가 설립한 상호회사 형태의 보험회사이다. 그 농부가 조지 마헐(George J. Mecherle, 1877~1951)이다. 상호회사는 주식회사와 달리 보험가입자들이 회사의 고객이자 주인이다. 그래서 영업결과 이익이 나면 계약자배당 형식으로 보험료 중 일부를 고객에게 되돌려준다. 특히 초창기에는 농부만 대상으로 보험영업을 하였기 때문에 농업과 같은 동종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농협공제와 진배없었다.

마헐은 1877년 미국 일리노이주 블루밍턴에서 출생하여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그런데 걱정이 생겼다. 그의 부인이 아직 젊은 나인인데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다리에 통증이 매우 심했다. 애처가였던 농부는 나이 40세에 아내의 관절염 치료를 위해 농장을 남에게 임대하고 조기 은퇴했다. 남부의 따뜻한 플로리다로 내려가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부인의 관절염은 플로리다에서도 별로 호전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고향인 블루밍턴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농사를 짓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마헐은 블루밍턴에 있는 작은 보험회사에 들어가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는 외판원이 되었다.

그런데 그는 도시와 농촌 운전자의 보험료가 똑같은 것을 보고 매우 의아해했다. 시골에는 자동차 수도 적고 도로도 한가하여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데, 차도 많고 사고도 잦은 도시 운전자와 보험료가 같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마헐은 도시와 농촌 운전자 사이에 보험료를 차등하여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고 자기 상관과 회사에 여러 차례 건의했다. 그러나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1922년 45세의 나이로 일리노이주에 거주하는 농민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저렴하고 정직한 요율의 자동차 보험회사를 직접 설립했다. 이것이 오늘날 ‘스테이트 팜(State Farm)’이다. 마헐의 머릿속에는 “정직은 가장 좋은 정책이 아니라 유일한 정책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있었다.

농민들로만 구성된 보험계약자들은 동일 업종에 종사하기 때문에 서로 공동체 의식이 높았다. 따라서 고의로 사고를 일으켜 보험금을 타려는 비양심적 행위(moral hazard)도 적었다. 상호회사의 경우, 보험계약자가 바로 회사의 고객이자 주인이기 때문에 주인과 고객 사이에 발생하는 이기적 다툼이나 갈등도 적었다.

그는 당시 보험대리점이 하던 보험료 청구서 발송과 보험료 수납 업무도 모두 본사로 이관하여 집중화함으로써 규모의 경제에 의한 비용 절감을 도모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대리점들은 행정업무 부담이 크게 줄었다. 보험판매에만 전념하게 되어 매출증가를 가져올 수 있었다. 또한, 다른 보험사와 달리 6개월마다 보험계약을 갱신하도록 했다. 그 결과 사고를 자주 일으키는 운전자는 할증요율을, 사고가 없는 우량 운전자는 할인요율을 즉시 반영할 수 있었다. 당시에 다른 보험사들은 1년마다 보험계약을 갱신했다. 마헐은 보험료 납부도 분할 납부제를 도입하여, 되도록 돈이 도는 농산물 수확기에 농부들이 보험료를 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마헐의 자동차보험회사는 미국에서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며 빠르게 성장했다. 설립 당시 보험료는 이윤 추구형 주식회사의 보험과 비교하면 거의 40%나 저렴했다. 사고를 당한 고객에 대하여 매우 신속하게 보상을 처리해주어 소비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았다. 마헐이 시작한 농민 대상 자동차보험은 정직하고 신뢰할 만한 보험으로 시민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1928년부터는 농촌이 아닌 도시의 운전자에게도 보험을 판매했다. 아울러, 일리노이주 외에 캘리포니아 등 다른 주로 사업을 점점 확장하면서 시장의 지배력을 높여 나갔다. 1938년에 약 50만 건이었던 자동차보험의 보유계약 건수가 1944년에는 100만 건을 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스테이트 팜은 1942년에 미국 자동차보험 시장에서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오늘날 미국의 자동차 5대 중 한 대는 스테이트 팜에 보험을 들고 있다고 한다.

마헐의 고향 블루밍턴은 작은 도시이지만 여기에 가면 일리노이주립대학(ISU)의 노멀 캠퍼스가 있다. 이 대학의 경영대학 건물 이름이 스테이트 팜 경영관이다. 바로 이웃에는 일리노이 웨슬리안(Wesleyan) 대학교에도 스테이트 팜의 재정 지원으로 그 이름이 붙어 있는 건물이 우뚝 서 있다. 이웃 도시 어바나-샴페인에 있는 일리노이대학(UIUC)의 스타디움도 스테이트 팜이 지어주었다. 정직한 농민이 설립한 보험회사가 미국 전역에서 장학금 지원 등 여러 기부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것이 오늘날 스테이트 팜의 ‘굿 네이버(Good Neighbour)’ 운동이기도 하다. 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그의 친구도 형제도 멀리하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그러나 스테이트 팜은 고통받는 사람의 ‘선한 이웃’으로서 봉사한다는 좌우명으로 보험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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