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대응이냐 집단자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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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대응이냐 집단자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 김민석(마스턴투자운용 브랜드전략팀 팀장·ESG LAB 연구위원) listen-listen@nate.com
  • 승인 2022.08.0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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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ESG 오디세이]

[한국공제보험신문=김민석]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Hamlet)>에 나오는 그토록 유명한 이 문구를 새삼 읊조려본다. 

햄릿의 실존적 고민을 조금 다른 맥락에서 톺아보자. 이제 “공동대응이냐 집단자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말이 회자될지도 모르겠다.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페터스베르크 기후회담에 보낸 영상 메시지에서 우리가 다자공동체로서 세계적인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처하고 있지 못하다며, ‘공동대응(collective action)’과 ‘집단자살(collective suicide)’ 중 하나를 골라야 할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했다. 

페터스베르크 기후회담은 독일 정부 주도 아래 기후변화를 의제로 개최되는 장관급 연례회담이다. 11월에 이집트에서 열릴 예정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를 준비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 이집트의 압델 파타 알시시 대통령 등 40여 개국의 리더가 운집했다. 무게감이 있는 무대인 것이다. 

의원내각제 국가인 포르투갈에서 총리를 지냈고, 유럽이사회 의장과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를 역임한 그가 이런 강도 높은 발언의 파장을 모를 리 없었을 터이다. 국회의원과 정당 대표 등 오랜 세월 정치인으로 살아온 그는 섬세한 메시지 관리의 중요성을 몸으로 체득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다소 과격하다고 볼 수 있는 워딩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레드라인’을 넘어섰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에어컨을 집에 설치한 가구 비중이 5%도 안 되는 ‘서늘한’ 나라였던 영국마저 전례 없는 폭염에 고통을 겪고 있다. 17세기 중반, 여름 기온을 공식적으로 관측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363년 만의 진기록이다. 40도가 넘는 기온으로 인해 철도 운행 속도도 제한되었다. 철로 온도가 60도를 상회하면서 철로의 변형이 야기되는 등 안전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항공편도 영향을 받았다. 영국 기상청은 지금의 된더위를 ‘극단적인 기온’으로 규정하고 있다. 

살인적인 폭서로 이베리아반도에서만 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폭염에 산불까지 덮쳐 유럽 전역이 이중고를 겪고 있다. 프랑스는 파리 면적의 갑절이 화마에 휩싸였다. 이재민만 4만 5천여 명이다. 문제는 정치 및 정책 전문 매체 <폴리티코(POLITICO)>의 지적대로 유럽 국가들이 이 지긋지긋한 더위에 대처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낯선’ 기온 습격에 유럽은 무력하기만 하다.  

미국 전체 주의 과반에서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서부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산불로, 중동부 켄터키주에서는 홍수로 큰 피해를 보았다. 세계 도처에서 극한기후 현상(extreme climate)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비상사태 선포를 고려하고 있다. 이는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국난에 닥쳤을 때 행사하는 대통령의 헌법상의 권한이다. 작금의 ‘복합재해(complex hazards)’는 국가적 재난에 다름 아닌 것이다. 

기후위기로 미국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발동하려고 하는 이 시점에 이른바 ‘ESG 회의론’, ‘ESG 무용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최근 들어 ESG에 대한 ‘대항 담론’이 왕성하게 유통되고 있다.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등의 온건한 반대부터, ESG의 개념과 취지가 태생적으로 한계를 갖고 있다는 식의 거친 공격까지 다양한 논거가 동원되고 있다. 

물론 ESG를 바라보는 생각의 차이는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필자도 ESG를 지고의 선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부족한 점과 아쉬운 점이 왜 없겠는가. 다만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전쟁 등의 이유로 ESG 움직임이 일단 중단 혹은 유예되어야 한다는 단선적인 주장에는 고개를 끄덕이기가 어렵다. ‘집단자살’과 ‘국가 비상사태’라는 키워드가 입길에 오르내리는 지금의 이 극악한 기후위기는 되레 ESG의 생명력이 끝나지 않았음을 웅변한다. 

또 몇몇 그린워싱 사례를 열거하며 ESG의 폐기를 주창하는 것도 마뜩잖기는 마찬가지다. 그린워싱은 ESG를 보다 건설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과정에서 교정되고 비판받아야 할 문제점이다. 일종의 역작용이자 또 다른 의미에서는 자극제이기도 하다. 이것이 ESG 경영을 이행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은 난센스다. 특히 ESG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 입장에서는 아직 시작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ESG가 무용하다는 역공에 휘둘리고 있으니 통탄스러울 따름이다. 그만 좀 흔들었으면!  

안토니우 구테흐스의 발언 원문은 다음과 같다. “We have a choice. Collective action or collective suicide. It is in our hands.” 마지막 문장에 우리는 희망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지구가 어떻게 될지는 ‘우리 손에 달렸으니(It is in our hands)’ 말이다. 햄릿은, 아니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우리에게 존재론적 결단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공동대응이냐 집단자살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SG는 ‘공동대응’의 주요 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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