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워싱, 사기 연애와 비자금
상태바
그린워싱, 사기 연애와 비자금
  • 김민석 마스턴투자운용 브랜드전략팀장·ESG LAB 연구위원 listen-listen@nate.com
  • 승인 2022.07.13 10: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민석의 ESG 오디세이]

[한국공제보험신문=김민석] ‘그린워싱’은 주지하듯 녹색을 뜻하는 ‘그린(green)’과 눈가림 혹은 의도적인 겉꾸림을 의미하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이 합쳐진 말이다. 친환경적 가치를 대외적으로 떠들썩하게 내세우면서, 실상은 ‘겉’만 번드르르하게 치장했을 뿐 내용의 알맹이가 없거나 혹은 되레 ‘그린’에 역행하는 처사를 일삼는 위선적인 행태를 가리킨다.

ESG가 기업 경영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에 대한 일종의 역작용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린워싱 또한 적잖이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대두되고 있는 이른바 ESG 무용론 혹은 위기론에 맞물려 ‘그린워싱 담론’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그린워싱의 뜻풀이를 곰곰이 살펴보면, 사실 아주 어려운 의미는 아니다. 그린인 ‘척’ 하는 것, ESG 경영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척’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척’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긴 하다. 일찍이 캐나다의 친환경 컨설팅사 테라초이스(TerraChoice)는 그린워싱을 7개로 분류해 정리한 바 있다. 상충효과 감추기(Hidden Trade-Off), 증거 불충분(No Proof), 애매모호한 주장(Vagueness), 관련성 없는 주장(Irrelevance), 두 가지 악 중 덜한 것(Lesser of Two Evils), 거짓말(Fibbing), 허위 라벨 부착(Worshiping False Labels)이다.

위의 분류법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으니 좀 더 손쉽게 비유를 해보자면, 그린워싱은 ‘사기 연애’와 근사(近似)하다.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화장을 조금 과도할지 언정 진하게 할 수도 있고, 젠체하며 흰소리를 늘어놓을 수도 있으며, 키높이 깔창으로 몇 cm라도 신장을 높이기 위해 애를 써볼 수도 있겠다. 이 정도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조금은 있을 수 있지만, 연애 과정에서 양해 가능한 수준의 ‘척’이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나이와 직업을 속이거나 심지어 기혼 사실을 숨긴다면? 이는 ‘사기’에 다름 아니다. 그린워싱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척’이라기보다는 ‘사기’에 가깝다. 실제로 타인의 신분을 도용한 후 미혼 행세를 하며 사기 연애를 일삼은 자에게 법원은 상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고 정신적 고통을 안겼다고 판단한 바 있다.

‘사기 연애’가 처벌을 받듯, 그린워싱도 경우에 따라 사법적, 행정적 제재를 받게 된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가 ESG 투자지표를 부정확하게 기재한 BNY멜론은행에 150만 달러의 벌금으로 그린워싱 철퇴령을 내렸던 것이 그 예이다.

그린워싱은 또한 ‘유부남의 비자금’으로도 비유할 수 있겠다. 제 아무리 치밀하게 비닉(祕匿)하려고 애를 써도, 결국 와이프의 삼엄한 레이더망에 포착되게 되어 있다. 어떤 기발한 비법을 동원해도 유부남들의 변칙적인 비자금 조성 시도는 무위에 그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들키게 되어 있는 유부남의 비자금처럼, 그린 워싱도 종국에는 발각되기 마련이다. 소비자, 미디어, 시민단체, 그리고 금융당국을 비롯한 각종 규제기관 등 기업의 기만적인 친환경 어법에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그룹이 사회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비자금이 발각된 ‘이후’의 결과가 어떠한가? 그린워싱 또한 그 ‘후과’의 무게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불매운동은 물론이고 점차 법률적 수단까지 동원되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계 자산운용사인 DWS는 압수수색까지 당했다.

지난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그린워싱을 판별하기 위한 전담 부서까지 신설했다. 이는 그린워싱의 위험성과 영향력이 가공할 만큼 커졌으며, 이를 차단하고 폐해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린워싱은 ESG 가치가 확산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티끌 정도가 아니라, ESG의 본 의미를 퇴색시키는 암초가 됐다. 그러다 보니 한쪽에서는 표적이 되고 있다. 사기 연애와 비자금. 그린워싱을 어떤 것에 비유하든 그 결말은 방불할 터이다. 그린워싱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할 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