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 계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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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 계산법
  • 한창희 국민대 교수 chgm@kookmin.ac.kr
  • 승인 2022.06.0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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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생명보험회사는 2001년에서 2010년 사이에 개발담당자의 부주의로 ‘자살은 재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입 후 2년이 경과한 후에 자살한 경우 일반사망보험금 외에 그 2~3배에 해당하는 재해사망보험금을 추가 지급한다’는 조항을 담은 종신생명보험 상품을 280여만 건 판매했다.

이에 관해 대법원은 2016년 9월 30일 ‘자살재해사망보험금 청구권은 소멸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했고, 원고가 이 사건 특약에 기한 재해사망보험금 지급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급을 거절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원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자살은 보험사고인 재해에 해당하지 않지만 이 사건에서는 자살을 보험사고에 포함시켜 보험금 지급사유로 본다’고 해 소멸시효가 완성한 자살의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것이다.

보험계약자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내려지기 전에는 자살재해사망 보험금 청구권이 존재하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소멸시효 제도는 법률관계의 주장에 일정한 시간적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그에 관한 당사자 사이의 다툼을 종식시키려는 것이다’라고 판결했다.

우리나라는 소멸시효기간이 굉장히 짧다. 지난 2014년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은 2년에서 3년으로 연장됐다. 생명보험을 비교법적으로 살펴보면 벨기에·유럽보험계약법 준칙은 30년, 프랑스는 10년, 영국은 6년, 중국·그리스·네덜란드는 5년, 일본은 우리나라와 같은 3년이다.

대체로 생명보험의 경우 다른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소멸시효기간이 훨씬 길다. 생명보험의 경우 사망할 때까지 보장하는 종신보험이 일반적이어서 보장기간이 길고, 보험료납입기간도 20년 등으로 장기다. 이는 2025년, 65세 이상의 고령자가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퍼센트 이상인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되는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2008년 대폭 개정된 일본의 소멸시효제도는 채권의 경우 10년(우리나라는 현재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등 상반된 흐름도 보이고 있다.

소멸시효 기산점의 경우 법마다 제각각으로 기재돼 있다. 민법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하고, 상법은 ‘보험금청구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고 규정한다. 유예기간 경과시설은 ‘보험사고의 발생통지를 한 때에는 보험금액을 정한 후 보험금 지급 유예기간인 10일이 경과한 다음날’로 주장하지만 판례에 따르면 보험사고발생시설로 ‘보험금청구권은 보험사고로 인해 구체적으로 확정되어 그때부터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므로 그 소멸시효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부터 진행한다’고 한다.

예외적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에 의해 보험금청구권이 확정될 때까지 보험회사가 보험금지급을 거부하고, 보험계약자 측도 재해사망보험금을 행사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보험금청구권자가 보험사고가 발생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로부터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도 판단하지만 이 예외는 위에서 살펴본 대법원의 자살재해사망특약사건의 판시에서 보는 것과 같이 매우 좁게 해석되는 경우다.

근래 우리나라의 소멸시효제도와 관련해 이 제도는 ‘법적 안정성을 위한 불가피한 사적 권리의 제한 내지 희생으로서 법적 안정성을 위한 수단일 뿐이고, 법질서 자체의 목적은 아니며, 소멸시효제도는 제한적으로 운용돼야 한다’고 판정하며, 기산점은 ‘원권리자를 위하여 너그럽게 해석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일본은 2008년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대해 유럽연합 보험계약법준칙과 동일하게 계약에 대한 채권에 주관적 기산점이 채용됐고, 시효기간이 5년으로 단축됐다. 이는 권리행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가 소멸시효기산점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보험금청구권은 보험계약자 이외의 제3자가 권리자인 경우에는 권리자가 권리의 발생을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것에 비추어 주관적 기산점을 두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 또한 일본 보험법 제정 전의 입법론으로서 보험금 청구권자가 보험사고의 발생을 알지 못한 때에는 안 때로부터 2년, 또는 보험사고 발생 시로부터 5년의 시효기간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은 ‘피해자나 그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 또는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이다. 다만 2008년 제정 보험법에서는 우리 상법 보험편과 동일하게 규정되어 있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보험금청구권의 행사가 곤란한 경우에는 소멸시효의 기산점은 지연될 수 있다고 해석되고 있다.

일본에서 생명보험계약에 가입한 피보험자가 자동차 추락사고로 인해 사망했으나 사고 후 3년 8개월 후에 비로소 사망사고로 판명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4년 12월 11일 사건의 소멸시효가 보험금 청구권 발생 때부터 진행된다고 보고, 이 사례는 특단의 사정이 존재하는 것으로 사고에 의한 사망이 확인된 때로부터 시효기간이 기산된다고 판결했다.

다만 이 판결에 대해서는 ‘사고의 발생이 장기간 완전히 판명되지 않았다’라는 당해 사례의 특수성에 비추어 행한 판단이고, 예컨대 보험금 청구권자가 사고의 발생에 의한 보험금청구권의 발생을 알지 못한 것과 같은 경우에 대해 일반적으로 시효기간의 기산점을 지연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지난 2012년에 판매된 즉시연금사건에 관하여 내려진 1심·2심 법원 판결에 이목이 집중된 바 있다. 현재 1심법원에서 보험자 승소 건수는 3건, 패소 건수는 6건, 2심법원에서는 1건에 대해 보험자패소판결이 내려졌다. 보험자 승소 판결이 내려진 사건은 모두 단독 소송 사건이었다.

가령 일시납보험료가 10억원이고, 금리가 아무리 하락하더라도 최저 2.5%가 보장된다는 보험자의 설명에 따라 이 사건 보험계약을 체결하였으므로 적어도 매월 208만원 이상이 지급되어야 하는데, 계약체결 이후(계약체결 당시 공시이율은 4.5%) 초기 3년간은 최저보증이율 이상의 연금을 수령했으나, 4차년도는 월 180여만원, 분쟁조정 신청 시점인 현재는 월 136만원 수준으로 지급되고 있어 최저보증이율 미만으로 지급된 경우 추가액의 지급을 주장했다.

소멸시효기산점과 관련해 보험자의 시효기간이 도과한 개별적인 연금보험금의 지급거부의 항변에 대해 1심법원은 신의칙위반 또는 권리남용이라는 근거로 이를 배척하고 전체 기간에 걸쳐 지급되지 않은 차액의 지급을 명하였다. 다만 2016년의 자살재해사망특약사건에서 대법원판결의 입장을 감안한다면 이와 같은 주관적 기산점이 유지될지는 의문이다.

일본의 민법에서는 연금보험계약 등과 같이 정기적으로 보험금 등을 지급하는 계약은 정기금채권에 해당하고, 그 기본권에 대해서는 권리를 안 때로부터 10년,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20년의 시효기간이 적용된다. 2008년의 일본 보험법 제정시에 연금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에 관한 특칙을 두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민법의 일반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거 아래 규정이 추가되지 않았다.

이처럼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의 기산점에 관해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첫 번째는 법적 안정성의 유지라는 소멸시효제도의 목적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보험금청구권자가 보험사고가 발생했음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을 때로부터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해 개별적인 사건에서 보험계약자를 보호하려는 입장이다. 이 두 입장 사이에서 1~2년 후에 내려질 즉시연금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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