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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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 박상범 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psb2214@hanmail.net
  • 승인 2022.01.13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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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박상범 교수]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는 말은 영국의 유명한 경제학자 에른스트 슈마허의 수필집에서 나왔다. 이 책의 내용은 작은 단위를 구성하는 것이 인류공동체에게 보다 더 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생산체계가 추진될 때 한정된 자원에 대한 소모가 빨라지고 이에 따라 자원고갈이 빠른 시일 내에 다가올 것이며, 기술수준 차이에서 오는 부의 왜곡된 분배현상을 좁히기 어렵게 될 것이란 주장이다.

저자는 중간기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생태계를 배려한 소규모의 비용이 들지 않는 기술이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자원재생과 지역 에너지의 활용을 도모하는 동시에 지역의 고용관계까지 배려하는 기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주류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규모의 경제 등과는 배치되는 개념이다.

그러나 현재 경영분야에서 회자되는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을 떠올려 본다면, 저자가 1970년대에 벌써 이러한 발상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효율성, 이윤추구 만을 지향하는 데에서 탈피하여 주변을 돌아보고 상생하는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발상을 했다는 점에서 선각자임에는 틀림없다.

새해가 밝았는데도 아직 코로나19에서 크게 벗어나고 못하고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 아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더 어려운 지경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는다. 코로나19에 더하여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미세 플라스틱이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역시 범지구적 재난 차원의 문제를 가져다주고 있으나 그것 역시 규모는 원자급으로 작다. 바야흐로 이제는 ‘작은 것이 위협적이다’(Small is dangerous 혹은 Small is threatening)라고 해야 할 형국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보다도 훨씬 작다는 바이러스가 자신보다는 수억배, 수천억배,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커다란 개체인 인간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유해바이러스나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입장에서는 너와 나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개체에서 저 개체로, 사람으로 치면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한 사람의 신체 내에서는 이 장기에서 저 장기로 자유롭게 이동하며 증식하고 활동하여 인간과 생명체의 신체기능에 장애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눈에 보이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을 막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는 아직 어떻게 발생했는지 명확히 규명된 것은 아니나, 미세먼지나 미세플라스틱, 이산화탄소의 경우 인류가 자초한 부분이 작지 않다. 코로나19 관련 주장들 중 하나는 비위생적인 식습관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들 모두는 인간이 자초한 재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재난을 초래하는 위험은 보험메커니즘으로 대비하거나 대처하기도 어렵다.

이제 다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환경을 생각하는 기술 그리고 경영, 상생을 염두에 두는 기술개발과 경영철학이 필요할 때다. 비단 코로나19나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 이산화탄소 뿐 아니라 부의 생산과 분배 관련 세대간, 국가간 갈등 등 인류 보편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쩌면 단순하고 작은 마음가짐에서 출발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슈마허가 일찍이 외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은 작은 규모의 모임, 집단 속에서부터 서로를 위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평화로운 거래와 상생의 기치 아래 교환과 도움을 주고받는다면, 많은 갈등이 치유되고 소모적 논쟁이 줄어들어 인류를 위협하는 부작용이 줄어든다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기술발전이 산업발전과 국가 산업발전을, 그리고 국가기술 독립을 위한 필수적인 근간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입각할 때 분명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글로벌 차원에서 발생, 번창, 소멸 혹은 존속이라는 사이클을 그리게 되는 상황 하에서 기술개발 역시 이전과는 다른 생각과 접근이 필요하게 됐다. 인류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미명하에 진행되는 기술개발이 자칫 인류 스스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생태계를 배려한 중간기술과 같은 마음자세와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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