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보험 가입하면 10억 전산망이 공짜?
상태바
[단독] 보험 가입하면 10억 전산망이 공짜?
  • 박형재 기자 parkhyungjae@kongje.or.kr
  • 승인 2021.11.16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험사 마케팅, 판매공제 계약시 공제기관에 전산망 무료 제공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기?’ 비용절감 효과에도 리스크 상당
공제기관 내부정보 유출 및 보험사 종속 가능성, ‘보험대리점化’ 우려

[한국공제신문=박형재 기자] 보험사들이 마케팅 차원에서 공제기관에 ‘무료 전산망’을 깔아준 것으로 확인됐다. 전산망 설치 비용이 10억원 가량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혜택을 제공하는 셈이다. 그 대신 공제기관에서 판매공제를 할 때 해당 보험사 상품을 이용하는 조건이다.

일견 양쪽 모두 이득인 모델로 보인다. 보험사는 영업실적을 얻고 공제기관은 비용 절감이 가능해서다. 그러나 전산망은 공제조합 내부의 핏줄과 같은 존재라서, 이를 보험사가 들여다보는 것은 우려스럽다. 보험사에서 마음만 먹으면 공제기관 고객정보 및 공제 계약, 보상 등 민감정보를 볼 수 있고, 한번 전산망이 깔리면 이를 교체하기도 어려워 특정 보험사에 공제조합이 종속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가 공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일부 보험사들이 영업수단으로 공제기관에 10억원 상당의 ‘무료 전산망’을 구축해주고 있는 것.

판매공제시 해당 보험사 상품 이용 조건이 붙긴 하지만, 보험사의 이 같은 제안은 이제 막 출범한 공제조합이나, 회원 규모와 매출이 작은 조직일수록 매력적인 카드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 없다. 본래 갖고 있던 보험사 전산망에 공제조합 시스템을 연결하는 식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초기 세팅이 번거롭고 관리비용이 들지만 추후 공제조합의 성장 및 판매공제 운영 수수료, 공제 관련 데이터 축적 등을 고려하면 남는 장사다.

이 때문에 보험 영업 과정에서 전산망 구축을 미끼로 내세우는 곳들이 생겨났다. 전산망 설치는 1990년대부터 본격화됐고, 그때 당시 보험사 전산망을 깔아서 아직까지 사용하는 곳들도 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업 수단으로 전산망 구축을 제시하는 보험사들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자산 2조원 규모의 A공제조합은 삼성화재 전산망을 30년 가까이 사용하고 있다. 1990년대 전산망을 설치한 뒤 줄곳 한 보험사와 거래하는 셈이다. 연간 공제료 규모가 100억원에 달하는 B공제조합 역시 10여년 전 삼성화재 전산망을 설치한 뒤 이들에게 판매공제 재보험을 주고 있다. 이밖에 자산규모 6000억원인 C공제조합(삼성화재), 자산규모 1700억 규모인 D공제조합(한화손해보험) 등이 특정 보험사 전산망을 이용하고 있다.

90년대 설치한 보험사 전산망, 아직도 사용 중

문제는 전산망 구축 및 관리 과정에서 보험사가 공제기관의 각종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제 전산 시스템은 청약, 계약관리, 보상, 통계 등 업무프로그램 전체를 의미한다. 보험사가 서버, 소프트웨어, 보안 프로그램 등을 구축하고, 유지보수 및 장애 발생시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조합원 개인정보(주민번호, 계좌번호 등)와 핵심 자료를 언제든 살펴볼 수 있는 구조다. 물론 개인정보는 암호화 처리되고 보안서약 등을 통해 보험사에서 공제 데이터를 바로 사용할 순 없지만, 판매공제 운영 경험과 데이터는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공제기관의 자율성이 떨어지고 보험사에 종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B공제조합은 보험사 전산망이 깔린 뒤 ‘보험대리점’으로 전락했다. 연간 100억원 규모의 공제료가 발생하는데 이를 모두 판매공제로 취급하며 수수료 10% 정도만 수입으로 가져간다.

심지어 증서 발행도 보험사 홈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원들이 B공제조합에 접속해 공제상품을 가입하면, 관련 정보가 즉각 보험사 시스템과 연동되고 보험사 서식을 통해 계약이 진행된다. 사실상 공제조합은 창구 역할만 하고 주요 정보는 보험사로 바로 넘어가는 구조다.

공제업계 E전문가는 “공제조합이 성장 발전하려면 공제, 보증 등 업무처리 경험과 데이터가 쌓여야 하는데, 이처럼 보험사에서 계약부터 보상까지 모두 처리할 경우 정작 공제조합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조합의 성장이나 조합원 이익 극대화에는 장애 요소”라고 지적했다.

공제 보증 데이터 보험사로… 조합은 창구 역할만

게다가 공제기관이 특정 보험사 전산망을 오랫동안 유지하다보면, 공제 담당자와 보험사 담당자 사이에 인적 커넥션이 만들어진다. 신규 상품 개발 등 도전적인 활동보다는 편리함을 쫓아 현실에 안주하기 마련이다.

한번 전산망이 깔리면 이를 교체하기도 어려워 타 보험사 이용도 제한된다. 대형 공제회들이 몇 년마다 판매공제 운영 보험사를 경쟁PT를 통해 선정하고, 비용 대비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과 비교된다.

만일 보험사에서 공제기관과 거래를 끊거나, 공제 상품을 취급하지 않을 경우 공제기관 입장에선 대응할 방법이 없다. 다른 보험사 전산망으로 갈아타려면 최소 1년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강제 셧다운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F공제조합 기획팀장은 “우리는 내부 전산시스템을 자체 개발한 뒤 외주업체를 통해 운영 중인데, 아무래도 처음 개발사에 유지보수를 맡기게 된다. 만일 보험사 프로그램을 이용 중이라면 사업자를 바꾸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G공제조합 본부장은 “특정 보험사 전산망을 사용하면 그 보험사를 못버리게 된다. 조합원 정보, 매출 등등 민감한 것들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난감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우리도 모 보험사에서 공제 쪽에만 자기들이 돈을 댈테니 전산망을 연결하자는 제의가 있었는데, 이런 우려 때문에 거절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보험사 전산망을 활용 중인 D공제조합은 다른 견해를 피력했다. 전산망 전체를 보험사에 맡긴 것이 아니고 판매공제에 한해 보험사와 연동시킨 수준이라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D공제조합 관계자는 “보유공제 말고 판매공제에 한정해 보험사와 붙여놓은 게 있다. 공제상품 계약 및 판매, 보상 등의 원활한 처리를 위해 연동해놓은 것으로 민감정보 유출 등은 없다”고 일축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