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공제조합 지점 축소 논란, “10억 아끼다 100억 날린다”
상태바
건설공제조합 지점 축소 논란, “10억 아끼다 100억 날린다”
  • 박형재 기자 parkhyungjae@kongje.or.kr
  • 승인 2021.04.02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9개 지점 → 10개로, 국토부 외압에 ‘60년 공든 탑’ 무너져
영업력 감소, 리스크 대응 약화, 보증사고율 상승 등 악순환 우려

[한국공제신문=박형재 기자] 건설공제조합이 외압에 흔들리고 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에서 발표한 ‘건설 관련 공제조합 경영혁신안’에 따라 전국 39개 건설공제조합 지점을 10개로 축소할 위기에 처한 것. 이번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각 지점을 중심으로 수십년간 구축해놓은 지역 건설사 네트워크가 무너져 영업력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지점 통폐합은 건설공제조합 인력 감축으로 이어져 위험 건설현장에 대한 현장실사 및 채권관리 기능 약화, 보증사고율 상승 등 악순환이 우려된다. 건설공제조합 지점 축소 방안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국토부가 발표한 건설공제조합 경영혁신안 일부. 건설 관련 3개 공제조합의 지점 수를 크게 축소하라고 명령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토부가 발표한 건설공제조합 경영혁신안 일부. 건설 관련 3개 공제조합의 지점 수를 대폭 축소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역 네트워크 붕괴, 영업력 하락 불가피 

국토교통부는 2월 9일 ‘건설 관련 공제조합 경영혁신안’을 발표하며, 건설 관련 3개 공제조합의 지점 축소를 명령했다. 이에 따라 내년 6월까지 건설공제조합은 전국 지점을 39개에서 10개, 전문건설공제조합은 32개에서 20개,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은 6개에서 3개로 줄여야 한다. 

이번 조치로 조합원들의 공제‧보증 서비스 이용에 불편이 예상된다. 예컨대 충청남도의 경우 지금은 천안, 청주, 예산지점이 따로 있었으나, 향후 대전‧충남지점으로 통폐합될 전망이다. 천안의 건설사 직원은 보증서를 끊기 위해 대전까지 방문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업무 처리 과정도 복잡해진다. 건설사업을 하다보면 조합 창구를 직접 방문하는 사안들이 종종 있다. 관 공사의 경우 정형화된 형태로 인터넷에서 보증서 발급이 가능하지만, 민간 공사는 현장마다 제반 사정이 달라 조합에서 현장 실사 후 보증서를 끊어준다. 

상가 건물을 짓는다고 하면, 건설부지가 실제로 있는지, 민원 발생은 없을지 등을 직접 조사하는 것이다. 건설사는 이런 내용을 상의하기 위해 조합에 수차례 방문해야 하고, 조합 직원 역시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한다. 

하자보수에도 어려움이 생긴다. 만일 청주의 아파트에서 하자가 생기면, 주민들이 건설사에 1차로 항의하고 해결이 안되면 공제조합 측에 민원을 넣는다. 여러번 조율과 합의를 거쳐 하자보수가 이뤄지는데, 예전엔 청주지점에 방문하면 됐지만 이제는 멀리 대전까지 와야 한다. 

무엇보다 경쟁사인 서울보증에 비해 영업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서울보증은 서울 20개, 경기 14개 등 전국 수십개 지점을 갖추고 있다. 대리점까지 합하면 수백개 영업망을 가진 것으로 추산된다.  

지금까진 지점 직원들이 지역 건설사 대표들과 따로 모임을 갖고, 식사도 하는 등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보증 영업을 했는데, 지점이 사라지면 이런 유대관계가 무너진다. 직원들 사이에서 앞으로 영업은 ‘맨땅에 헤딩’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건설공제조합 노조 관계자는 “지역에 다 있다가 10개로 통합하면 인간적인 관계가 단절되고 사무적인 관계만 남을 것”이라며 “국토부 명령은 60년간 전국에 걸쳐 구축해놓은 영업망을 싹 걷어내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우리 조직을 없애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공제조합 이사장 ‘바지사장’ 만든 국토부

인력 감축으로 보증사고 관리 기능도 약화 

지점 축소 및 통폐합은 건설공제조합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줄어든 지점 숫자만큼 할 일이 없어진 직원들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경영진은 직제개편과 인력감축은 별개라는 입장이지만, 신규 직원을 채용하지 않는 식으로 조정이 예상된다. 

인력 감축이 현실화되면 조합이 오랫동안 쌓아온 채권관리 노하우도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건설공제조합은 보상센터를 따로 두고 현장조사, 보증서 발행, 공정률 체크 등을 수시로 진행한다. 보증서 발급 건설현장에서 공정률이 미흡한 경우 빠른 실행을 독려하거나, 건설사가 부도나서 건설현장이 멈추면 직접 보증시공에 나서 사고 금액을 줄이기도 한다. 

만일 A건설사가 1000억짜리 공사를 하다 부도가 나 400억원의 보증 손실이 발생할 경우, 조합에서 B건설사를 통해 300억원에 공사를 완성하고 100억원을 세이브하는 것이다. 

이런 현장관리 노하우는 조합이 오랫동안 보증업무와 사고처리를 반복하며 체득한 것으로 지점에서 근무하는 지역 전문가들과 협의를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지점이 사라지고 직원이 줄어들면 그만큼 관리업무에 신경쓰기 어려울 수 있다. 

건설공제조합 노조 관계자는 “지점이 줄어들면 자연히 영업력이 감소하고, 사람이 줄어들면 역량이 감소할 수 밖에 없다”며 “기존에는 지역 전문가들과 관계가 있어서 위험한 보증신청이 오면 사전에 걸러낼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서류상 문제 없으면 그냥 통과하게 돼 나중에 보증사고가 터질까 우려된다. 직원 감축으로 10억~20억원 아끼고 보증사고로 100억원씩 날리는 ‘소탐대실’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이번 지점 축소의 명분으로 비용절감을 내세우고 있다. 금융업계 전반에서 온라인 서비스 확대로 비용절감 추진 중이며, 공제조합도 지점 대면 영업을 탈피해 경영비효율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건설공제조합은 2019년 기준으로 1533억원의 순이익을 내고 있으며, 통상 조직 내 지점 축소는 경영실적 악화에 따른 자구책으로 추진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오히려 지점 수를 급격히 줄일 경우 여러 부작용이 예상된다. 지역 네트워크 약화로 인한 영업경쟁력 하락, 사고 발생률이 높은 민감 건설현장에 대한 정교한 대처 불가, 직원 수 감소에 따른 채권관리 기능 저하 등이 우려되는 만큼 국토부는 해당 사안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경영혁신안은 국토부에서 만든 게 아니라 각 공제조합에서 내놓은 의견을 바탕으로 마련한 것이며, 각자 실행 가능한 지점축소 범위를 제출해 그에 따른 것으로 무리한 조치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조직 축소와 인력 감축은 전혀 별개의 사안으로 우려하는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