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고지의무제도의 확립, 250년 전 카터사건
상태바
보험 고지의무제도의 확립, 250년 전 카터사건
  • 한창희 국민대 법학과 교수 chgm@kookmin.ac.kr
  • 승인 2021.03.22 08: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공제신문=한창희 교수] 영국의 맨스필드 판사는 1766년 카터 대 보엠사건에서 고지의무제도를 확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지난 20년간 주요 보험시장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의무가 채택되는 등 고지의무제도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카터 대 보엠사건 판결 후 250년이 되는 2016년 11월 30일과 12월 1일 이틀간 많은 저명한 보험학자가 참가한 가운데 국립 싱가포르대학교 법학부가 개최한 세미나가 개최됐다. 그 결과를 담은 저서가 ‘보험법에서 카터 대 보엠과 계약전 의무-250년 이후의 글로벌한 관점에서’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세미나가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것은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싱가포르는 광범위한 아시아시장에 보험서비스를 제공하는 다수의 국제보험회사와 재보험회사가 영업을 하는 중요한 보험허브이다. 둘째, 카터 대 보엠사건에서 보험목적이었던 말보로성(현재 벤쿠렌)은 인도네시아의 해안도시인 벤쿠루에 있었고, 이는 싱가포르에서 페리로 40분 거리이다. 셋째, 싱가포르 자유항의 설립자인 토마스 스탬포드 래플스 경이 1819년 2월에서 1823년 6월까지 벤쿠렌의 총독이었다는 사실이다.

랜드마크 보험사건인 카터 대 보엠사건의 보험계약자이었고, 1767년에 사임한 로저 카터가 보유한 총독직책을 싱가포르의 설립자가 이어받고, 이 싱가포르가 21세기에 보험허브로 성장한 것이다. 옛 말보로성의 이름을 딴 벤쿠렌거리가 1820년대 현재자유무역항에 개설된 이래 유지되어 왔고, 최근에도 유서깊은 거리이다. 이 세미나가 개최된 싱가포르 랑데부호텔은 이 벤쿠렌거리에 인접하고 있었다.

카터 대 보엠사건의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1760년 5월 9일 로저 카터의 지시에 따라 런던에서 보험계약이 체결되었다. 로저 카터는 수마트라의 말보로성에서 동인도회사의 총독이었다. 이미 8월전에 런던에 있는 카터의 형제와 대리인에게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지시가 우편으로 발송되었다. 보험계약은 1759년 10월부터 1년동안 유럽적국의 공격위험을 보장하는 내용이었다. 보험금은 1만 파운드이고, 보험료는 1759년 9월 600파운드, 1760년 2월 1,750파운드를 런던의 형제에게 송금하였다, 그러나 사고는 이미 발생하였으나, 당시 통신수단의 미비로 인하여 런던에 전달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1760년 2월 5일 프랑스 데스텡 공작의 지휘하의 프랑스군대가 수마트라 서해안에 상륙하여 10일 이내에 말보로성이 함락되었다. 로저 카터는 항복하였고 포로가 되었다.

맨스필드 판사의 이 사건에서의 판결은 보험법상 고지의무의 발전에 랜드마크로 인정되고 있다. 맨스필드 판사는 보험자가 고지의무위반을 이유로 보험금지급 을 거부하지 못한다고 판시하였다.

인도네시아의 항료가 이익을 제공한다고 판단하여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웨스트 자바에 17세기에 거점을 마련하였는데, 술탄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무역독점권을 부여하여 1680년대에 이르러 영국 동인도회사는 거점을 상실하였다.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후추무역에서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마트라섬으로 거점의 전환을 시도하여 성을 구축하여 1712년-1716년 말보로성이 구축되었다. 로저 카터는 1742년 8월에 벤쿠렌에 도착하여 영국의 책임자역할을 수행하다가 1756년 말보로성의 총독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1756년 5월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7년 전쟁이 발발하였고, 영국과 프랑스 전쟁이 인도로 확대되었으며, 말보로 총독인 로저 카터에게 프랑스가 말보로성을 급습하기 위하여 상당한 군대를 파견할 것이라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1759년 8월 중순에 도착하였고, 6월이 지나지 않아 이 소문이 사실이 되었다.

맨스필드 판사는 영국과 프랑스의 7년 전쟁은 유럽에서의 문제이었기 때문에 멀리 인도네시아 말보로성에 있던 로저 카터는 프랑스의 말보로성 침략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은 반면, 영국의 보험자는 잘 알 수 있는 지위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1906년 영국해상보험법 제18조 제3항 b호는 보험계약자가 고지할 필요가 없는 사항으로 ‘보험자가 알거나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실, 보험자는 주지의 사실 또는 보험자가 통상의 업무상 당연히 알아야 하는 사실에 대하여 이것을 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규정했다. 영국의 2015년 보험법 제5항 b호-d호는 보험자가 인식하는 사항, 보험자가 인식해야 하는 사항, 보험자가 인식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항은 보험계약자가 고지할 필요가 없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고지의무위반으로 인한 계약해지’에 관하여 규정하는 우리 상법 제651조 단서는 ‘보험자가 계약당시에 그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인하여 알지 못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한다.

고지의무제도는 보험거래에서는 보험청약자는 자신의 정보를 잘 알고 있고, 보험회사는 각 보험가입자의 위험을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보험계약자가 자신에게 위험이 발생할 것을 고려한 자가 보험에 가입하고자 하고, 위험이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고찰하는 자는 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역선택’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한편 근래 영국, 프랑스, 일본, 중국, 독일 등 보험 선진국에서는 고지의무가 자발적 고지의무에서 질문에 대한 답변의무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고지제도는 위험을 측정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할지 여부와 보험료의 설정 등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위험의 측정을 위하여 필요한 중요한 사실에 해당하는가는 많은 보험계약을 체결하여 다양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보험자 측이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일반적으로 법률에 문외한인 보험계약자에게 고지대상인 중요한 사항에 대한 판단과 자발적인 의무이행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보험과 공제실무자는 250여년 전의 카터 대 보엠사건에 주목하고, 또한 보험계약법상 특유한 제도인 고지의무제도가 질문에 대한 답변의무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