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단기보험 시행령, 자본금 20억 상향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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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단기보험 시행령, 자본금 20억 상향 논란
  • 박형재 기자 parkhyungjae@kongje.or.kr
  • 승인 2021.01.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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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시행령 만들며 소액단기보험사 설립자본금 10억 → 20억 변경 검토
진입장벽 낮춰 소액단기보험 활성화, 보험업법 개정 취지 퇴색
탁상행정에 신규사업자 의지 꺾여, “20억원이면 사업하기 어려워”
전문가 “진입장벽 최소화하고, RBC비율 등으로 보험사 재무건전성 관리해야”

[한국공제신문=박형재 기자] 소액단기보험 활성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변질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시행령을 만들면서 소액단기보험사 설립 자본금 요건을 법안에 명시된 10억원 수준보다 2배 이상 높은 ‘20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실제 소액단기보험업에 진출하려던 기업들이 자본금 확보에 부담을 느껴 사업 재검토에 들어가는 등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험 진입장벽을 낮춰 다수의 신규사업자를 육성하고 이들의 혁신상품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보험선택권을 강화하려던 본래 입법 취지도 퇴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산으로 가는’ 소액단기보험 개정안

반려견보험, 층간소음보험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미니보험을 취급하는 소액단기보험사 설립이 한결 수월해진다. 보험업법 개정으로 오는 6월부터 최소 50억원 이상이던 설립자본금 요건이 10억원 이상으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보험업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생명·자동차보험 200억원, 질병보험 100억원, 도난보험 50억원, 모든 종목을 취급할 때는 300억원 등 위험도와 무관하게 높은 자본금이 요구됐다. 최근 5년간 신규 설립된 보험사는 캐롯손해보험이 유일하다.

이에 위험도가 낮은 소규모·단기보험만 전문으로 판매하는 보험업을 도입하고, 자본금 요건도 10억원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진입 문턱을 완화했다. 정부는 이를 통해 더 많은 신규사업자를 시장에 끌어들여 보험 상품 경쟁을 유발하고 소비자의 보험선택권이 확대되길 기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 금융위원회는 ‘소액단기전문 보험업’에 대한 시행령을 만들고 있으며 이달 말에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문제는 법 개정의 핵심인 최소자본금 기준이 10억원보다 상향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보험업 개정안에는 최소 자본금 기준이 10억원 이상이지만 더 오를 가능성도 있다”며 “자본금 기준액이 너무 낮으면 소비자 피해가 발생했을 때 대처가 어려울 수 있고, 너무 높으면 보험 활성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 적정 수준에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피해 가능성과 소액단기보험 활성화 사이에서 자본금 기준의 균형점을 찾는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법 개정안에 명시된 자본금 10억원으로는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판단해 시행령에서 좀 더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가 언론에 배포한 자료 일부.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10억원 이상의 자본금 만으로 소액단기보험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최소자본금을 20억 이상으로 상향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 11월 금융위원회가 언론에 배포한 자료 일부.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10억원 이상의 자본금 만으로 소액단기보험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최소자본금을 20억 이상으로 상향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 

“자본금 상향되면 큰 부담, 보험업 진출 어려워”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소액단기보험업 진출을 검토 중인 업체들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A기업 관계자는 “자본금 10억원도 부담스러운 마당에 더 올리는 건 옳지 않다. 법 개정 취지가 소액단기보험 활성화 측면인데 진입장벽을 더 높이면 사업을 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B기업 관계자 역시 “네이버나 카카오처럼 큰 기업들은 자본금이 얼마가 돼도 상관없겠지만, 우리 같이 단일 특화상품으로 승부를 보려는 곳에게 자본금 10억과 20억은 매우 큰 차이”라며 “설립 자본금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소액단기보험업 진출에 관심을 나타내는 곳은 핀테크 기업들과 일부 증권사, 중소 보험대리점(GA), 병원, 수의사단체 등이다.

모 병원의 경우 반려견 안면인식기술을 개발하고 펫보험 출시를 준비하고 있으며, 다른 기업은 한국에 방문하는 유학생 대상 소액단기보험을 출시할 예정으로 사업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코로나19 여파로 사업계획을 잠정 보류한 상태다. 만일 최저자본금 요건이 현재 10억원 이상에서 20억원 수준으로 상향되면 사업 철회가 불가피하다.

전문가들도 소액단기보험 기준을 무작정 높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전상경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모든 논의의 중심을 소비자의 효용과 이익에 두고 생각하면 된다. 보험업은 아직도 규제 중심인데, 이제는 진입장벽을 낮춰 다양한 플레이어가 시장에 들어오고 보험상품 경쟁을 통해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석구 위맥공제보험연구소 전문위원은 “개정안의 취지는 일본과 같이 소액단기보험사 설립 자본금 요건을 최대한 낮춰 시장에 진입하기 쉽게 만들고, 소비자를 위한 생활밀착형 보험을 활성화하자는 것”이라며 “소비자보호 문제는 지급여력비율(RBC)을 관리하고, 재보험을 활성화하는 등으로 관리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규제 최소화한 일본… 미니보험↑, 자본금확충 선순환

실제로 보험선진국으로 불리는 일본의 경우 소액단기보험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서 최소한의 규제만 하고 있다. 2005년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최소자본금 1000만엔(약 1억원) 이상이면 누구나 소액단기보험사를 설립할 수 있으며,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운영돼 보험면허 취득없이 재무국 등록만으로 사업이 가능하다.

게다가 금융위에서 우려하는 보험사 재무건전성 문제 역시 소액단기보험사들의 사업 수행 과정에서 자본금 확충이 이뤄져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일본의 소액단기보험사들의 평균 자본금은 2억5000엔(약 25억원)에 달한다. 낮은 자본금 규제 덕분에 손쉽게 보험업에 뛰어든 뒤 아이디어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이로 인해 얻은 수익금을 자본금 확충과 보험상품 개발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선순환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일본에서는 2019년 기준 103개 소액단기보험사가 활동하고 있으며, 연간 수입보험료가 1조1908억원에 달할 만큼 성장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반려견보험, 골프·레저보험, 여행자보험, 티켓보험, 고독사보험, 변호사보험 등 기존의 보험 틀을 벗어난 혁신적인 상품들을 이용하고 있다.

최미수 서울디지털대 교수는 “자본금 진입장벽이 낮아져 많은 보험사가 생겨나고 다양한 상품을 제공받게 되면 소비자 편익이 향상될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당국에서 소비자 보호가 우려된다면 영업행위 규제를 강화하는 식으로 접근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소액단기보험 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이끌어낸 유동수 더불어민주당 의원 측에서도 금융위 움직임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유 의원실 관계자는 “보험업법 개정안의 취지는 신규 진입장벽을 낮춰 국민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대형 보험사에서는 돈이 안돼 개발하지 않았던 생활밀착형 보험상품을 보다 원활히 공급하려는 목적”이라며 “금융위와 세부 사안을 좀 더 협의해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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